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외교시스템, 동종교배로 퇴화한 생물체"

[외교난맥상 진단①] 외교부 인사 독주로 '견제와 균형' 무너져

등록 2008.07.30 10:31수정 2008.07.3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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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외교 난맥상이 심각하다. 외교가 국익을 지키기는커녕, 모든 혼란과 위기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으나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외교안보 분야의 '참사'가 꼬리를 물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시리즈를 통해 그 원인을 파헤치고 해결책을 모색해본다. [편집자말]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김하중 통일부 장관. 사진은 지난 4월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김하중 통일부 장관. 사진은 지난 4월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남소연

"외교 망국론이 나올 지경이 됐지만 외교통상부 내부는 조용하다. 반성하기는커녕 문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안보를 외교부가 주도하는 데다, 현안을 점검하고 조율해야 할 청와대 내부도 외교부 판인데 누가 딴 소리를 하겠나? 한 마디로 현재의 외교안보시스템은 동종교배로 퇴화한 생물체나 다름없다."

외교부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인사의 전언이다. 그는 4월 말 이명박 정권 외교 난맥상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할 때 기자와 만나 "두고 봐라, 외교부는 절대 반성하거나 스스로 문제를 고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외교부는 이전에도 문제가 생기면 고치는 시늉만 하다가 유야무야했다"며 "외무고시로 관료를 충원하는 시스템이 순혈주의와 폐쇄주의로 이어져 조직 발전을 위한 건강한 비판과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쇠고기파동, 정상회담 푸대접... 결국 독도 주권인정 변경까지

실제 이 인사의 예언대로 '쇠고기 파동'을 겪고도 외교부는 전혀 반성의 빛이 보이지 않았다.

이후 독도 문제, 한중 정상회담 때의 푸대접 논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의 의장 성명 삭제 파동, 미국 지명위원회(BGN)의 독도 주권인정 변경 사태 등 외교안보 분야에서 '대형 참사'가 꼬리를 물었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안보에 대한 무지, 비전과 전략 부재, 지난 10년에 대한 무조건적인 부정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외교부의 독주체제도 주요한 원인을 차지한다.


외교안보 현안은 통일부·국방부·국정원 등 여러 부서에 걸치는 경우가 많은데, 외교부가 독주하면서(외교부 안에서는 북미국이 독주한다) 크로스 체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무너진 것이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 시절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과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대체하는 것이 외교안보정책 조정회의다. 이 회의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외시 7회)이 주관하는데, 회의 멤버인 김하중 통일부장관(외시 7회), 조중표 총리실장(외시 8회),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외시 10회) 등이 모두 외교부 출신이다.

다른 부처 출신은 군인 출신인 이상희 국방부 장관과 검사 출신인 김성호 국정원장 뿐이다. 외교부는 외무고시를 통한 기수별 서열이 엄격한데, 청와대의 김성환 수석은 제일 후배 축에 든다. '영'이 서기 어려운 구조다.

외교안보정책 조정회의는 외교부 부내 회의

외교·안보 라인이 모두 외교부 선후배 사이이다 보니 시스템의 긴장감이 사라졌다. 독도 이슈가 한창인데 주미 대사관은 미국 지명위원회에서 독도가 무주권 지역으로 넘어가는 것도 모르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 삭제 파동도 비슷하다.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 비서관은 "의장성명 수정과 관련해 현장에서 청훈하고 본부나 청와대에서 훈령을 내린 공식 문서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서로 아는 선후배들 사이니 전화 통화로 보고하고 처리하다가 이렇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ARF에서 망신 외교는 근본적으로 금강산 피살 사건을 국제 무대로 끌고 간 데서 발생했다. 과거 같으면 통일부가 반대해서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의장국인 싱가포르를 포함해 아세안 국가들이 북한과 상당히 사이가 좋다, 북한이 그동안 많은 공을 들였다"며 "이것도 모르고 ARF에 금강산 피살 사건을 끌고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국제적으로 이미지가 좋지 않지만 최소한 그 사람들을 동정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대북 압박을 해야지…"라고 꼬집었다.

지난 대선에서 'BBK 문제'를 놓고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했던 이장춘 전 싱가포르 대사도 외교부의 '단견'을 개탄했다. 그는 "ARF가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지만, 우리 마음대로 되는 기구도 아니다"면서 "동남아 사람들 다루는 게 간단하지가 않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권 후반기부터 이미 외교부 독주체제

사실 외교부 독주는 이미 노무현 정부 후기부터 시작됐다.

지난 2006년 1월 NSC 사무처 기능의 대부분은 신설된 대통령 통일외교안보정책실로 넘어갔다. 안보정책실장은 장관급으로 격상됐는데 그 책임자인 외교부 출신 송민순 실장의 역할이 커지기 시작했다.

NSC 사무처가 사실상 와해되면서 이종석 NSC 사무차장은 통일부 장관으로 갔다. 그러나 그는 2006년 10월 북핵 실험 여파로 장관직에서 사퇴했고, 송 실장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노무현 정부 말기 4강 대사가 모두 외교부 출신으로 채워졌다. 이전 정권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외교통상부는 장관 외에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을 두고 차관직(제2차관, 평화교섭본부장)을 2개나 신설했다. 외교부는 장관급 3명, 차관급 3명을 거느리는 초유의 부처가 됐다. 외교안보 현안이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반기문 당시 장관은 유엔 사무총장 선거운동에 전력할 수 있는 배려를 청와대로부터 받았다.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6년 10월 외교통상부에서 열린 국회 통외통위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송민순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실장(이후 외교통상부 장관).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6년 10월 외교통상부에서 열린 국회 통외통위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송민순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실장(이후 외교통상부 장관).오마이뉴스 권우성


오죽했으면 참여정부 초기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냈던 서동만 교수가 2006년 7월 외교부 독주를 비판하는 글을 쓸 정도였다. (관련 기사 보기: <프레시안> 미사일사태에서 NSC는 '국가안전을 보장'하고 있나)

서 교수는 이 글에서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는) 대통령 직할체제의 외양은 띠고 있지만 실상 외교부 전성시대"라며 "이렇게 의사 결정 구조가 한 쪽으로 치우쳤는데 대통령 스스로 자기능력을 과신하는 직할체제는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은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현 이명박 정권의 현실을 예고한 글이나 마찬가지다.

잘 나가던 외교부가 지난 정권에서 차별받았다고?

이 정도로 이미 외교부는 잘 나가고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과거 '친북 좌파정권'에서 외교부가 차별받았다고 잘못 생각해 외교부 독주 체제를 더욱 굳혀줬다.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의 한 인사는 "지난 수십년간 대미 추종적이었던 외교부는 기본적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맞지 않았다"며 "그러나 DJ의 경우 외교·안보 식견이 뛰어나고 해외에서 지명도가 높아 외교부 직원들이 수긍하는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외교부 직원들은 상고 출신의 노 대통령을 인정할 수 없었고, 지난 2003년 말 당시 조현동 북미 3과장의 대통령 폄하발언 사건까지 터졌다"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이제 외교부 직원들은 마치 제 세상이 온 것처럼 활개를 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교부 직원들은 해외에서 3년, 국내에서 2년식으로 순환하기 때문에 정무적 판단 능력이 떨어진다"며 "이런 사람들이 쇠고기 협상을 밀어붙여 결국 이런 사태까지 오게됐다"고 말했다.

외교부 독주의 폐해가 드러난 만큼 일차적인 과제는 크로스 체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설사 이런 시스템을 갖춰도 철저하게 관리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는 임동원 장관이 있었고, 노무현 정부는 중반까지는 이종석 NSC 사무차장, 후기에는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역할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 밑에는 이런 인물이 없다. 유명환 장관이 이런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 자신부터 퇴진 요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장춘 전 싱가포르 대사는 "관료는 관료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할 일이 있다, 그래야 서로 견제도 되고 경쟁·협조가 돼서 국정이 돌아간다"며 "여러 직업과 경험의 사람이 모여서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뤄내야지, 직업관료만으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외교부 #유명환 #김하중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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