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미국이 내전 중인 수단 다르푸르(Darfur) 지역에 식량을 지원하는 모습. 그러나 미국의 해외 식량 지원은 언제나 인류애와는 무관한, 지극히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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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면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우리한테 가르쳐 주시오. 그러면 기꺼이 나서겠소." (세계 기아 대책 회의에서 버즈 아이 식품회사 간부가 인도 정부 관계자에게 한 말) 안녕하십니까? 우선 질문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음식은 근본적인 인권의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한 것을 물어본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미국 정부나 기업들은 항상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기에 꺼낸 질문입니다.
이달 초에 로마에서 열린 세계 식량 정상회담에서 미국 대표는 참가한 182개국 중 유일하게 식량은 기본 인권이라는 선언문에 반대했습니다. 미국은 1996년에도 이와 비슷하게 식량을 인권과 연결시킨 선언문에 반대한 전력이 있습니다. 동의할 경우 당시 미국에서 진행 중이었던 사회복지체제의 개악이 국제법 위반으로 판결이 날 것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미국 정부는 자국의 국민들이 단순히 인간이란 이유와 배가 고프다는 이유만으로 식량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미국 농무장관은 얼마 전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는 것이 여러 가지 불필요한 무역 장애물을 두는 것보다 식량 조달에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이는 인권이 아닌 시장과 이윤 창출을 최우선시 하는 미국 정부의 태도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외 식량 정책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만 인류애나 박애 정신은 그다지 중요한 요인이 아닙니다. 미국 역사상 식량은 자국민을 포함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위한 주요 품목이 아니라 미국 정부와 기업의 이익을 도모하는 수단이었을 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해외 식량 원조만 보더라도 미국의 이익과 결부되지 않은 순수한 원조는 거의 없습니다. (미국 내의 계층간·인종간 격차와 이해관계의 대립을 보면 사실 "미국의 이익"이란 표현은 어폐가 있습니다만, 국제 관계 속에서 미국이라는 존재를 어느 정도 통합된 실체로 가정하고 그 실체와 관련된 이익을 "미국의 이익"이라 칭하겠습니다. 제국으로서 미국은 군산복합체와 정치권력과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엘리트 집단을 정점으로 한 복잡한 위계 체제란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부에서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원조가 더 이상 자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그에 대한 원조는 슬그머니 사라지게 됩니다.
제가 이 편지를 쓸 마음을 먹은 것은 한국 수구 언론들과 수구 인사들이 요즘 쇠고기 사태와 관련하여 끊임없이 "미국을 믿자"고 부추기고 있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전 대전시장이란 분은 "미국 사람들이 못된 것을 팔지는 않는다"고 주장했고 이명박 대통령도 특별 담화에서 미국 기업들의 자율 규제를 믿어보자고 호소했습니다. 한국 수구의 미국 맹신은 미국 사람인 저도 어리둥절하게 할 정도입니다. 미국 정부, 의회, 기업이 과연 믿을 만한 존재인지 한 번 같이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