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어느 바보가 당신을 믿겠습니까

[마지막 편지] 이번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등록 2008.06.07 06:04수정 2008.06.07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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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5일 낮 청와대에서 반하넨 핀란드 총리와 오찬 도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5일 낮 청와대에서 반하넨 핀란드 총리와 오찬 도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연합뉴스 조보희
이명박 대통령이 5일 낮 청와대에서 반하넨 핀란드 총리와 오찬 도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조보희

이명박 대통령님,

 

안녕하시냐고 물을 수가 없네요. 안녕하실 리가 없으니까요. 지금 광화문 네거리에서는 시민들이 경찰 버스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대통령이 주무시고 있는 청와대로 가려 합니다. 깊은 밤이지만 대통령을 기필코 만나야겠다는 겁니다. 어디 광화문뿐입니까? 안국동에서도, 삼청동에서도, 그리고 서대문에서도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마다 수만 명의 시민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처지에서 물론 이것은 결코 예의 바른 일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제 시민들을 탓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이 대통령을 만나자고 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잖습니까? 벌써 한 달이 넘도록 시민들은 대통령과 진실한 대화를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시민들을 외면했습니다. 현충일인 6일, 대통령은 시민들을 만나는 대신 스님들을 만나셨더군요.

 

"지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재협상 얘기를 해서 경제에 충격이 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먼저 묻고 싶은 점은 대통령이 말하는 '더 큰 문제'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국민의 80% 이상이 절실히 재협상을 원하고, 수도 서울의 복판에서 밤마다 수만, 수십만의 시민들이 스스로 뽑은 대통령을 부인하고 있는 현실보다 더 큰 문제가 대관절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대통령의 발언이 우리에게 비애를 안겨 줍니다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출·수입 자율규제는 사실상 재협상과 다름없다. 과거 일본이 미국과 자동차 교역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율 규제에 합의하면서 문제를 풀었다."

 

물론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가장 큰 문제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위험 부위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은 30개월 이하 소의 위험성도 30개월 이상 소에 못지않습니다. 또한, 업자들의 자율 규제가 국가 간 재협상과 다름없다는 대통령의 논리는 견강부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대미 자동차 교역에서 생긴 문제를 자율 규제로 해결했다는 말씀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아전인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1980년 일본의 자동차 업계가 대미 수출에 자율 규제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기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일본은 자율 규제를 하는 대신 미국 내 현지 생산량을 급격히 늘려 미국 자동차 생산량의 28.2%를 점유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1980년은 미국 자동차 산업에서 최악의 해로 기록됩니다. 요컨대 일본은 자율 규제라는 무기를 써서 미국 자동차 산업을 더 크게 위축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졸속으로 불공정하게 맺어진 한미 쇠고기 협상에 적용될 수 있다는 말인지요?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미국은 자율 규제라는 무기로 한국 쇠고기 시장을 더 효율적으로 점령할 수 있다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30개월 이상 소는 안 되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던 대통령이 다시 태도를 누그러뜨린 점이 부끄럽습니다. 최근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보인 언행은 만행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그는 얼마 전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온 야당 대표에게 불쑥 전화를 걸어 "실망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외교부 장관에게는 "재협상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고 "한국 국민들은 과학적 지식을 더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더 배워야 한다'는 말만큼 모욕적인 말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도 누구 하나 버시바우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할 줄 모르더군요. 이런 차에 대통령이 나서 미국 대사가 한 말과 거의 같은 수준의 발언을 되풀이하다니요? 미국 대사의 말이 우리를 살 떨리게 했다면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에게 비애를 안겨 줍니다.

 

통상 국가 이전에 민주공화국입니다

 

 지난 6일 제53주년 현충일 추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추념사를 하고 있다.
지난 6일 제53주년 현충일 추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추념사를 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지난 6일 제53주년 현충일 추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추념사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우리가 통상 국가인데 지금 재협상을 요구하면 통상마찰 등으로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 자동차, 반도체 등 우리 상품의 수출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문맥으로 볼 때, 그나마 이 협상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대통령이 알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협상을 잘못한 것과 그것을 졸속으로 해치웠다는 것을 자인하고 사과부터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가 아닐는지요?

 

또한,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통상 국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통상 국가라는 개념은 어디에 규정되어 있는 것인지요? 물론 우리나라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입니다. 그런 점에서라면 한국은 통상 국가입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중진국 이상치고 통상 국가 아닌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설령 통상 국가라 하더라도 재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오히려 통상 국가니까 재협상도 하고 3차 협상도 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세상에 다시 할 수 없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국민들은 재수도 하고 재혼도 하는데 재협상은 절대 안 된다니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한국은 통상 국가 이전에 민주공화국 아닙니까? 이것은 대통령이 준수하겠다고 선서한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의 말대로 통상 국가라는 현실을 무시하면 경제적인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국가의 검역 주권과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잘못된 협상을 바로잡자는 것이 어째서 통상 국가임을 무시하는 일입니까?

 

그렇다면 차기 미 대통령으로 유력한 오바마 같은 이는 왜 한미FTA를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까? 오바마가 무식한 겁니까? 미국은 통상국가 아닙니까? 설마 미국 정치인은 그렇게 말해도 되지만 약소국 정치인은 안 된다는 사대주의 또는 패배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게다가 통상 국가라는 점만 중시하고 민주공화국임을 무시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무서운 결과를 만듭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비단 수출이 문제입니까? 국민은 물론 대통령의 신상에도 불행한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그러니 대통령은 통상 국가 운운하기 전에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임을 먼저 인식하셔야 합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대통령의 정책에 있어

 

 5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반대 29차 촛불집중문화제에 참석했던 한 시민이 세종로네거리를 막고 있는 경찰버스 바리케이트앞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규탄하는 종이를 들고 있다.
5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반대 29차 촛불집중문화제에 참석했던 한 시민이 세종로네거리를 막고 있는 경찰버스 바리케이트앞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규탄하는 종이를 들고 있다.권우성
5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반대 29차 촛불집중문화제에 참석했던 한 시민이 세종로네거리를 막고 있는 경찰버스 바리케이트앞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규탄하는 종이를 들고 있다. ⓒ 권우성

인적 쇄신을 하신다고요? 청와대 수석진이 일괄 사표를 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물론 내각이나 수석진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대통령의 정책에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대통령의 정책이 대기업과 소수의 기득권층을 위한 것이기에 그렇게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겁니다.

 

정책이 부도덕한데 어떻게 도덕적인 사람이 오겠습니까? 대통령이 아무리 '소통'을 말하고 '한마음'을 강조한다고 한들 그 진정성을 믿기 어렵습니다. 지금도 공공기관장에는 '고소영' 인맥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6·15선언은 용공이적행위'라고 주장하던 수구주의자를 통일교육원장에 임명하지 않았습니까?

 

현실이 이럴진대 어느 바보가 대통령을 믿는다는 말입니까?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인적 쇄신으로는 분노한 국민의 양에 차지 않을 것입니다. 국정을 일대 전환해야 합니다. 쇠고기 재협상에 나서는 한편 대운하와 의료보험 민영화와 공교육 강화를 포기한다고 선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행한 상황은 피해야

 

지금 상황은 어떠한 낙관도 불허합니다. 자정이 지나도록 시위에 참여한 시민의 숫자는 거의 줄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명박 퇴진"을 외쳤습니다. 지금은 새벽 두 시를 넘기고 있고 경찰은 시민들에게 분말소화기를 분사하고 있습니다.

 

"으쌰, 으쌰!" 하는 고함이 광화문 하늘을 흔들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청와대 방어벽으로 설치해 놓은 버스를 들어 올리고 있는 겁니다. 시민들은 이미 경찰 버스의 철망을 해체하고 유리창을 깨부쉈습니다. 그들은 밧줄로 전경들이 타고 있는 버스를 넘어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아침 식사를 청와대에서 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반정부 투쟁입니다.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농성 세번째날인 7일 새벽 서울 세종로네거리에 모인 시민, 학생들이 청와대 방향 골목길을 가로막은 경찰버스를 밧줄을 걸어 끌어내고 있다.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농성 세번째날인 7일 새벽 서울 세종로네거리에 모인 시민, 학생들이 청와대 방향 골목길을 가로막은 경찰버스를 밧줄을 걸어 끌어내고 있다.권우성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농성 세번째날인 7일 새벽 서울 세종로네거리에 모인 시민, 학생들이 청와대 방향 골목길을 가로막은 경찰버스를 밧줄을 걸어 끌어내고 있다. ⓒ 권우성

 

혹시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해지리라 기대하고 계십니까? 그동안 발생했던 위장전입이나 위장취업 또는 BBK 문제처럼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고 보시는지요?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지나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미 숱한 비리와 의혹을 눈감아 주었기에 더 이상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달도 차면 기울고 물도 차면 넘친다'고 하지 않던가요.

 

집회와 시위가 마냥 평화적으로만 이루어지리라고 보십니까? 이러다가 뜻하지 않게 희생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국정을 전면적으로 전환한다는 대통령의 선언이 필요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필경 대통령의 사퇴 외에는 길이 없는 불행한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항일역사팩션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2008.06.07 06:04ⓒ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항일역사팩션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민주공화국 #이명박 #재협상 #자율규제 #더 늦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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