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12) 초토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347] ‘공론화하다’와 ‘여럿이 이야기하다’

등록 2008.06.22 11:22수정 2008.06.2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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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공론화하다

 

.. 만약에 안전하다고 여겨진다면 그것은 실제로 안전해서가 아니라, 다만 언급되지 않고 공론화하지 않고 연구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  《꿈꾸는 지렁이들》(환경과생명,2003) 22쪽

 

 ‘만약(萬若)에’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덜어내도 되고 ‘어쩌면’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연구(硏究)되지’도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알아보지’나 ‘살펴보지’로 손볼 수 있습니다. ‘안전(安全)’ 또한 그대로 두고 싶으면 그대로 두고, 손질하고 싶으면 ‘괜찮다’나 ‘걱정없다’나 ‘말썽이 없다’쯤으로 손질해 줍니다. “언급(言及)되지 않고”는 “말하지 않고”나 “다루지 않고”로 다듬습니다. ‘실제(實際)로’는 ‘참으로’나 ‘참말로’로 고쳐 줍니다.

 

 ┌ 공론화 : x

 ├ 공론(公論)

 │  (1) 여럿이 의논함

 │   - 공론에 부치다 / 사또는 책방과 한동안 머리를 맞대곤 공론을 한다

 │  (2) 공정하게 의논함

 │   - 공론에 따라 일을 처리하다

 │  (3) = 여론

 │   - 공론이 분분하다 / 국사를 처리할 때에는 항상 공론을 고려하여야 한다

 │

 ├ 공론화하지 않고

 │→ 여론으로 퍼지지 않고

 │→ 여론이 되지 않고

 │→ 널리 알려지지 않고

 │→ 두루 이야기하지 않고

 │→ 사람들이 제대로 모르고

 └ …

 

 ‘공론’을 말뜻 그대로 풀자면 “공개로 말하다”입니다. “여럿 앞에서 말하다”나 “여럿이 함께 말하다”입니다. 보기글에서는 ‘-化’를 붙이지 말고 “공론이 되지 않고”로 적어 주거나, ‘많은 사람들 뜻’을 가리키는 ‘여론(輿論)’을 넣어서 “여론이 되지 않고”로 적어 줍니다.

 

 공론이나 여론은, 여러 사람들한테 두루 알려지는 일이곤 합니다. 사람들이 고루고루 이야기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널리 알려지다”나 “두루 이야기되다”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 공론에 부치다 → 다 함께 이야기하기로 하다

 ├ 공론을 한다 → 여럿이 이야기를 한다

 ├ 공론에 따라 → 여러 사람들 뜻에 따라

 ├ 공론이 분분하다 → 말이 여럿으로 갈리다

 └ 공론을 고려하여야 한다 → 뭇사람 생각을 살펴야 한다

 

 다 함께, 모두 함께, 서로서로, 다 같이, 서로 함께, 골고루, 모두 모여, ……. 틀림없이 누구나 알고 있을 터이나 알고 있는 대로 잘 쓰지 않고 있는 말을 하나하나 되뇌어 봅니다. ‘사람들한테 알려지다’, ‘모두한테 알려지다’, ‘누구나 알게 되다’ 같은 말투가 하루하루 사라지고 ‘공론 + 화’ 같은 말투만 하루하루 늘어가는 모습을 헤아려 봅니다.

 

 

ㄴ. 초토화시키다

 

.. 이 유충들이 카사바를 다 먹어치워 농장을 초토화시켰던 것이다 … 또한 개미는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초토화시키기 때문에 집을 옮겨야 하는 사태도 발생한다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윤효진 옮김-곤충ㆍ책》(양문,2004) 27, 59쪽

 

 ‘유충(幼蟲)’은 한자말이고, ‘애벌레’는 토박이말입니다. “집을 옮겨야 하는 사태(事態)도 발생(發生)한다”는 “집을 옮겨야 하는 일마저 생긴다”나 “집마저 옮겨야 하곤 한다”로 다듬어 줍니다. “초토화시켰던 것이다”는 “초토화시키고 말았다”나 “초토화시켰다”로 고칩니다.

 

 ┌ 초토화(焦土化) : 초토가 됨. 또는 초토로 만듦

 │   - 농축산물의 개방으로 농촌이 초토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

 ├ 초토(焦土)

 │  (1)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

 │   - 마을은 불타 순식간에 초토가 되었다

 │  (2) 불에 탄 것처럼 황폐해지고 못 쓰게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그는 인정이 메말라 버린 초토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

 ├ 농장을 초토화시켰던 것이다

 │→ 논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 논밭을 다 망쳐 놓았다

 ├ 초토화시키기 때문에

 │→ 쑥대밭으로 만들기 때문에

 │→ 망쳐 놓기 때문에

 └ …

 

 농사짓는 곳을 ‘농장(農場)’이라고도 합니다. 포도농장이라든지 돼지농장이라든지 하면서. 그러나, 열매나무를 가꾸는 농장이라면 ‘포도밭’, ‘능금밭’, ‘배밭’이라고 해 줍니다. 짐승치기만 하는 농장이라면 ‘돼지치기집’, ‘소치기집’, ‘닭치기집’이라고 해 봅니다.

 

 ┌ 농촌이 초토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 → 농촌이 무너질 판이다

 ├ 순식간에 초토가 되었다 →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었다

 └ 인정이 메말라 버린 초토 → 사람들 마음이 메말라 버린 거친 땅

 

 “초토가 된다”고 하는 ‘초토화’를 살펴봅니다. ‘초토’란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이라고 합니다. 불에 탄 땅이라, 그러면 우리 말로는 ‘잿더미’일 테군요. 무엇이든 불에 타면 재가 되고, 집이나 숲이나 마을이 타 버리면 재가 더미로 쌓여서 잿더미가 됩니다.

 

 불에 타지 않았으나 잿더미처럼 되게 한다면, 망가뜨리거나 망치거나 무너뜨리는 셈입니다. 마을을 무너뜨리고 시골을 망가뜨리고 삶터를 흔들어 버린다고 할까요.

 

 ┌(1) 잿더미로 만들다 / 쑥대밭으로 만들다

 └(2) 무너뜨리다 / 망가뜨리다 / 망치다

 

 가만히 보면,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말살림을 잿더미로 바꾸어 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하나도 깨닫지 못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6.22 11:22ⓒ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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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우리말 #우리 말 #화化 #외마디 한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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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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