부끄러운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편지] 고1 이연우 학생에게 강기갑 의원이 보내는 답장

등록 2008.05.27 09:49수정 2008.05.2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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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마이뉴스>는 "촛불문화제 나가면 '공부 못하는' 반항아? 놀려고 나간 게 아니라 살려고 나갔습니다"라는 제목의 '중고생 릴레이 편지'를 실었습니다. 국립국악고 1학년 이연우 학생이 국회의원에게 쓴 이 편지에 대해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답장을 보내와 전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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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무대에 올라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고 있다. ⓒ 남소연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무대에 올라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고 있다. ⓒ 남소연

이연우 학생에게

 

우선 숱한 일정으로 답장이 늦어진 것에 미안함을 표합니다.

 

연우 학생의 편지를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을 하늘로 들어올려야 했습니다. 이 화창한 날씨에, 그리고 그 아름다운 나이에, 즐거운 생각만 하고 지내도 모자랄 판에 이명박 정부의 무책임한 한미 쇠고기협상으로 분노와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니,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미어져옴을 참을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우 학생, 정말 미안합니다.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초·중·고 학생들, 미안합니다. 부끄러움과 사죄의 마음에 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연우 학생이 제기하고 답한, 조목조목의 질의와 항변은 모두 맞습니다. 만약 정치인들이, 국정 책임자들이 연우 학생의 절반 정도라도 광우병의 진실과 미국의 도축 시스템 및 광우병 발생에 대한 통제의 허술함을 안다면, 그리고 나라의 검역주권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연우 학생, 혹시 지금도 식사를 제대로 못 하는지요?

 

연우 학생의 먹거리(식탁)에 대한 불안과 거부현상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한 사람으로 철저히 책임을 통감합니다.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그리고 행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고, 철저히 감시·견제해야 할 책무가 있는 국회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직무유기를 저지르고 있는 이 상황을 통탄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한국에 들어온 미국산 쇠고기는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뿐이었습니다. 물론 지난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0월 5일까지 미국은 뼛조각이나 갈비, 특정위험물질 등이 혼입된 상태의 쇠고기를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등 모두 2013회나 위반하였지만, 검역과정에서 모두 점검해 차단하였으므로 현재 광우병에 대한 불안감은 깨끗이 씻길 바랍니다.

 

부모님들께서도 얼마나 걱정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이 운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식사를 정상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부도 잘하고, 정치도 바꾸고, 사회도 바꾸는 훌륭한 사람으로 생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연우 학생이 건강한 식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국민건강과 식탁안전을 위한 의무 저버린 국가

 

이제 광우병과 한미쇠고기협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광우병에 대한 위험의 특성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 병의 원인물질인 변형 단백질 '프라이온'이 강력한 생존력을 가졌다는 것이고, 둘째는 잠복 기간이 10년이고 30년이고 장기간이기 때문에 위험의 확산을 감지하지 못한 채 방심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고, 셋째는 발병하면 일 년 이내 사망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인물질 프라이온의 감염 경로를 보면 수혈이나 섭취로는 가능하지만, 공기나 단순 접촉으로는 전염되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병에 대하여는 아직도 우리 과학과 의학이 해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산 쇠고기 또는 특정위험물질을 섭취한다고 해서 다 광우병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광우병에 감염된 특정위험물질을 섭취했을 때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는 미국이 자국 소에 대한 광우병 예방조치를 완벽하게 하도록 하고 만에 하나라도 허점이 있을 수 있으니, 수입국인 우리 정부가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국민건강과 식탁안전을 위한 국가의 의무이고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협상은 '협상'이라는 용어를 쓸 자격이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의 굴욕 협상이었습니다. 협상의 결과로 맺어진 수입위생조건은 항복문서였습니다. 방미(訪美)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첫 외교활동을 빛내기 위해 정부가 국민건강과 검역주권은 물론 국민의 어머니인 농민들의 생존권까지 미국에 조공으로 갖다 바쳐버린 외교였습니다.

 

나아가서는 한국 국민의 식탁안전뿐 아니라 세계의 다른 나라 식탁안전까지 위협하는 미국의 횡포에 우리 정부가 앞장서 동조해 앞잡이 역할을 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치욕적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한국과의 협상을 본보기 삼아 다른 나라에도 계속 미국산 쇠고기 전면 허용에 대한 압력을 횡포적으로 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의 안이한 태도와 기만적 답변들은 어이가 없습니다. 이는 분노의 불씨를 끄는 것이 아니라,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습니다. 국민은 정말이지 이제 어떻게 하나 아연실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새 수입위생조건이 고시되지 못하도록 최선 다할 터

 

하지만 아직은 정부가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합의한 새로운 수입위생조건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시체로 누워 있습니다. 이번 협상의 내용이 반영된 새로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고시'하지 않는 한, 아무 힘도 쓰지 못하는 죽은 협상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시'라는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주지 않는 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는 현재 발효되고 있는, 우리 정부가 2006년 3월 6일 고시해 놓은 수입위생조건에 따라,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 수입하기로 한 약속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연우 학생, 그러니 아직까지는 안심하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우리 청소년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제가 혼신을 힘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아직도 '만약 정부가 수입위생조건을 고시하여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된다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정부 고시를 하지 못하게 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 연우 학생도 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마음을 다잡길 바랍니다.

 

연우 학생의 고민과 생각에 대하여 한 번 시간을 내어 만나는 것도 좋겠군요. 용기를 갖고 마음을 크게 먹읍시다. 우리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깨끗한 우리 농산물을 먹고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 우리나라의 희망동력이 되는 날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08년 5월 26일

국회의원 강기갑

#광우병 #이연우 #강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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