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이미지 갈무리
추광규
지난 금요일 입니다. 약속 때문에 밤 12시가 다 되어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아내가 똑 같다며 빨리 TV를 보라는 것입니다.
TV에서는 KBS 2TV의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이라는 프로그램이 한참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잠시 지켜보니 아내의 설명이 뒤따릅니다.
두 아들의 모친이 아들들에게 돈을 빌려줬다며 양육비를 청구했고 이와 관련해 며느리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장가갈 때 아들에게 집을 사준 것, 유학갔을 때 대줬던 각종 비용 등에 대해 월 100만원을 내놓으라고 했다는 줄거리입니다.
방송을 지켜보니 특히 큰 아들은 수입의 80%에 가까운 차용금(?)을 어머니한테 갚다보니 자신의 부인과 갈등을 겪다가 이혼신청에까지 이른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 돈을 가지고 '여자는 가꿔야 된다'며 피부과 시술을 받고 쇼핑을 하는 등 아들 부부들의 어려운 사정과는 동떨어진 넉넉한 삶을 계속해서 살고 말입니다.
이날 밤 늦게까지 계속되는 방송내내 아내는 제가 요즈음 저희 둘째 아들에게 받고 있는 '차용증'과 그 동기가 비슷한 것 같다면서 방송내내 박장대소를 멈추지를 않는 것입니다.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의 경제 관념은 너무 다른 듯해 걱정초등학교 6학년인 첫째 아들 정민이는 저희 부부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지 돈의 소중함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듯합니다. 용돈을 주어도 잘 쓰지 않고 가능하면 아끼는 편입니다. 이에 반해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아들 정연이는 형과는 반대입니다.
일주일치 용돈을 주어도 한꺼번에 써버리는 등 경제관념이 조금 뒤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아들의 경제관념을 바로잡아 준다고 몇차례 노력은 해보았지만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달 제가 기가막힌 아이디어(?)를 냈답니다. 둘째 아이에게 차용증을 받기로 한 것입니다. 아이들 학비로 꽤 수월찮은 돈이 들어가는데 그 돈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수 있다는 계산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동안은 학원비를 은행에서 학원통장으로 자동이체 해왔지만, 제가 일부러 현금을 찾아와 이를 아들에게 건네면 아들은 엄마에게 다시 이 돈을 건네줘 학원비를 납부하게 하는 것 입니다.
물론 돈을 건네면서 차용증을 받는 것 입니다. 몇월 며칠 얼마를 학원비 명목으로 아빠에게 빌렸다며 차용증을 써서 받았답니다.
둘째 아이는 처음에는 차용증의 의미도 모르고 내민 차용증에 이름을 쓰라고 하니까 배시시 어색하게 웃기만 했답니다. 제 나름으로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일이냐는 듯 말입니다. 하지만 몇 차례 그렇게 계속해서 차용증을 받았더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차용증에 서명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