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대교회와 성 바실리오 성당필자가 장교후보생 시절에 다녔던 교회(왼쪽)와 성당의 모습. 그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것 같다.
3사관학교 홈페이지
때는 바야흐로 1997년 4월. 입교한 지 10여 일 만에 처음으로 주말을 맞아 종교활동에 참여했다. 첫 주에는 개인 관물대와 내무반 정리 등으로 인해 정신없던 터라 종교활동 자체가 편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리된 뒤인 그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종교활동이 시작되었다.
물론, 종교활동이 편성되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참석하는 것은 아니고 종교가 없는 동료들은 내무반에서 쉬면서 공부를 하는 등 개인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훈련소에 같이 입소한 동기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종교활동만한 좋은 기회가 없었기에 난 개인 시간을 포기한 채 종교활동에 참석했다.
'어디를 가야 동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까?'특별한 종교가 없던 난 한참을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같은 내무반을 쓰던 동료 한명이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야! 오늘 천주교에서 라면 준댄다. 거기로 가자!""천주교에는 얘들이 별로 안 가잖아?""그래도 오늘은 라면 준다고 해서 많이 올 거 같은데?" "그래? 그럼 가보지 뭐. 라면도 먹고 싶었는데…."그렇게 해서 내무반 동료와 함께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당이라는 곳을 찾았다. 천주교 의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성당을 찾은 난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 종교보다는 먹을 것에 더 관심이 많았던 터라 성당에 도착하자마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힘들었던 일주일을 보내서 그런지 졸음이 쏟아져 올 무렵, 인도자가 앉았다 일어났다를 시키는 게 아닌가! 옆의 동료에게 물어보니 천주교 미사란 게 원래 그런 것이라고 귀띔해 줬다.
'뭐야. 졸지도 못하고…. 그래도 끝나면 라면 준다니까.'그렇게 한 시간여의 미사가 끝난 뒤 이제 라면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한순간 졸음이 싹 사라지고 어느새 내 앞에는 쫄깃쫄깃하게 끓여진 라면이 대령되었다.
"이게 얼마만에 먹어보는 라면이냐?""그러게 말야. 끓인 라면은 입소하고 처음이지? 오길 잘했지?""그러게. 다음 주에도 또 천주교 와야 되겠다."얼마나 맛있었는지 두 그릇이나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훈육대('중대' 개념)별로 줄을 맞추어 내무반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한쪽에서 줄 맞추어 걸어가던 다른 훈육대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 손에 '롯데리아'라고 적혀있는 종이상자를 든 채. 그 종이상자 안에는 멀리서 바라봐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닭다리와 감자튀김 등이 들어 있었다.
"저건 뭐지? 어디 갔다 오는데 잔뜩 싸들고 오지?""글쎄. 얼른 훈육대 가서 다른 얘들한테 물어보자."발걸음을 재촉해 내무반에 도착하자 동료들이 둘어앉아 방금 전 보았던 롯데리아 세트를 나누어먹고 있었다.
"야! 그거 뭐냐? 다른 얘들도 다 하나씩 들고 있던데?""이거? 교회에서 나누어 준거야. 다음 주에도 준다고 그랬어.""그래? 정말이야?""그럼. 교회에서 거짓말 하겠냐? 다음 주에는 세례식도 한대.""아~ 나두 교회갈 걸. 원래 난 교회에 갔어야 됐는데…."롯데리아 세트 때문에 세례까지 받다어찌 보면 핑계거리 밖에 되지 않겠지만 난 그 당시에만 특정한 종교가 없었지 그 전에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다. 어머님이 생전에 계시던 때 같이 교회를 다녔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역시 내가 원한 바는 아니었지만 기독교 미션스쿨이었다. '라면 준다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교회에 갔었을 텐데' 하는 후회만 들었다.
'다음 주에 또 준다니까 다음 주부터는 교회에 가야지.'개인화기, 수류탄, 정신교육 등 정신없이 바쁜 교육일정을 소화하다보니 금세 또 주말이 돌오왔다. 마침내 기다리던 종교활동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오늘은 꼭 교회로 가야지. 세례식도 하고 지시봉도 준다니까….'교회에 간다는 것보다 내 생각은 이미 잿밥에 있었다. 롯데리아 세트에 지시봉까지. 교회에 도착하고 보니 두 가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교회의 웅장함이었다. 몇 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복층의 교회였다. 또 한 가지는 그 웅장한 교회 안을 동료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동료들 사이에는 나와 같은 학교에서 온 동기들이 모두 있었다.
"야! 다음 주에는 여기 ○○번 부근에서 다 만나자.""그래. ○○한테도 보면 말 전해줘라. 여기서라도 일주일에 한번은 보자."너무나 반가웠다. 그렇게 소근대며 한참을 동기들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세례준비가 다 끝난는지 방송소리가 나왔다.
"세례를 신청한 후보생들은 모두 앞으로 나오세요."롯데리아 세트 먹으려고 교회에 왔는데 이제는 세례까지 받게 되었다. 물론 그 덕분에 학교 동기들도 만나게 되었으니 나쁠 건 없었다.
세례를 받고 십자가 목걸이와 지시봉까지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세례를 마치고 난 뒤에는 바라던 롯데리아 세트까지도 손에 쥐고는 동기들과 맛있게 먹으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이후로도 난 육군소위로 임관할 때까지 종교의 변화 없이 쭉 교회를 다녔고, 그 곳에서 동기들과 서로의 정보를 주고 받으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먹을 것' 때문에 종교를 바꾸었다는 사실이 가끔 실소를 자아내긴 하지만 춥고 배고팠던 훈련소 시절의 잊지 못할 추억거리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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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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