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은 각오하라" 중고생이 대통령에 뿔난 이유

[딸이 아빠에게 묻다] '24년 교사' 아빠가 말하는 '학교자율화'

등록 2008.07.08 12:16수정 2008.07.0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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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각오해라. 우리 곧 방학이다!"

촛불집회에 등장한 참신한 피켓문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7월 방학을 맞아 중고생들이 촛불집회 대거 참여를 경고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알리며 가장 먼저 촛불을 들었던 것도 이들이다.

중고생들이 쇠고기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한 손에는 '학교자율화' 반대 피켓이 들려있다. 나와 친구들도 중고생시절 엄청난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렸지만, 우리는 거리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월드컵 때 빼고는. 그런데 지금 중고생들은 거리로 나온다. 이들이 우리보다 의사표현에 익숙하거나, 아니면 이들이 우리보다 심각한 성적경쟁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둘 다 이거나.

교육과학기술부는 4월 15일 초중고교에서 우열반 편성을 전면 허용하고, 0교시 수업과 심야보충수업을 부활하는 내용 등을 담은 '학교 자율화 3단계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0교시, 양성화하면...

 나와 인터뷰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 사진은 옆에서 듣고 있던 동생이 찍어주었다.
나와 인터뷰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 사진은 옆에서 듣고 있던 동생이 찍어주었다.김한들


아빠는 올해로 교직에 계신지 24년째다. 왜 아빠 제자들이 학교자율화 반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물었다. 아빠와의 인터뷰는 6일 밤 진행했다.


"우리 때는 안 나왔지. 의견도 잘 표현 안하고. 그런데 지금 학생들은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의견을 확실히 표현하잖아. 현재 아이들이 아침 자율학습하고, 심야자율학습 하는 상황이잖아. 학원도 가야하고. 지금으로서도 충분히 힘든 상황이지.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0교시가 본격적으로 부활되면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지. 그리고 그 힘든 것이 결국 자기한테 피해로 돌아오지.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집중할 수는 없잖아."

-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많이 졸아요?
"그럼. 수업시간 집중도도 떨어지고, 피곤하니깐 잠자는 학생들이 늘어나지."


- 저 학교 다닐 때도 0교시 수업 있었어요. 0교시 수업 때 다들 꾸벅꾸벅 졸았어요. 0교시 수업 끝나고 1교시 시작하기 전 30분 동안은 거의 다 책상에 엎어져서 잠만 잤으니까요. 전 그 당시 0교시 금지하고 있었는지도 몰랐었어요.
"교육청이 금지시켜도 실시하는 데가 많았지. 양성화되면 상황이 어떻겠니. 0교시 안 하던 학교도 옆 학교가 하면 덩달아 할 수밖에 없지. 그러면 전국 인문계가 다 할 수밖에."

- 0교시 수업을 왜 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어차피 자는 거 다 알잖아요.
"학부모의 요구, 학교 관리자의 욕심 등등 때문이 아닐까? 옆에 학교는 아침부터 학생들 가르치는데 왜 우리학교는 안 하냐. A학교가 0교시 수업 하면 B학교가 하고, B학교가  C학교가 하고. 전체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급 문집에 실린 사진. 0교시 수업이 끝난 교실 풍경이다. 학생들 모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급 문집에 실린 사진. 0교시 수업이 끝난 교실 풍경이다. 학생들 모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김한내


- 그 시간에 학교 가면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고 그럴까요?
"아이들이 학교에 늦게까지 있으면 늦게까지 공부한다 생각하고, 일찍 가면 아침부터 공부한다 생각하는 거지. 그러나 사람은 한계가 있잖아. 예를 들어 수업시간이 초등학교는 40분, 중학교는 45분, 고등학교는 50분이잖아. 그건 집중력의 한계 때문에 그런거거든. 하루 교육과정이 6-7시간으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이들 소화능력이 그 정도라고 판단하는 거지. 그 이상으로 늘리면 아이들이 소화를 못하고, 학습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야."

- 한 마디로 학생들이 더 힘들어 진다는 거네요. 아무런 효과 없이.
"그렇지. 더 피곤한 삶을 강요당하는 것 밖에 아니지. 그리고 만약에 학교에서 0교시 수업이나 심야자율학습하면 본인의 선택권은 없잖아. 나한테 효과 없어도 학교 다니는 이상 따라할 수밖에 없는 거지. 2002년 설문조사를 했는데 아이들 상당수가 0교시 수업 별 효과 없다고 했어.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지."

- 학교자율화 조치 보면, 이제 초중고교에서 우열반 편성 전면 허용한다고 하더라고요. 서울시 같은 경우 총점에 의한 우열반은 금지 하지만 과목 수준별 수업은 확대한다고 하고. 저 학교 다닐 때도 심화반이라고 성적 좋은 학생들 몇 십 명 뽑아서 따로 수업하고, 도서관 자리 마련해주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차별 대우하냐고 기분 나빠 했었어요.
"예전 일이기는 하지만 수원 모 고등학교에서 한 아이가 자살을 했어. 왜냐하면 1등부터 30등까진가 도서관 자리배정해주고 항상 공부할 수 있게 해줬었는데,  공부 잘하던 아이가 그때만 성적이 잘 안 나와 도서관에 못 들어가게 된 거야. 그래서 들어가게 해달라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고, 자살까지 하게 됐지. 그리고 성적에 따라서 더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면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상황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지."

우열반 만들어 다르게 가르쳐도 평가 기준은 같아

- 심화반은 방과 후에 몇몇 아이들이게 특혜 주는 거잖아요. 정규수업시간을 우열반으로 나눌 경우 다른 문제점도 있을 것 같은데.
"가르칠 아이들의 수준이 다르다면 거기에 맞는 교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아직 준비가 미흡한 상황이야. 우열반으로 나눠서 가르치면 상은 상에, 중은 중에, 하는 하 수준에 맞게 가르치는 거잖아. 그러면 가르치는 내용도 다르지. 그런데 평가는 똑같은 문제로 하는 거야. 배운 수준이 다른데 결국엔 같은 문제로 평가가 이루어지는 건 잘못이지."

 인터뷰하고 있는 아빠와 나의 모습. 사진은 옆에서 듣고 있던 동생이 찍어주었다.
인터뷰하고 있는 아빠와 나의 모습. 사진은 옆에서 듣고 있던 동생이 찍어주었다.김한들


- 만약 그 문제가 해결된다면요?
"그것 말고도 또 많은 문제가 있지. 사실은 아이들 수준에 맞게 가르치는 게 맞지. 그러기 위해서는 수준별 수업에 대한 조건이나 지원이 먼저 마련되어야하지. 지금은 단순히 상중하 성적으로 잘라 만드는 거거든. 반 별로 인원수도 똑같고. 다른 조건 다 똑같은데 성적만으로 갈라 수업한다고 얼마나 큰 효과가 날까."

- 방과 후 학교를 영리단체에 위탁하면 싼 가격에 좋은 질의 교육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첫 번째 문제점은 학교라는 것은 상급학교 진학하는 기능도 있지만 인간교육이라든지 전인교육을 목표로 하는 거잖아. 그런데 모든 학교의 초점을 대학진학에 맞추는게 과연 올바른 교육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학교의 생활지도적 측면을 도외시하는 거고, 모든 것을 진학에 초점 맞출 수밖에. 그렇잖아도 치열한 경쟁의 장인데 학교마저 거기에 편승하게 되는 거지."

외고 하나 늘어나면 학원 10개 늘어난다?

- 현장에서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에 대한 문제제기도 많은 걸로 아는데요.
"심각한 문제지. 교육정책 가운데 성공했다고 평가 받는 것이 고교평준화거든. 물론 반론도 많지만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정책이지. 그런데 결국 평준화를 깨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거지. 예를 들면 특목고, 자사고 떨어진 학생들이 인문계 가고 그러면 결과적으로 서열화가 되는 거지. 지금도 특목고가 상당히 많이 늘어났잖아. 특목고 정원이 1만3000명 정도인데 어떤 사람은 이미 평준화가 깨졌다고 말해. 거기다 2012년 까지 자사고 100개가 늘어난다면 평준화는 사라지는 거지."

- 경쟁이 더 치열해지겠네요?
"그러면 중학교부터 다시 입시체제로 가는 거지. 중학교가 고등학교 입학 위한 치열한 경쟁의 장이 되는 거야. 또 사교육을 더 많이 조장할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외고 하나 늘어나면 학원 10개가 생긴다는 말이 있어. 자사고 100개 늘어나면 학원이 얼마나 늘까. 학생들은 입시지옥에 시달릴 수밖에. 그것을 알 수 있는 게 지금의 특목고 열풍이지. 초등학교 때부터 특목고 준비하잖아. 재력 있는 부모 아이만 사교육을 받을 수 있지. 그러다보면 지금도 그렇지만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어. 2006년 한국교육개발원 조사결과 최상위 계층(의사,변호사, CEO등)자녀가 특목고 들어갈 확률이 최하층보다 8배가 높게 나오기도 했잖아."

-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이게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 같아요.
"그렇지. 전에는 교육이 신분상승의 통로였지만 이제는 가난까지 세습되는거야. 지금 교육정책은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심화시키고, 사교육을 줄인다 하지만 오히려 늘리고 있어. 그 대표적인 게 영어몰입교육이고. 결국은 있는 자만을 위한 교육정책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

- 휴. 얘기하다보니 학생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벌써 두 시간이 지났네. 아빠,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해주세요.
"교육정책을 마련할 때는 다양한 의견수렴과 깊이 있는 검토가 이루어져야해.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하는데 정권 바뀔 때마다 수시로 바뀌잖아. 좋은 쪽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이번 경우에는 퇴행한 거지. 그리고 교육정책에 사실 교육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학생, 학부모, 교사 의견수렴 과정이 거의 없잖아. 학생들이 반발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이거야. 내 일인데 의견하나 못 내고 받아들여야하는 게 얼마나 화나는 일이겠어."
#학교자율화 #0교시 #우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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