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남들처럼 2년 만에 보따리 싸는 거 아냐?

늦서리 맞아도 다시 살아나는 포도에서 인생을 배우다

등록 2008.07.15 16:12수정 2008.07.1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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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같은 드라마가 또 있을까? 인생도 새옹지마라지만 나에게 올해 포도농사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와 같았다. 작년에 밭농사 1000평에 도전했다 온 몸으로 톡톡히 신고식을 치룬 나는 올해 7년 된 동네 포도밭 1200평을 임대받아 다른 농사 대폭 줄이고 포도농사만 전념해 경제자립과 과수농사 학습이라는 일거양득의 야심찬 목표를 잡았다.


첫 걸음부터 시행착오의 연속. 일의 순서를 무시하다 이중으로 고생했다. 일 경험도 없는 데다 일머리도 떨어지는 나에게 포도밭 일은 처음부터 가시밭길이었다. 애초부터 새로 사서 쳐야 할 비 가림 비닐과 포도나무 가지를 쳐내는 작업부터 뭐 하나 순서대로 하질 못했다. 늘 이중 삼중으로 사서 고생을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매일 같이 포도밭에서 일해야 하는 나와 아내는 크고 작은 일에 부딪히면서 옥신각신했다. 급기야는 서로 떨어져서 일하는 우스운 모습까지 보여주고 말았다.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고 재활용하려던 비 가림 비닐은 겨울바람에 거의 찢겨 날리고 결국 다시 철거하고 새로 설치하는 고생을 거듭했다. 정지작업한 가지들은 처음부터 가위로 잘라 차곡차곡 정리해야 하는데, 그냥 땅에 널어놓았다가 나중에 다시 수거하려니 흙속에 뒤섞여 몇 배의 땀을 더 흘려야 했다.

늦서리 소식에 온 동네가 '뒤숭숭'

늦서리 맞은 포도새순 예쁘게 피어야 할 포도순과 잎이 늦서리로 거무죽죽 오그라 들어 있다.
늦서리 맞은 포도새순예쁘게 피어야 할 포도순과 잎이 늦서리로 거무죽죽 오그라 들어 있다.이종락


이렇게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봄이 되자 가지에 새순은 하나 둘 돋아났다. 포도 새순을 보면서 눈이 즐겁던 4월 하순의 어느 날, 늦서리가 내렸다는 소식에 온 동네가 뒤숭숭해졌다. 포도밭에 얼른 가보라는 이웃의 다그침에 부리나케 달려 가보니 예쁘게 피어야 할 포도새순이 서리를 맞아 거무죽죽 오그라들어 있었다.


처음 지어 보는 포도농사에 난생 처음 당해 보는 서리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뭐가 뭔지 모르는 초보농부에게 서리는 특별하게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어~ 서리 좀 맞았네' 그런 정도였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다.

다음날, 서울의 지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지금 뉴스를 보니 일부 지역이 늦서리를 맞아 올해 과수 농사 망쳤다는데 어떤지 걱정되서 한 안부 전화였다. 서리 맞으면 그 피해가 3년 간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태의 심각성이 서서히 와 닿기 시작했다.


'아~ 올해 1년 농사가 이렇게 한방에 날아가는 구나.'

조금 있다 포도작목반 총무가 오더니 포도피해실태를 알려 달라면서 주소지를 적어 갔다. 갑자기 발이 땅에서 붕 뜬 느낌이 들었다.

'이게 뭐야? 아무리 농사가 하늘의 뜻이라지만 이렇게 하루아침에 1년의 할 일이 날아가도 되는 것인가?'

전혀 예상치 못한 현실 앞에 멍해질 뿐이었다. 일찍이 비 가림 비닐만 쳤어도 서리피해를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도 들었으나 이미 차는 떠난 후였다.

이러다 남들처럼 2년 만에 보따리 싸는 거 아냐?

며칠 후 다시 온 작목반 총무는 포도밭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포도상자 주문을 취소하라고 일러주었다. "10%도 살리기 힘들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암담했다. 도시의 월급쟁이로 따지면 1년 연봉을 삭감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순간 머릿속에는 내가 무엇을 위해 귀농을 했는가 하는 원초적인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여유 돈 갖고 전원주택 지어 소일하러 온 낭만파 귀농도 아니고, 다섯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생계형 귀농인데, 몸을 쓰는 노동을 통해 조화로운 삶을 살아보겠다고 도전한 귀농 2년차 농사는 시작도 못해보고 주저 앉는 걸까? 서리맞은 포도밭을 보고 경제적 불안감으로 뒤숭숭했다.

'아~ 이러다 나도 남들처럼 2년 만에 보따리 싸는 것 아닌가?'

아내 앞에서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내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긴 말이 필요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아내와 나는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귀농 2년차에 이렇게 큰 시련을 겪는 것도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보자고 다짐했다. 처음 당하는 서리 피해에 온 마을이 뒤숭숭했지만, 처방은 제각각이었다.

우리 마을에서 우리 포도밭이 두 번째로 피해가 크다고 했다. 포도농사 10년 지었다는 주민도 이런 늦서리 피해는 처음이라며 올해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한 숨을 쉬었다.

문제는 서리 피해 이후, 저마다 다른 처방을 내 놓는 포도박사(?)들 때문에 머리가 더 복잡했다. "영양제를 줘라", "소용없다", "빨리 서리 맞은 가지를 쳐내라", "조금 기다려 봐라" 등등. 그러나 결국 농사는 본인이 알아서 판단 할 일이었다.

아내는 어디 가서 이말 듣고 오면 불안해지고, 저 말 듣고 오면 또 급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아내 때문에 처방을 놓고 부부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서리 맞은 포도밭이라도 1년 농사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한 해야 할 일은 끝이 없었다. 평소 관리가 부실했던 포도나무라 가지치기, 포도순 정리까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에 하루 종일 포도밭에 서서 일하다 보면 어깨, 허리, 팔 등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다.

하루 종일 포도밭일로 고단한 몸을 끌고 집에 들어오면 세상은 온통 광우병과 촛불이었다. 서울의 한 선배가 전화 통화에서 "지금 촛불을 들어야 할 사람이 포도농사를 짓고 있네"라는 반농담조의 말을 하기도 했다. 물론 "노동의 수고와 땀 흐르는 곳 어디나 역사의 현장 아니겠냐?"고 응수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약도 치고 거름도 주면서 이렇게 5월과 6월은 포도밭에 파 묻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

"여보! 포도 알이 굵어지고 있어!"

다시 살아나는 포도 장맛비가 시작되고 서리 맞은 포도들이 다시 푸르게 살아나고 있다.
다시 살아나는 포도장맛비가 시작되고 서리 맞은 포도들이 다시 푸르게 살아나고 있다.이종락


예년보다 며칠 일찍 시작된 장맛비 때문에 포도밭으로 배수로 작업을 하러간 날,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 햇다. 분명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포도 알이 확연히 굵어지고 색깔도 짙은 녹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물론 서리를 된통 맞은 포도는 여전히 알도 좁쌀만 했지만 상당수의 포도 알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늘이 무심치 않았구나!'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속에도 나는 연신 포도 알을 훔쳐보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배수로 보수 작업을 했다. 그리곤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가 아내에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포도 알이 굵어지고 색깔도 파래지고 있어."

아내는 반신반의하면서 말하길….

"그거 원래 비오는 날엔 그렇게 보인데."

아내의 김새는 소리에 나는 무슨 헛소리냐며 비 그치면 빨리 가보자고 큰소리를 쳤다.

다음날 날이 개자 우리 부부는 포도밭으로 향했다. 전날 보다 더 푸르게 익어가는 포도 알 앞에 아내도 금세 표정이 밝게 펴졌다.

"진짜네! 웬일이야?"
"웬일은? 다 수고하고 땀 흘린 덕이지."

생각해보니 장맛비가 내리기 전에 두 차례나 밭에 뿌려준 웃거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동네 주민들도 포도밭을 보더니 포도가 좋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어떤 주민은 "알도 적당히 달리고 포도농사 잘 지었네" 한다. 참으로 인생처럼 포도농사도 새옹지마였다.

비워내야 채워지는 '알솎이',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 이제 남은 것은 포도농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알솎이와 농사를 일단락 하는 봉지 씌우기였다. 알솎이에 대해서도 마을주민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무조건 많이 솎아 주는 것이 좋다", "그래도 알이 없으면 무게가 안 나간다" 등등

한 바퀴 돌고 나면 처음 솎아준 포도들은 어느덧 알들이 굵게 자라나 있어 처음부터 적당히 솎아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조금 아깝다고 알솎이를 대충 하면 역시 조그만 포도 알이 빡빡하게 들어차 성장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과감하게 비워내야 더 크게 채워지는 우리네 삶과도 같았다.  

오늘도 포도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포도봉지 씌우는 아내 알솎이를 끝낸 후 아내가 봉지씌우기에 몰두하고 있다.
포도봉지 씌우는 아내알솎이를 끝낸 후 아내가 봉지씌우기에 몰두하고 있다.이종락


포도가 서리를 맞은 후 '우리도 과연 포도송이에 봉지 씌우는 날이 올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쉽싸였는데, 드디어 기사회생한 포도송이에 봉지를 씌우는 감격을 맛보았다. 절반의 수확을 예상하고 우리 부부 둘이서 작업을 시작했지만 예상보다 더디어 10일이나 걸려서 봉지작업을 마칠 수가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주변 정리와 8월말부터 9월 중까지 포도수확 하는 일만 남았다. 큰 기대를 갖고 시작한 포도농사는 때늦은 서리피해, 좌절감, 마음 비움과 다시 살아나는 포도로 인한 기쁨 등이 뒤얽혀 지난 8개월간의 시간이 지나갔다.  돌아보니 정신없이 바쁘고 몸도 고달팠지만 생명을 만지는 농사 앞에서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교훈을 체험한 소중한 기회였다.

이제 8월말과 9월초 사이에 포도 알이 찢어지는 '열과 현상'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넘어서야 한다. 내가 직접 지은 포도가 세상에 나올 때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지만, 사람의 할 일을 다 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야 하는 심정으로 오늘도 포도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귀농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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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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