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과일가게. 나뭇잎으로 만든 접시에 과일을 담았다. 이 접시들을 버리면 고스란히 퇴비가 된다.
최윤희
어느 날 해 뜰 무렵 차창 밖 모래사장에 여기저기 사람들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여 호기심에 자세히 보았다. 앗, 큰 볼일을 보는 중이구나! 집에 화장실을 따로 두지 않는 인도인들은 아침에 물을 한바가지 들고 이렇게 밖으로 나와 볼일을 보고 물로 뒤를 닦는다고 했다. 재밌고도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했느냐고? 우리도 똑같이 했다. 인도의 뒷물 문화를 배워 정토회관에서도 화장실에서 휴지 대신 뒷물을 한다. 대신 큰 볼일은 여관에서 보고 물로 씻고 뒷물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이동 중에는 화장실을 만나기 어려우니 인도인들처럼 길가 어디서건 볼일을 보았다. 몸을 조금이라도 가릴 곳이 있는 곳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닌 게 약간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작은 볼일을 보고 휴지 대신 준비한 뒷물수건으로 닦았다.
인도는 과일이 저렴하고 맛있단다. 과일을 살 때 비닐에 담아 주려 해서 준비해간 장바구니와 방수천주머니를 내밀었다. 비닐은 아주 얇은 것이 우리랑 다른 데 특별히 분해가 빠른 재질로 만든 것이라 했다. 기차 안이나 시내에서 짜이(인도 차)를 마시곤 했다. 아주 얇은 페트 컵에 팔기에 우리는 준비해 간 자기컵에 마셨다. 이렇게 인도 시내에서 일회용물품이 눈에 띄었는데 조금만 시골로 가니 놀라운 일회용품(!)이 등장했다.
가게나 마을에서는 마른 나뭇잎을 몇 개 붙여 접시 모양을 낸 그릇에 먹을 것을 담아 주었다. 사용하고 나면 그냥 버려도 퇴비가 된다. 우리 여행객을 위한 차를 담은 컵은 황토로 빚은 토기였다. 다 쓰고 깨면 그냥 흙이라고 한다.
그들의 일회용품은 쓰레기가 아닌 자연이었다. 가난하기에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이들의 삶에 뭐라 말할 수 없는 미안함이 올라왔다. 안타깝게도 성지 주변에는 비닐과 휴지, 생수병이 뒹굴고 있었다. 모두 여행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다.
인도 시내를 지났다. 길에는 사람과 릭샤(자전거나 오토바이 뒤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음), 자동차, 자전거가 중앙선도 없이 서로 뒤섞이고, 좌우로 움직였다. 좋은 옷에 말끔한 얼굴을 한 사람과 구걸하는 사람이 한곳에 있었다. 그 속에 뼈만 앙상한 소와 개도 함께 있었다. 이 복잡한 모습을 한 눈에 보는 것은 너무나 놀라웠다.
그러나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었고 오랜 계급사회와 빈부의 격차를 받아들이는 인도인들의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오히려 깊고 그윽한 눈빛으로 내 눈을 평화롭게 오랫동안 바라보아 주니 혼란스런 마음도 조금씩 진정되어 갔다.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우리가 성지에 도착하면 어딘선가 순식간에 수십명의 아이들이 몰려와 구걸을 했다. 아이들은 눈빛만 보고도 줄 사람인지 안 줄 사람인지 아는 듯했다. '불쌍해서 줘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떻게 알고 다가왔다.
하지만 '도저히 안되겠다'고 마음먹으면 가까이 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구걸을 하면서 생긴 놀라운 눈치일 것이다. 그래도 가끔씩, 아이들이 너무나 해맑은 웃음을 웃어 주어 애잔한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가재도구는 접시 몇 개와 물 항아리 하나, 나는 너무 많이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