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맹증 조원 때문에 담력훈련 나 혼자했네

[병영일기 ⑧] 장교후보생 시절 겪은 유격훈련 에피소드 Ⅱ

등록 2008.06.21 21:59수정 2008.06.22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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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훈련 세줄타기와 두줄타기 필자의 유격훈련 모습. 왼쪽이 세줄타기, 오른쪽이 두줄타기이다. '화산'유격장에서의 유격훈련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유격훈련 세줄타기와 두줄타기필자의 유격훈련 모습. 왼쪽이 세줄타기, 오른쪽이 두줄타기이다. '화산'유격장에서의 유격훈련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김동이

"하나 둘 셋 '하나', 하나 둘 셋 '둘'..."
"목소리가 그것밖에 안 나옵니까?"


유격장은 그야말로 젊은 장교후보생들의 함성, 아니 괴성으로 가득 찼다. 또 그 괴성은 메아리로 변해 '화산' 전체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제는 '장교후보생'이 아닌 '올빼미'로 불려지고 있는 동기들의 목소리도 처음의 쩌렁쩌렁하고 맑던 소리에서 점점 탁배기(막걸리) 먹은 것처럼 쉰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교관이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라고 주문하지만 아무리 악을 써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교관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목소리가 작다며 계속해서 PT체조(유격장에서 하는 특별한 체조로 1번부터 15번까지의 동작이 있는 것으로 기억된다)의 횟수만 높여갔다. 이중에서도 특히 누운 상태에서 고개를 들고 발은 모은 상태로 곧게 들어 왼쪽 오른쪽으로 왔다갔다하는 8번 온몸비틀기는 교관들의 단골 메뉴이자 가장 힘든 동작으로 구령조차 힘들었지만 교관들은 이 동작만 반복해서 하도록 강요(?)했다.

정신나간 올빼미들 덕에 PT체조 실컷 맛보다

또한, 교관들은 교묘하게 횟수를 바꿔 올빼미들을 당황케 했다.


"지금부터 PT체조를 하는데, 모든 동작을 하는데 있어 구령을 붙이는데, 마지막 구호는 붙이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올빼미들은 구령소리가 작아 행여나 교관의 기분이 상할까봐 악에 바친 괴성을 쏟아낸다.


"PT 8번 준비! PT 8번 5회만 합니다. 몇 회?"
"5회"
"PT 8번 8회 시작!"
"하나 둘 셋 '하나', 하나 둘 셋 '둘'..."

어느덧 교관이 주문한 8회가 가까워지고 올빼미들은 긴장하기 시작한다. 누구 한명이라도 마지막 구호를 했다가는 또 몇 회까지 그 강도가 높아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5회인 줄 알고 잠시 주춤했던 몇 명의 올빼미가 눈에 띄었기 때문에 불안감은 더욱 엄습해왔다.

PT 8회가 끝나자 어김없이 누군가의 입에서 "여덟"이라는 구호가 흘러나왔다. 모든 올빼미들의 시선이 그놈(?)에게로 향한다. 마치 잡아먹을 것처럼... 본인 하나로 인해 단체 모두가 또다시 언제 끝날지 모를 PT체조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눈총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때는 동기가 아닌 적(?)이 되는 셈이다.

'조금만 정신차리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하지? 어처구니없고 한심하구만.'

PT체조가 끝나자 교관의 입에서는 어김없이 엄한 호통과 함께 정신교육이 시작된다.

"마지막 구호한 올빼미 누굽니까? 뒤로 열외합니다."
"올빼미 열외합니다."(조교들이 마지막 구호를 한 올빼미를 뒤로 끌어낸다)
"나머지 올빼미들은 앞꿈치 붙입니다. 앞꿈치. 여러분 동료의 입에서 마지막 구호가 나왔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계속해서 PT체조를 합니다. PT체조가 끝나야 점심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 이후에도 마지막 구호를 대는 정신나간 올빼미들 덕분에 한참을 더 PT체조를 해야 했다. PT체조가 끝난 후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정신나간 올빼미들은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외면할 수 없었다.

꿈속에서도 들리는 환청 "올빼미! 앞꿈치 붙입니다 앞꿈치"

유격훈련의 가장 기본이라는 PT체조를 오전 내내 배운 유격대원들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오후부터는 본격적인 유격 코스훈련에 돌입했다.

유격장 외줄타기 앞에서 줄을 타고 있는 필자와 뒤에서 통닭이 돼 거꾸로 매달린 채 줄을 건너고 있는 동료의 모습. 외줄타기로 건너고 난 뒤 옷을 벗고 보면 배에 한줄로 피멍이 들어있다.
유격장 외줄타기앞에서 줄을 타고 있는 필자와 뒤에서 통닭이 돼 거꾸로 매달린 채 줄을 건너고 있는 동료의 모습. 외줄타기로 건너고 난 뒤 옷을 벗고 보면 배에 한줄로 피멍이 들어있다.김동이
코스 중 가장 먼저 받은 훈련은 외줄, 두줄, 세줄타기로 그나마 훈련장 코스 중에서는 수월한 훈련이었다.

이 중에서도 외줄타기는 줄타기 코스 중에서도 가장 힘든 훈련으로 한 발로 균형을 잡고 두 팔의 힘으로만 건너가야 하며 만약 균형을 잃기라도 하면 일명 '통닭'이 돼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줄을 잡고 건너가야 한다.

만약 통닭이 되기라도 하면 다 건넌 후에도 열외가 돼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조교의 손에 이끌려 또 다시 혹독한 얼차려를 받아야 한다. 난 다행히도 균형을 잃지 않고 무사히 건너와 훈련을 마친 뒤 수통물로 목을 축이며 짧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통닭'이 돼 조교들의 손에 이끌려간 동료 올빼미들은 휴식을 취하고 있던 동료들을 부러워하며 얼차려를 받고 있다.

"올빼미! 정신 못 차립니까? 앞꿈치 붙입니다. 앞꿈치. 똑바로 못합니까?"

내가 비록 얼차려를 받고 있는 입장이 아니었지만 조교들의 입에서 마치 로봇에 입력 시켜놓은 말처럼 나오는 "앞꿈치 붙입니다. 앞꿈치"라는 말은 훈련 내내 귓전에 맴돌았다. 심지어는 밤에 잠잘 때도 이 말이 환청처럼 들리기도 했다. 몇몇 동료들은 마치 자신이 조교가 된양  잠꼬대로 이 말을 해 같이 숙소를 쓰는 동료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후에도 외줄타고 물 건너기, 타이어 통과 등 여러 코스를 체험했고, 저녁을 먹은 뒤 야간 담력훈련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같은 조원이 야맹증, 담력훈련 혼자 한 꼴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출발하게 되는 야간 담력훈련은 2인 1조로 편성해 지도를 보고 정해진 코스를 돌며 도장을 받아 오는 식으로 진행됐다. 어둠이 깔리기 전까지는 공포분위기 조성을 위해 공포영화를 시청했다.

영화 시청이 끝나고 드디어 훈육장교의 입에서 담력훈련을 함께 할 조원의 명단이 발표되었다. 조원은 번호대로 지정이 되었다. 이제 내 걱정은 앞 번호 동기냐, 뒷 번호 동기냐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나랑 침대도 위아래로 쓰고 그동안 친하게 지내왔던 앞번호가 됐으면 좋겠는데...'

점점 호명이 나에게 가까워지자 자동으로 계산을 하게 되었다.

'어? 뭐야? 뒷번호 애하고 같은 조잖아? 에이~'

조편성이 끝나고 날이 어두워지자 앞 조부터 출발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고 '출발!' 신호와 함께 같은 조원이 된 동기와 길을 떠났다. 오직 플래시와 지도 한 장만 달랑 든 채. 어느덧 숙소를 벗어나 어둠이 짙게 깔린 숲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때 같은 조원인 동료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야! 나 사실은 야맹증 있어서 밤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이거든. 니가 나 좀 이끌어줘라."
"뭐야? 같이 힘을 합쳐서 조까지 편성해 준 건데 혼자 하라고? 아까 왜 말 안했어?"
"말한다고 조 편성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럼, 나 혼자 찾아가야 되겠네?"

답답했다. 하필 같은 조원이 야맹증이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혼자서 헤쳐나갈 수밖에. 그런데 숲속으로 점점 들어갈수록 움직이는 것을 나 혼자밖에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 때 무엇인가가 앞에서 휙 하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어! 깜짝이야. 깜짝 놀랐네."
"왜? 뭔데?"
"응. 아무 것도 아냐."

이야기한들 무엇하랴. 차라리 나 혼자 무서운 편이 낫지 괜히 이야기했다가 보이지도 않는 동기가 두렵기까지 하면 더 걱정이었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면서 걷다보니 어느덧 첫 번째 관문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숨어있던 조교에게 도장을 받은 뒤 코스를 이동, 한참여 만에 모든 관문을 통과하고 출발지로 돌아왔다.

"고맙다. 너 덕택에 무사히 담력훈련 끝내서."
"뭘. 둘이 같이 해 낸 거지. 근데 무섭긴 했어."

인간한계 도전에서 승리하다

그 이후에도 유격훈련은 계속됐다. 참호전투도 있었고, 실탄이 오고가는 전장 상황 속에서 고지를 점령하는 소부대단위 전투훈련도 있었다. 또 인간이 가장 두려움을 느낀다는 11m 높이에서 낙하산을 매고 뛰어내리는 막타워 등 공수훈련도 극복해냈다.

4일간의 힘들었던 '화산'에서의 유격훈련이 막 끝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보금자리인 3사관학교로 복귀하는 일 밖에 없었다.

같은 조원들의 모습 보고싶은 동기들의 모습. 이들과 함께 유격훈련이 모두 끝난 뒤 도피 및 탈출을 해 집결지까지 이동했다.
같은 조원들의 모습보고싶은 동기들의 모습. 이들과 함께 유격훈련이 모두 끝난 뒤 도피 및 탈출을 해 집결지까지 이동했다. 김동이
일명 '도피 및 탈출'.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에 출발해 지도 하나만을 보고 이른 아침에 정해진 시간까지 집결지로 도착하는 훈련이었다. 이동거리는 지도상으로 봤을 때 약 40여km는 돼 보였다. 태어나서 처음보는 길을 지도 한 장만 가지고 찾아가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비교적 쉬운 길이어서 지도를 따라 갔지만 얼마 가지 못해 이내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분명 지도상에는 나와 있는 길이 실제로 가보니 풀만 무성할 뿐 사람이 다닌 흔적이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지? 우회해서 갈까? 아니면 지도에 나타난대로 그냥 뚫고 지나갈까?"
"괜히 우회하다가 제 시간에 못들어갈 수 있으니까 지도를 믿고 그냥 뚫고 가자."

의견이 모아지자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한참을 숲을 헤쳐나가다가 드디어 길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날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먼 산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결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른 애들은 다 왔을까?"
"잘 찾아 왔겠지. 빨리 가보자."

집결지에 무사히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동기들은 군장을 맨 채 그대로 눈을 붙이고 있었고, 서둘러 집결지로 도착하고 있는 동기들의 모습도 보였다.

"다들 무사히 왔구나! 왜 이리 반갑냐?"

예정된 시간 안에 집결지에 동기들이 다 모이자 그곳에서 아침을 먹고 곧장 복귀행군을 시작했다. 밤새 걸어온 터라 모두가 피곤하고 힘든 모습이었지만 이제 얼마 뒤면 학교로 복귀한다는 생각에 힘을 내서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학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발걸음을 재촉해 학교 후문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군악대가 힘차게 행군나팔을 불어댔고, 기다리고 다른 동료들과 훈육장교들이 박수를 치며 힘을 북돋아주었다.

"짧지 않은 훈련 기간 동안 단 한명의 낙오자 없이 무사히 훈련을 마쳐주어 고맙게 생각하고, 오늘은 개인 정비를 한 뒤 푹 쉬기 바란다."

훈육대장의 이 말과 함께 그 길고 길었던 유격훈련이 막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얼마 후면 12주의 훈련을 마치고 마침내 육군 소위로 임관을 하게 된다.

임관의 가장 큰 고비였던 유격훈련을 무사히 마친 뒤 난 앞으로 내 앞에 어떠한 시련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과감하게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야말로 인간한계의 도전에서 승리자로 우뚝 선 순간이었다.
#유격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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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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