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을 넘어 고국에 돌아온 백성, 돌려보내다

[역사소설 소현세자 75]탈주 포로를 송환하라

등록 2008.07.21 13:04수정 2008.07.2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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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관. 세자관으로 알려진 심양아동도서관. ⓒ 이정근


소현세자가 심양에 도착했다. 세자관을 지키던 재신과 노비들이 모두 관소밖에 도열하여 반갑게 맞이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소현의 심정은 착잡했다. 볼모지로 되돌아 온 왕세자. 돌아오지 않으면 더 좋을 사람이 돌아온 것을 환영하는 조선인들. 뼈아픔으로 가슴을 할퀴었다.

말에서 내린 소현은 강빈과 함께 관소 대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던 원손을 와락 끌어안았다. 아들 석철. 오고가는 길에서 조우했지만 뜨거운 정을 전해주지 못했던 아이다. 원손을 끌어안은 소현이 한참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빈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날 저녁. 소현과 강빈 그리고 원손이 함께 식사를 했다. 기억에도 없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튿날 용골대가 찾아와 세자 알현을 청했다. 빈객의 안내를 받은 용골대가 세자 집무실에서 소현과 마주앉았다.

"조정이 수군을 징발하여 우리에게 보내려고 하는데 호남과 영남의 선비 중에 징발을 중지하자고 상소한 자가 있다고 들었소. 그렇습니까?"

청나라의 정보 수집력은 대단했다. 저잣거리 소문과 백성들의 동향은 대가를 받고 활동하는 첩자들의 입을 통하여 전해졌지만 고급 정보는 조정에서 흘러나왔다.

첩보를 바탕으로 세자를 추궁하는 청나라

"수군을 보내라는 명을 받은 뒤로 임금과 신하들이 모두 몸과 마음을 다하여 배를 정비하고 군사를 모았소. 이미 바다로 나아가 기일에 늦지 않게 되었는데 어찌 중지시키려는 자가 있었겠습니까?"


"닥치시오. 변명은 듣고 싶지 않소. 수군 징발을 반대한자가 누구요?"

용골대가 고함을 지르며 단도직입적으로 캐물었다.

"이보시오. 용장군! 내가 비록 이역에 와 있지만 한 나라의 세자이다. 네가 어찌 감히 이토록 협박하는가? 죽고 사는 것은 천명에 달려 있는 것이니 그 따위로 나를 협박하지 말라."

소현이 맞받아치며 언성을 높였다.

"나의 언사가 과했다면 용서하시오."

용골대가 한 발 물러섰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상대를 제압하려는 기 싸움이 불꽃을 튀었다.

"원손이 심양에 들어올 때 어떤 문관이 다른 아이를 대신 보내는 계책을 진달하였는데 국왕께서 후환이 있을까 염려하여 그 계책을 쓰지 않았다 들었소. 그리고 출발 직전에 중지시키려고 하였는데 국왕께서 또 따르지 않았다 들었소. 이에 배행하는 빈객이 어찌할 바를 몰라 중로에서 배회한 것이 4개월이나 되었소."

용골대가 수군 징발문제에서 화제를 돌렸다.

"원손이 병약하여 늦었을 뿐 그것은 와전된 오해입니다."

"정승 신경진이 '수군을 보내야 된다'고 말한 것이 논의에 저촉되어 체직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된 영문이오?"

"그는 병을 얻어 체직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승 최명길은 왜 파면되었소? 그 까닭이 무엇이오?"

"두 정승이 파직당한 것은 모두 병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도망간 포로를 모두 돌려보내라

"귀화한 사람 중에 아직 돌아오지 않은 자가 많은데 예조에서는 이 무리들을 어렵(漁獵)에 쓰느라 쇄환해 보내려는 뜻이 없는 것 같소. 예조판서를 욕보인 뒤에야 거행하려는 것입니까? 즉시 보내시오. 또한 도망포로들도 숨겨주고 있다는데 모두 찾아서 보내도록 하시오."

"조정에서는 보이는 대로 묶어 돌려보낼 것입니다. 어찌 감히 소홀히 하겠습니까."

"내가 이미 모두 알고 있는 것을 세자는 왜 이리 변명만 하시오?"

용골대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날 밤. 역관 정명수가 세자관을 찾아왔다.

"양남의 선비가 수군 징발을 중지시킬 것을 간하였는데 들어주지 않자 화를 내면서 돌아가다가 삼전도의 비(碑)를 깨부수었다고 들었습니다. 어찌된 영문입니까?"

"와전된 말이니 믿을 것이 못 된다."

청나라의 추궁은 집요했다.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세자는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청나라는 소현에게 단순한 볼모 이상의 소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소현에게는 아무런 재량권이 없었다. 소현의 보고를 받은 인조는 청나라에서 귀화한 청나라 사람과 심양에 붙잡혀 갔다 도망쳐온 탈주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청국으로 보내라 명하고 팔도에 유시했다.

사선을 넘어 고국에 돌아왔건만 다시 돌려보내지는 포로들

"내가 일국의 임금이 되어 백성을 편안히 하고 감싸 보호할 책임이 있는데도 잘 주선하지 못해 큰 변란으로 군병은 전사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붙들려 갔으니 화란의 참혹스러움은 옛날에도 드문 일이었다. 내가 당시에 싸울 것을 명령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나 허겁지겁 성을 나와 항복하여 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까닭은 구차하게 혼자만 온전하게 하려는 계책이 아니었고 온 나라 민생들을 살리려는 목적에서였다.

무고한 우리 백성들이 이역 땅에 잡혀가서 골육을 그리워한 나머지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하여 돌아왔으나 남한산성의 조약이 엄중하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몸을 숨겨 목숨을 부지하기에 바빠 이미 본업도 잃고 숨어 사는데 일제히 찾아내 결박하여 보내니 통탄을 금할 수 없다. 한인(漢人) 역시 우리 백성으로 편입되어 각기 가업이 있는 처지인데 이번의 쇄송을 면치 못하게 되었으니 가슴 아프다.

한 나라의 임금이 관리들을 호령하여 결박하는 일을 스스로 하고 있으니 이 어찌 인민의 부모가 되어 차마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형편이 급박하여 그만둘 수 없는 일이긴 하나 마치 제 몸의 살을 베어 빈창자를 채우고 사지를 손상시켜 얼굴과 눈을 구원하는 것과 다름없는 짓을 하고 있으니 백성을 편안히 살게 하고 감싸 보호할 책임을 제대로 수행한다고 하겠는가.

이번 일을 당한 백성들이 아무리 나를 꾸짖고 원망한다 해도 이는 나의 죄이니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남아있는 인민들은 나의 본심을 알아주어 흩어지거나 영을 어길 생각을 품지 말고 우리 이백 년 종묘사직이 한 가닥 명맥이나마 이어갈 수 있도록 하라. 이것이 나의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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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탑거리. 포로들이 매매되던 곳이다. ⓒ 이정근


팔도에 검거선풍이 불었다. 심양에서 도망쳐온 탈주자들은 산 속으로 숨어들었고 관리들의 등쌀을 견디지 못한 가족들은 다른 사람을 사서 대신 보내기도 했다. 그러할 여력이 없는 백성들은 부모형제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도성의 인심이 흉흉해졌고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관리들에게 끌려나온 탈주자들이 훈련원 마당에 집결했다. 심양으로 출발하기 위해서다. 보내지 않으려는 가족들과 떠나지 않으려는 탈주자들이 한데 뒤엉켜 울부짖었다. 기약 없는 생이별이다.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살아서 돌아올지 죽어 뼈가 되어 돌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보내고 떠나는 자들의 통곡이 훈련원을 진동했다.

관리의 인솔 하에 탈주자들의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족들도 따라 움직였다. 부모형제의 손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탈주자가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렸다. 끌려가는 지아비를 먼발치서 뒤따르던 아낙이 하염없이 흐느꼈다. 이들을 바라보는 도성의 백성들도 눈물을 훔쳤다. 이들이 심양으로 끌려가는 날 도성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돈의문을 빠져나온 행렬이 무악재 고개를 넘었다. 북으로 끌려가는 탈주자들은 자꾸만 뒤돌아보았고 마루턱까지 따라나선 가족들은 이들의 행렬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소현세자 #청나라 #포로 #삼전도비 #세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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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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