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정당화 구실 악용 안돼"

감사원, 성매매 자활사업 특별감사 벌여...업주들 "자활단체 문 닫는다" 악소문내

등록 2008.06.24 14:38수정 2008.06.2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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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희 기자] 감사원이 지난 5월 21일부터 한 달째 '성매매집결지 자활지원 사업'에 대한 특별감사를 벌이고 있다. 감사원은 정해진 조사기간 60일에서 30일을 더 연장해 오는 8월 21일 즈음에 최종결정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2004년 9월부터 시행된 성매매방지법은 성구매자는 처벌하고 성매매여성은 다른 직업을 갖도록 자활을 지원해 성매매를 근본적으로 근절시키는 것을 핵심 골자로 한다. 정권교체 후 실시된 이번 특감이 향후 성매매방지법 추진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성매매집결지 자활지원 사업 특감에 대한 주요 쟁점과 전망, 자활사업의 추진 현황과 과제, 자활사업 성공모델 등을 점검해본다. - 기자 주

감사원이 지난 5월 21일 '성매매집결지 자활지원 사업'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했을 때 여성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 예산으로 집행하는 사업이니까 감사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동안 성매매방지법과 자활사업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공격해온 성매매업주들의 주장에 정부가 손을 들어준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정미례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공동대표는 "감사원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우려를 표했다. 정 대표는 "불법 성매매업주들이 성매매방지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국민감사청구 제도를 악용한 것도 모자라 감사원이 이러한 배경에 대해 심사숙고 없이 청구를 받아들였다"며 "자칫 불법 성매매업주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될까 걱정된다"고 전했다.

성매매집결지에서 자활 상담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도 "불법 성매매 업주들을 수사해달라는 요청에는 묵묵부답이면서 업주들 청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며 허탈해 했다.

경기지역의 한 성매매피해상담소 활동가는 "안 그래도 업주들이 성매매여성들에게 '자활단체에 들어가면 신상정보에 성매매 여성이라는 낙인이 평생 남는다', '자활사업은 여성단체 배만 불리는 사업에 불과하다'며 못 가게 하는데 정부가 그들 요구를 들어주면 누가 단체를 믿고 상담을 받으러 올 수 있겠느냐"며 "내년 4월까지 사업기간이 남아있지만 앞으로 일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토로했다.

부산 완월동 지역의 경우 특감 발표가 나자마자 업주들이 "자활단체가 곧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소문을 내 상담 발길이 끊기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지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에 서울 전농동 성매매피해자 위기지원센터 '성매매 없는 세상 이룸'은 지난 17일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위원장 김필규)에 감사 철회를 요구하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이유진 상담원은 "전국 단체들과 여성 국회의원들까지 힘을 합해 특감 결정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보도자료도 몇 차례 냈지만 생각보다 큰 영향을 발휘하진 못했다"며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특감을 거부하려는 것 아니냐는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부당함을 알릴 방법이 많지 않아 고심 끝에 결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기대감은 높지 않다. 같은 날 특감 결정이 내려졌던 KBS도 행정심판을 청구했으나 지난 10일 기각된 바 있다.

감사원은 "민간 자활사업 단체들이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성매매업주와 현관이모(호객꾼) 등 성매매여성이 아닌 자에게 생계비를 지원하는 등 자활사업에 대한 감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 4월 3일 성매매업주와 성매매여성 등 613명이 감사원에 제출한 감사청구서 내용에 따른 것이다.

특히 감사원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가 열리기 전날인 5월 20일 KBS <9시뉴스>가 '성매매여성 자활기금 줄줄 샌다'는 제목의 뉴스를 보도한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KBS는 부산 완월동 지역의 상인과 업주를 인터뷰해 "자활단체가 2004년 11월 시범사업을 실시하면서 성매매여성이 아닌 사람에게 1년간 매달 40만원씩 생계비를 지원하는 등 자활지원금이 엉뚱한 곳으로 새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자활단체들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KBS가 거론한 단체인 부산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정경숙 소장은 "돈을 받았다고 인터뷰한 상인과 방송에서 보여준 통장 주인은 서로 다른 사람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아무리 자활사업 초창기 때라지만 성매매업주에게 돈을 줬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살림'은 지난 3~5일, 9~10일 두 차례에 걸쳐 감사원 현장조사를 받았다. 자활지원금을 불법으로 운용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 소장은 "부산 완월동 집결지는 자활사업이 시작된 후 성매매여성 300명 가운데 260여명이 자활지원을 받았을 정도로 가장 타격을 많이 입은 곳"이라며 "KBS와 인터뷰한 업주가 늘 '정권 바뀌면 보자'라고 말했었는데 이번에 KBS측에 거짓 제보·방송해 감사원에 압력을 넣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단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3번 이상의 상담 절차를 거쳐 어느 업소에서 언제부터 일했는지 등을 확인한 후에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다. 상담일지 작성은 필수다.

현장 활동가들은 작정하고 돈을 받으려고 성매매여성인 척 속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상담 과정에서 걸러지고 있으며, 월 40만~50만 원에 불과한 생계비를 받으려고 '성매매여성'이라는 낙인을 스스로 찍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만약 거짓말로 지원을 받았다면 불법행위로 처벌될 일"이라며 "단체가 업주인 줄 알면서도 지원했다는 식의 주장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7 성매매집결지 자활지원 사업현황
2007 성매매집결지 자활지원 사업현황여성신문

감사원이 성매매집결지 자활지원 사업에 대해 특감을 결정한 또 다른 이유는 “지난 3년간 지원된 예산에 비해 자활 실적이 너무 미미하다”는 것이다.

여성부에 따르면, 2004년 11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3년간 성매매피해여성 자활지원 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총 160억3000만원이다. 취업·창업에 성공한 여성은 1253명이며, 대학에 진학한 여성은 83명, 자격증은 총 1480개를 취득했다. 같은 기간 집결지 성매매여성 자활지원 사업에 지원된 예산은 전체 예산의 41%에 해당하는 65억7100만원이다.

2007년 한 해 동안의 집결지 자활사업 현황을 살펴보면, 전국 11개 단체를 통해 총 22억4400만원의 예산이 지원됐다. 109명이 취업에 성공했으며, 이를 위해 600건의 직업훈련이 지원됐다. 자격증은 129명이 150개를 취득했다. <표참조>

그러나 국민감사를 청구한 성매매업주와 성매매여성들은 “여성부 통계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취업에 성공했다고 집계된 여성들의 상당수가 얼마 못 견디고 집결지로 다시 돌아오고 있으며 그 비율이 10명 중 9명에 달한다는 것. 한 마디로 ‘깨진 독에 물 붓기’라는 얘기다.

감사원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달 초 감사원으로부터 두 차례 현장조사를 받은 부산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정경숙 소장은 “처음에는 언론보도처럼 정부 예산의 불법전용 의혹에 대해 집중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오히려 감사의 핵심은 정부 지원을 받은 여성들이 계속 취업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 등 경제적 자활 성과에 있었다”고 말했다.

정 소장에 따르면 감사원은 ‘탈성매매 여성들이 취업한 직업의 종류가 무엇이냐’ ‘얼마나 오랜 기간 일하고 있느냐’ ‘창업을 한 경우 폐업 비중은 얼마나 되느냐’ 등 눈에 보이는 실적 위주의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탈성매매 여성 당사자와 자활단체 활동가들은 “성매매여성의 특성을 고려한 자활 감사기준이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지역의 한 성매매피해상담소 활동가는 “감사원이 자활 현장의 사정을 너무 모르고 있다”며 “자기 성격을 바꾸는 일도 쉽지 않은데 10대 때부터 7~8년간 성매매를 해온 여성의 삶 전체를 바꾸는 일이 1~2년 사이에 되겠느냐”고 말했다.

16세 때부터 성매매를 시작해 2004년 25세 때 업소를 나와 현재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김준영(가명·29)씨는 “월급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에 10명 중 9명이 업소로 돌아가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만약 정부가 자활사업을 중단하거나 축소한다면 나머지 1명은 영영 자활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며 자활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씨는 “성매매를 할 때는 시간을 때워 돈을 버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는데, 심리치료와 글쓰기 훈련 등을 받으면서 점차 마음의 문이 열리고 나 자신과 사람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며 “정서적·사회적 자활의 과정이 없으면 경제적 자활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성매매피해자 위기지원센터 ‘성매매 없는 세상 이룸’ 이유진 상담원도 “감사원에서는 실적을 중시하겠지만 현장에서는 탈 업소만으로도 자활에 성공했다고 본다. 정부에서 돈을 줬으니 무조건 취업에 성공해야 한다는 시각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자활 성공의 기준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 소장은 “정부 예산으로 집행되는 사업이므로 객관적인 실적 평가는 필요하다”면서도 “감사원이 최종결정을 내리기 전에 성매매 자활사업에 대한 전문가를 평가과정에 참여시켜 현실과 괴리되지 않는 정책적 판단을 내리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최정은 ‘여성성공센터 W-ing’ 대표
최정은 ‘여성성공센터 W-ing’ 대표여성신문 정대웅 기자
“과거에는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활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자격증 10개를 따도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다시 업소로 돌아가는 게 현실이에요. 결국 내면의 힘을 키워야 성매매 늪에서 벗어나 주도적인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최정은 ‘여성성공센터 W-ing(윙)’ 대표는 올해 3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골목길에 커피전문점 ‘신길동 그 가게’를 열었다. 겉보기에는 여느 카페와 다르지 않지만 최 대표는 “탈 성매매 여성들의 소중한 꿈이 자라는 따뜻한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평소에는 커피를 마시는 곳이지만, 탈 성매매 여성들이 글쓰기 훈련을 하거나 철학·인문학 강의를 듣는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매매 여성 자활지원센터 ‘윙’이 자랑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치유적 글쓰기’다.

마 음속에 꾹꾹 담아뒀던 고민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지금껏 외면해왔던 세상에 대해 글로 쓰는 것.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힘과 세상에 대한 자신감을 갖도록 돕는다.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고자 여성학과 철학, 인문학, 역사학 등 다양한 강좌로 구성된 ‘인문학 아카데미’도 병행하고 있다.

카페는 안정된 일자리 공간이기도 하다. 현재 매니저 1명과 파트타임 3명이 시간대를 나눠 일하고 있는데 모두 탈 성매매 여성들이다. 카페 알바를 거쳐 취업에 성공한 여성들도 수명이다. 취업 전 사회적응을 돕는 ‘인큐베이팅’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지원금이 평생 보장은 아니잖아요. 지원절차도 까다로워 친구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돼도 곧바로 적절한 지원을 해주기 어렵고요. 우리만의 가치를 담은 지속가능한 자활기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최 대표는 카페 외에도 영상활동가를 양성하는 ‘여성영상미디어센터’와 올 8월 DIY 가구점인 ‘인형과 나무’ 개업을 앞두고 있는 ‘친환경 작업장’도 운영하고 있다. 최 대표는 장기적 준비기를 거쳐 이들 3개 사업을 묶어 사회적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최 대표는 “종국에는 자활사업도 스스로 수익구조를 창출하는 것이 맞고, 실제로 그렇게 해가고 있다”면서도 “자활사업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활동가 인건비 등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이어 “이번 감사원 특감은 성매매집결지 자활사업뿐 아니라 전체 성매매 자활사업의 문제”라며 “이제 3년밖에 안 된 사업에 대해 성과를 논하기 이전에 성매매 여성들에게 정말 필요한 자활사업은 무엇이고 정부의 지원방법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성매매 #자활 #감사원 #성매매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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