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기다리는 섬, 원산도

[2박 3일간의 섬여행] 충남 보령 원산도

등록 2008.06.05 16:06수정 2008.06.0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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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촌항에서 바라본 아침 풍경 대천에서 선촌항으로 여객선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선촌항에서 바라본 아침 풍경대천에서 선촌항으로 여객선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문일식

충남 보령 삽시도에서 바라보면 손에 잡힐 듯한 섬이 하나 있습니다. 원산도입니다. 삽시도가 화살을 끼운 활의 모양을 하고 있다면, 원산도는 길쭉한 도깨비 방망이를 연상케 합니다.

원산도는 어디에서든 가깝습니다. 원산도의 북쪽에는 태안의 안면도 영목항이 지척이고, 서쪽으로는 삽시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동쪽으로는 보령의 오천 땅이 시선에 들어옵니다. 이렇듯 가깝다 보니 안면도와 원산도, 대천을 잇는 77번 국도가 놓인다고 합니다. 연도교와 연육교가 동시에 생기게 되는 셈입니다. 


원산도 갯벌 풍경...  초전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본 공허한 느낌의 갯벌
원산도 갯벌 풍경... 초전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본 공허한 느낌의 갯벌문일식

5월 30일 삽시도에서 배를 타고 장고도와 고대도를 거쳐 원산도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 금세라도 비를 뿌려댈 듯한 잔뜩 흐린 날씨였습니다. 흐리고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와 함께 설상가상으로 황사가 올 거라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평일인지라 섬으로 드나드는 사람도 별로 없는 터라 선착장은 더없이 쓸쓸하기만 합니다. 넓은 갯벌에는 간간히 날아드는 새들과 수많은 구멍속을 드나들며 한가로운 옆걸음질을 하고 있는 게들이 전부였습니다.

원산도는 산과 구릉이 많아 원산도라는 지명이 붙은 만큼 7.04km의 땅에는 가장 높은 오봉산을 필두로 증봉산, 범산, 안산, 당산 등의 산들이 섬의 끝자락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고, 섬 안쪽으로는 낮은 구릉지대가 많습니다. 지도상으로 봤을 때는 섬의 남쪽으로는 오봉산, 사창, 원산도, 저두 해수욕장이, 북쪽으로는 드넓은 갯벌로 이뤄진 양식장이 즐비합니다.

원산도의 장미빛 이쁜 민가 풍경... 원산도 선촌 선착장에서 초전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여러 마을을 만납니다.
원산도의 장미빛 이쁜 민가 풍경...원산도 선촌 선착장에서 초전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여러 마을을 만납니다.문일식

원산도 역시 그다지 크지 않은 섬이다 보니, 도로의 대부분은 차 두 대가 가까스로 스쳐 지나갈 정도의 시멘트 길입니다. 삽시도에서 도착한 선촌 선착장을 나와 원산도 일주에 들어갔습니다. 바다와 갯벌을 등지고 원산도의 내륙으로 나 있는 도로를 타고 들어가면 섬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논과 밭이 많이 있습니다.

구치, 진촌, 섬창을 지나 원산도의 5개 선착장 중 하나인 초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가까운 시야에 안면도의 영목항이 가깝고, 그 사이로는 군관도, 거북바위, 시루섬과 물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인 긴여 등이 바다 위에 올망졸망 솟아 있습니다.

초전선착장까지 북쪽의 해안을 끼고 달렸으니 이제는 남쪽의 해안을 차례로 둘러볼 차례입니다. 원산도의 남쪽에는 원산도,오봉산 해수욕장이 크게 자리잡고 있고, 사창과 저두해수욕장 사이사이에 끼어 있고, 전체적으로 일렬로 나란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봉산 해수욕장의 전경 오봉산 선착장에서 바라본 오봉산 해수욕장의 깨끗한 풍경
오봉산 해수욕장의 전경오봉산 선착장에서 바라본 오봉산 해수욕장의 깨끗한 풍경문일식

원산도의 서쪽은 오봉산과 함께 증봉산, 범산 등의 5개의 봉우리가 포진하고 있고, 예전에 봉수대가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 아래로는 오봉산 해수욕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봉산 해수욕장은 원산도에 있는 해수욕장 가운데 편의시설이 가장 잘 갖춰진 곳입니다. 대규모 펜션단지도 있어 불편함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대규모 펜션단지 뒤편으로 돌아가면 오봉산 선착장에 이르는데 선착장 오른편에도 작은 규모의 해변이 있습니다. 물은 맑고 깨끗하지만, 해수욕장으로는 작고, 파도가 센 편입니다. 오봉산 선착장에서는 오봉산 해수욕장이 한 눈에 바라다 보입니다. 넓은 규사질의 백사장과 완만한 해변의 풍경이 차분하게 펼쳐집니다.


사창해수욕장의 전경 오봉산,원산도 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작은 해수욕장입니다.
사창해수욕장의 전경오봉산,원산도 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작은 해수욕장입니다.문일식

푸른 기운을 잃어 버린 하늘 따라 바다도 푸르름을 잃고, 긴 백사장을 드러낸 채 저 멀리 찰랑찰랑 일렁거리가만하는 바다는 밋밋하기 그지 없습니다. 밋밋한 바다라지만 금세 싫증이 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바닷물이 신발을 적실 때까지는 걸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곳이 바로 서해바다의 장점이라면 장점입니다. 뒷짐을 져도 되고, 팔짱을 껴도 되고, 침묵이 절로 느껴지는 바닷가, 오로지 걸을 때만 들리는 발자국소리와 파도소리에 의지해 걸으며 사색에 잠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창해수욕장에서 만난 녀석들 사창해수욕장에서 여러 동물들을 만났습니다.
사창해수욕장에서 만난 녀석들사창해수욕장에서 여러 동물들을 만났습니다.문일식

오봉산 해수욕장의 동쪽으로는 용뿌리라는 갯바위 군락을 지나 오봉산 해수욕장보다는 규모가 작은 사창해수욕장이 있습니다. 펜션형 민박 두세 채 정도가 전부인 이곳은 원산도, 오봉산해수욕장보다 호젓한 휴식을 만끽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적 드문 사창 해수욕장 인근 민박집에서는 개들만이 낯선 이방인을 향한 경계의 눈빛으로 끊임없이 짖어대고 있습니다. 녀석들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풀섶을 지나다 어린 토끼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사방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윗편에 토끼장이 있는데 어린 녀석들이 세상을 만끽해 보겠노라며 잠시 외출을 한 모양입니다.

사창 해변에 어미소와 송아지 한 마리가 서 있습니다. 낯선 사람을 잔뜩 경계하며 큰 눈망울을 꿈뻑거리기만 합니다. 송아지에게 다가갈라 치면 무거운 걸음걸이로 금세 어미소한테 가버립니다. 영낙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어미소도 낯선 사람이 다가오는게 좋지는 않은지 계속 뚫어져라 쳐다만 봅니다. 머리 위로 솟은 뿔이 새삼 위협적이어서 더는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원산도 해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갯메꽃 원산도 해수욕장 모래밭에 피어난 갯메꽃 군락입니다.
원산도 해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갯메꽃원산도 해수욕장 모래밭에 피어난 갯메꽃 군락입니다.문일식

원산도 해수욕장은 원산도에서 가장 긴 백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사장만이 길게 드러 누워 있고, 인적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갯메꽃을 처음 보았습니다. 아니 그동안 여행 다니면서 보아왔을 게 분명한데 아마도 관심이 없었던 것일 겁니다. 분홍 나팔꽃처럼 생긴 갯메꽃은 바닷가 모래에서만 자랍니다. 삽시도에서도 간간히 봤던 꽃인데, 원산도에서 다시 보니 더욱 반가운 마음이 일었습니다.

원산도 해수욕장의 고운 모래밭에 흐드러지게 핀 갯메꽃을 보고 같이 동행했던 선배는 이렇게 큰 갯메꽃 군락지는 보기 드문 경우라 하시며 연신 사진을 찍으셨습니다. 갯메꽃 군락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입을 크게 벌리고 큰 소리로 합창을 하는 것 같습니다. 모진 해풍에도 불구하고, 꽃을 피우는 갯메꽃의 강한 생명력이 경이롭던 순간이었습니다.

저두항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어르신. 저두항은 원산도 동쪽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다 건너 대천 땅이 보입니다.
저두항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어르신.저두항은 원산도 동쪽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다 건너 대천 땅이 보입니다.문일식

저두 선착장은 대천과 원산도를 가장 가깝게 이어주는 곳입니다. 저두 선착장에서 멀리 보령 화력발전소가 구름같은 하얀 매연을 연신 뿜어내고 있습니다. 어촌의 한가로움보다는 쓸쓸함이 느껴지는 오후의 선착장,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한 어르신이 지긋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은 아닌 듯했고, 오랫동안 바다를 응시하는 모습이 왠지 바다에 대한 서운함을 던지는 것 같아 애닯기만 합니다. 대천항에서 출발한 배가 선착장으로 들어왔고, 얼마되지 않은 사람들이 저마다 바쁜 걸음을 재촉해 선착장을 빠져나갑니다.

송림에서 바라본 원산도 해수욕장 을씨년스런 다른 민박집과는 달리 아름다운 송림과 주변이 깨끗하게 정리된 그린하우스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송림에서 바라본 원산도 해수욕장을씨년스런 다른 민박집과는 달리 아름다운 송림과 주변이 깨끗하게 정리된 그린하우스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문일식

원산도 해수욕장 뒷편에는  소나무 숲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해풍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막아주는 소나무 숲 안팎으로는 성수기 때 민박집으로 쓰이는 가건물이 을씨년스럽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창 비수기인 지금 어느 집에도 인기척은 없습니다. 유일하게 민박집인 그린하우스에 한 분이 계셨고, 물값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소나무 숲 안에서 야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초전항으로 넘어가는 일몰 원산도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하루를 마감하는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초전항으로 넘어가는 일몰원산도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하루를 마감하는 아름다운 시간입니다.문일식

밤이 찾아오자 원산도의 밤하늘에는 별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바다건너 대천 땅의 불빛이 일렁이기 시작합니다.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는 그동안 보았던 서해안 바다의 그것보다는 힘있고, 강렬하게 들립니다.

파도소리는 박자를 맞춘 듯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해변과 입맞춤을 합니다. 왼쪽에서 시작된 파도소리가 서서히 커지며 들려오면 오른쪽으로는 파도소리가 멀어지면서 잦아듭니다. 마치 서라운드 입체음향을 듣고 있는 듯…. 원산도의 밤은 깊어 갑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산도 #오봉상해수욕장 #원산도해수욕장 #사창해수욕장 #저두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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