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격장 외줄타기앞에서 줄을 타고 있는 필자와 뒤에서 통닭이 돼 거꾸로 매달린 채 줄을 건너고 있는 동료의 모습. 외줄타기로 건너고 난 뒤 옷을 벗고 보면 배에 한줄로 피멍이 들어있다.
김동이
코스 중 가장 먼저 받은 훈련은 외줄, 두줄, 세줄타기로 그나마 훈련장 코스 중에서는 수월한 훈련이었다.
이 중에서도 외줄타기는 줄타기 코스 중에서도 가장 힘든 훈련으로 한 발로 균형을 잡고 두 팔의 힘으로만 건너가야 하며 만약 균형을 잃기라도 하면 일명 '통닭'이 돼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줄을 잡고 건너가야 한다.
만약 통닭이 되기라도 하면 다 건넌 후에도 열외가 돼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조교의 손에 이끌려 또 다시 혹독한 얼차려를 받아야 한다. 난 다행히도 균형을 잃지 않고 무사히 건너와 훈련을 마친 뒤 수통물로 목을 축이며 짧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통닭'이 돼 조교들의 손에 이끌려간 동료 올빼미들은 휴식을 취하고 있던 동료들을 부러워하며 얼차려를 받고 있다.
"올빼미! 정신 못 차립니까? 앞꿈치 붙입니다. 앞꿈치. 똑바로 못합니까?"내가 비록 얼차려를 받고 있는 입장이 아니었지만 조교들의 입에서 마치 로봇에 입력 시켜놓은 말처럼 나오는 "앞꿈치 붙입니다. 앞꿈치"라는 말은 훈련 내내 귓전에 맴돌았다. 심지어는 밤에 잠잘 때도 이 말이 환청처럼 들리기도 했다. 몇몇 동료들은 마치 자신이 조교가 된양 잠꼬대로 이 말을 해 같이 숙소를 쓰는 동료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후에도 외줄타고 물 건너기, 타이어 통과 등 여러 코스를 체험했고, 저녁을 먹은 뒤 야간 담력훈련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같은 조원이 야맹증, 담력훈련 혼자 한 꼴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출발하게 되는 야간 담력훈련은 2인 1조로 편성해 지도를 보고 정해진 코스를 돌며 도장을 받아 오는 식으로 진행됐다. 어둠이 깔리기 전까지는 공포분위기 조성을 위해 공포영화를 시청했다.
영화 시청이 끝나고 드디어 훈육장교의 입에서 담력훈련을 함께 할 조원의 명단이 발표되었다. 조원은 번호대로 지정이 되었다. 이제 내 걱정은 앞 번호 동기냐, 뒷 번호 동기냐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나랑 침대도 위아래로 쓰고 그동안 친하게 지내왔던 앞번호가 됐으면 좋겠는데...'점점 호명이 나에게 가까워지자 자동으로 계산을 하게 되었다.
'어? 뭐야? 뒷번호 애하고 같은 조잖아? 에이~'조편성이 끝나고 날이 어두워지자 앞 조부터 출발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고 '출발!' 신호와 함께 같은 조원이 된 동기와 길을 떠났다. 오직 플래시와 지도 한 장만 달랑 든 채. 어느덧 숙소를 벗어나 어둠이 짙게 깔린 숲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때 같은 조원인 동료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야! 나 사실은 야맹증 있어서 밤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이거든. 니가 나 좀 이끌어줘라.""뭐야? 같이 힘을 합쳐서 조까지 편성해 준 건데 혼자 하라고? 아까 왜 말 안했어?""말한다고 조 편성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해서.""그럼, 나 혼자 찾아가야 되겠네?"답답했다. 하필 같은 조원이 야맹증이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혼자서 헤쳐나갈 수밖에. 그런데 숲속으로 점점 들어갈수록 움직이는 것을 나 혼자밖에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 때 무엇인가가 앞에서 휙 하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어! 깜짝이야. 깜짝 놀랐네.""왜? 뭔데?""응. 아무 것도 아냐."이야기한들 무엇하랴. 차라리 나 혼자 무서운 편이 낫지 괜히 이야기했다가 보이지도 않는 동기가 두렵기까지 하면 더 걱정이었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면서 걷다보니 어느덧 첫 번째 관문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숨어있던 조교에게 도장을 받은 뒤 코스를 이동, 한참여 만에 모든 관문을 통과하고 출발지로 돌아왔다.
"고맙다. 너 덕택에 무사히 담력훈련 끝내서.""뭘. 둘이 같이 해 낸 거지. 근데 무섭긴 했어."인간한계 도전에서 승리하다그 이후에도 유격훈련은 계속됐다. 참호전투도 있었고, 실탄이 오고가는 전장 상황 속에서 고지를 점령하는 소부대단위 전투훈련도 있었다. 또 인간이 가장 두려움을 느낀다는 11m 높이에서 낙하산을 매고 뛰어내리는 막타워 등 공수훈련도 극복해냈다.
4일간의 힘들었던 '화산'에서의 유격훈련이 막 끝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보금자리인 3사관학교로 복귀하는 일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