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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깨를 심어 보겠다고 온종일 풀밭을 헤집고 다니다가 집에 돌아와 시원하게 물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공주 농민회 회장 박일훈씨로 부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오늘 유구에서 촛불 문화제를 하는디…."
"공주시내가 아니구 유구유? 어이구 사람덜두 별루 읎을 틴디유…."
"오마이뉴스 기자람서…."
하루 종일 풀밭에서 시달려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고 전화 해준 박 회장이 고마웠다. 우리집에서 유구읍 까지는 자동차로 40분 거리.
시동을 걸고 마을을 빠져 나오는데 자동차 기름 눈금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기름값 더럽게 비싸서 야채 배달도 못가고 있는디, 이 눔의 쥐새끼덜을 그냥 꽉, 가뜩이나 농사일에 힘든 사람들까지 촛불 들게 만들구 지랄여…."
비 맞은 중처럼 투덜거리며 지갑을 툴툴 털어 3만원어치 기름을 채워 넣고 유구읍으로 향했다. 유구는 쌀, 보리, 고랭지 야채, 수박, 마늘, 고추 등을 주로 재배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간 농촌으로 천년고찰 마곡사 가는 길목에 자리한 작은 읍이다.
7월 3일 저녁 7시, 오일장이 열리는 유구읍 장터 주차장. 촛불문화제는 오후 5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너무 일찍 시작한 탓에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 나갔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30여명 정도.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촛불문화제에 모인 사람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에서부터 아저씨 아줌마 농활 대학생에 어린아이들까지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다 모여 있었다.
박일훈 농민회장 말대로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가 시작된 이래 읍 단위에서 열리는 촛불문화제는 이곳 유구읍이 전국 최초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작은 읍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 줄 취재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도착했을 무렵에는 안개처럼 뿌연 소독연기를 뿜으며 방제차가 지나가고 있었고 40대 후반의 농민이 앞에 나와 한창 자유발언을 하고 있었다.
"…농사짓다가 어려워 땅을 팔았슈. 농사짓는 놈이 땅을 파는 것은 지 불알 쪼개는 거나 다름없슈. 땅 팔아 농사져두 생활이 어려워 애기 엄마가 공장에 나가 일하고 있슈. 그동안 마누라에게 생일 선물도 못해주고 결혼기념일도 못 챙겨주고 늘 미안한 마음가지고 살지만 아직도 마누라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못했슈. 이 자리에서 미안하다고 말할까 해유. 마누라 미안하다! 이 자리를 빌어 처음 해 보는 거유….
내겐 연년생 자식이 있슈. 한 놈은 고2 큰 놈은 고3이유. 공부도 안하던 큰 놈은 고3이 되더니 대학 가려고 공부하더라구유. 저번에 술 먹고 새벽 두 시에 집에 들어 갔는디 큰 놈 방에 불이 켜져 있더라구요. 이 눔 자식이 불을 켜고 자는 구나, 그럼 그렇지 지 애비 닮아서 공부는 무슨, 불을 꺼 주려고 슬그머니 문을 열었더니, 큰 놈이 또릿또릿한 눈으로 쳐다보며 아버지 오셨슈, 하더라구유.
자식새끼 공부하는 것도 걱정유. 대학 등록금 마련하려면 농사지어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유. 앞에서 어르신이 그러셨쥬, 50년 농사 열심히 했더니 빚만 남더라고, 저는 이제 18년 농사인디 걱정입니다.
얼마 전 까지 돈 만원이었던 비료값이 2만원 가까이 올랐슈. 또 오른답니다. 앞으로 전쟁은 폭탄 터지는 게 아니라 석유, 곡물 전쟁유. 이명박이를 대통령 만들어 줬더니 광우병 쇠고기나 들여와 한우농가 다 망하게 하고, 일자리 만들어 준다고 찍었더니 실업자나 더 만들어 내고…."
두 번째 자유발언자가 나섰다.
"…공주에서 열리는 촛불문화제에 매일 가고 싶지만 유구가 공주하고 제일 멀리 떨어져 있어유, 기름값도 비싼디 촌사람이 뭔 돈이 있어서 매일 갈수 있겠슈, 이승만이가 한 얘기 중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젤 맘에 드는디, 농촌 현실도 마찬가지유, 이런 식으로 가면 농촌 다 망해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 농민들도 이제 뭉쳐야 해유…."
자유발언 중간 중간에 모두가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광우병에 안전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하라!"
"유전자 변형 지엠오 중단해라!"
"비료값 사료값, 면세유 특별대책 마련하라!"
유구읍에 모인 사람들 역시 이명박 정부에게 광우병 쇠고기 수입고시 철회와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농기계에 큰 부담을 주는 고가의 면세유와 가축 사육하기 힘든 고가의 사료 값, 두 배 가까이 올랐다는 비료값 인상으로 앞길이 막막하다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들 살길 막막함을 호소했지만 힘든 농사일에도 신명나는 춤과 노래를 껴안고 살아 온 농민들의 삶이 그러했듯이 촛불문화제를 팍팍한 삶을 이겨내는 축제 분위기로 살려나갔다. 한 옆에서는 김치와 두부를 안주 삼아 막걸리 잔을 돌렸고 자유 발언 중간 중간에는 신나는 유행가를 불러가며 춤을 추기도 했다.
"한 시간 더 놀을 껴? 파장 할겨? 어뗘? 더 놀 사람 덜 손들어 봐봐!"
참석자의 반수 이상이 손을 들었다.
"그람 다시 손들어봐, 파장 할 사람 손들어 봐봐!"
이번에는 손을 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려, 그람 시방부터 한 시간 더 놀다 가는 겨, 인저 신나게 놀아 보자구, 막걸리 줌 가져와 봐봐! 바가지루다, 노래방 기계두 있으니께, 더 놀다 갑시다. 신청곡? 아파트!"
유구 촛불문화제는 15명의 공주교육대학 농활대 학생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이날로 일주일째 농촌 일손을 돕고 있다고 한다. 구은지(공주교대 2년)학생은 올해 처음 농활대로 참여 했는데 농촌 현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시골 생활해 본 것은 이번이 첨인데요, 깜짝 놀랐어요. 충격적이었어요. 농민들은 농사만 짓는 줄 알았는데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구 계시더라구요. 밭에서 할머니하고 밭 매고 있는데 할머니가 중간에 나가시더라구요. 아파트 청소하러 간데요.
어떤 아줌마는 농사 지으면서 대전에 장사하러 가고 농사일을 하는 것만 해도 피곤한데, 농사일로는 생활하기 힘들데요. 그리고 농산물 가격이 정말 헐값이더라구요. 상추 한 박스에 천 백 원인가 하더라구요, 아이스크림이나 과자값에 비하면 정말 말이 안나올 지경이더라구요."
공주 농민회에서는 촛불문화제를 읍면 단위로 점차 늘려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촛불을 통해 소통 하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구호 외치고 돌멩이 던지고 했는데, 이제는 촛불을 들어 알릴 것입니다. 농민들 간에 서로 힘을 합쳐 어려운 처지를 읍면사무소에 알리고 그것을 다시 정부에 알리고 소통의 방편으로 촛불을 들것입니다. 우리의 어려운 처지를 들어줄 때까지 촛불을 들 것입니다." - 박일훈 농민회 회장
7월 3일 오후 5시부터 유구오일장을 돌며 시작한 '유구읍 촛불문화제'는 밤 9시 30분쯤에 끝났다. 이날 '유구읍 촛불문화제'는 공주농민회장 말 대로 전국 최초의 읍 단위 촛불 문화제인지도 모른다.
사실 전국 최초라는 의미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작은 읍에서도 평화의 촛불이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온 국민이 촛불을 들고 있는데도 싹 무시하는 있잖여, 이런 작은 읍에서도 촛불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겨. 전국방방곳곳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혀, 우리는 이제 시작여!" - 박일훈 농민회 회장
2008.07.04 11:29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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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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