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 아미르. 그는 하자라인 하인인 하산과 친구처럼 지낸다. 그곳은 '계급'같은 곳이 존재하던 곳이었다. 출신이 곧 그러했지만 아미르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았다. 아버지부터가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기에 그랬던 것일까? 아미르는 하산을 향해 '친구'라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친구처럼 생각하고 친구처럼 의지한다.
하산, 그는 아미르가 친구라고 부르지 않아도 행복했다. 그는 아미르를 위해 무엇이든 해줄 수 있었다. 아미르가 읽어주는 책의 내용을 듣는 것이 행복했고 아미르가 위험에 처하면 죽을 각오를 하고 구해주는 것 또한 행복했다. 연싸움 대회에서도 그랬다. 아미르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연싸움 대회에서 우승해야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연을 잘라야 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으로 잘린 연을 얻어야만 했다. 평소에 날아가는 연을 귀신처럼 찾아내는 하산이기에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대회가 진행된 그 날, 아미르는 놀라운 솜씨로 승자가 된다. 아버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잘린 연만 가져오면 완벽했다. 하산은 그것을 위해 열심히 달려간다. 그런데 불량배들에게 붙잡혀서 성폭행당할 위기에 처한다. 크나큰 위기였다. 하산을 찾던 아미르는 그 순간을 목격한다. 자신을 곤경에서 돕다가 생긴 일이었다. 아미르는 하산을 도와야했다. 자신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했던 하산을 위해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아미르는 도망친다. 하산이 무슨 일을 당할지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그 자리를 도망간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으로 사람들에게 묵직한 감동을 줬던 할레드 호세이니의 또 다른 소설 <연을 쫓는 아이>, 이 소설 또한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연을 쫓는 아이>는 남자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하인을 친구처럼 생각했던 아이, 그러나 중요한 순간에 그 아이를 외면한 뒤에 죄책감에 못 이겨 도둑 누명을 씌워 집에서 나가게 했던 아이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삶이 틀어지는 것은 어쩌면 이리도 간단한 것일까. 아미르가 용기를 내서 하산을 도왔다면 어떠했을까? 아니, 처음부터 연을 쫓지 않게 했다면 어떠했을까? 아미르는 떠나버린 하산만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오래 슬퍼할 수만은 없었다. 소련군이 침입한 것을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은 기나긴 수렁 속으로 빠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도망간 아미르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하고 작가로 데뷔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아름다운 아내 또한 맞이한다. 평생 의지했던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얻기도 했지만 아미르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자리를 잡았다. 더할 나위 없는 삶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미르는 전화를 받는다. 옛날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스승의 전화였다. 스승은 하산의 소식을 이야기한다. 하산이 쫓겨난 뒤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아미르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이야기하고 비참하게 죽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아미르는 슬프다. 가슴이 아파 도망치고 싶을 뿐이다. 그때, 스승이 이야기한다. 하산의 아들이 고아원에 있다고, 그를 데려오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이 지배하는 때였다.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아미르는 도망치려고 한다. 못 들은 척 하려 한다. 그러다가 깨닫는다. 하산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연을 쫓는 아이>는 과거의 빚을 갚기 위해서, 아니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것을 위해 사지로 들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완벽한 용기, 그것을 발휘하는 남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아미르는 하산의 아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 탈레반이 지배하던 그곳에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소설은 그때부터 숨 막히는 장면을 연출해낸다. 감동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한 남자가 용기 내는 순간을 보는 것도 감동적이지만 '아미르'와 함께 하는 아프가니스탄의 굴곡진 역사를 볼 수 있는 것도 <연을 쫓는 아이>의 즐거움이다. <천 개의 찬란한 슬픔> 못지않게 세밀하면서도 격정적으로 그것을 묘사하고 있으니 더 설명해 무엇하랴. 이 소설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그만의 소설의 즐거움이 가득 묻어나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실수를 갚기 위해 용기를 낸 어느 남자의 이야기가 담긴 <연을 쫓는 아이>, 아름다우면서도 격정적인 감동이 만들어내는 여운이 일품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만큼이나 소설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톡톡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2008.06.24 08:38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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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현대문학,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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