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이통사서비스 약정 기간 '위약금 완화' 속에 숨은 뜻

법적 분쟁 피하기 위한 카드... FCC "이용기간 따라 차등 부과해야"

등록 2008.08.01 15:36수정 2008.08.0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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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동통신 업계가 그동안 소비자들에게 부과해왔던 의무약정 기간 위약금(Early Termination Fee)을 완화시켜 달라는 제안서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제출했다.

자사의 이윤을 포기하고 손해를 자처하는 듯 보이는 이러한 제안은 겉으로만 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동통신 업계가 자발적으로 내놓은 제안이라기보다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제안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적 분쟁 피하기 위한 '억지춘향' 제안

지금까지 미국의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들은 보통 2년 이상의 서비스 이용을 약정한 가입자들에게 휴대전화 단말기를 무료로 제공하거나 최신형 휴대전화 단말기의 경우 가격을 대폭 할인해주었다. 하지만, 가입자가 의무약정 기간인 2년을 채우지 않고 서비스를 해지할 경우 회사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최소 175달러 이상의 위약금을 부과해왔다.

또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들은 사용 기간에 상관없이 서비스 이용 기간이 2년 미만인 경우 동일한 금액의 위약금을 이용자들에게 부과해왔다. 즉, 한 달을 사용하든 1년 6개월을 사용하든, 의무 약정기간인 2년이 되기 전에 서비스를 해지할 경우 천편일률적으로 위약금을 부과해왔다.

캘리포니아 주와 뉴욕 주에서는 이러한 통신사의 횡포에 분노한 휴대전화 이용자들이 스프린트/넥스텔(Sprint/Nextel)을 상대로 그동안 소비자들에게 부과한 의무 약정기간 위약금 10억 달러를 되돌려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불만이 점점 커지고 그 불만이 소비자들의 법적 소송으로까지 이어지자, 미국 이동통신 업계는 장기적으로 진행될 재판의 소송비용과 만일의 경우 소송에서 패했을 때 지불해야 할 위약금에 대한 부담감으로 골머리를 앓다가, 결국 서비스 의무약정 규정 완화라는 카드를 꺼내들게 된 것이다.


FCC에 제출한 미국 이동통신업계의 의무약정규정 완화를 위한 제안서에 따르면, 그동안 이동통신 서비스에 가입 후 하루 만에 계약해지를 해도 물어야 했던 위약금을 소비자들이 이동통신 서비스에 가입한 후 30일이 지나지 않았거나, 가입 후 첫 번째 요금 고지서를 받은 후 10일이 지나지 않았을 경우 자유롭게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을 해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나아가, 이 제안서는 가입 후 30일이 지났거나 첫 번째 요금 고지서를 받고 나서 10일이 지난 후 서비스 해지를 원할 경우, 사용 기간에 따라 의무약정 기간 위반위약금을 차등해서 부과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즉, 사용 기간이 긴 가입자가 서비스 해지를 원할 경우 사용 기간이 짧은 가입자에게 비해 적은 금액의 위약금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위약금 지불한 이용자와의 형평성 논란 대두

미국의 이동통신 회사들이 위약금 자체를 완전히 폐지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이동통신 회사들은 의무약정 기간 위약금이 새로운 가입자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휴대전화 단말기와 단말기 보조금의 회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소비자 단체들은 의무약정 기간 위약금은 이동통신사가 가입자들을 묶어두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으며, 소비자들이 이동통신 회사를 선택할 권리를 박탈하고 있어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소비자들의 불만과 법적 대응에 떠밀려 억지춘향 격으로 이동통신 회사들에 의해 추진되던 이동통신 서비스 의무약정 규정 완화 제안은 요즘 또 다른 복병에게 발목이 잡혀 쉽사리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이동통신 회사들의 약정규정 완화 제안 발표가 있자마자 의무약정 기간 내에 서비스를 해지해 이미 엄청난 비용의 위약금을 이동통신 회사에 지불한 이용자들이 자신들에게는 부당한 조치라며 크게 반발하고 나섬에 따라 이미 위약금을 지불한 이용자와 앞으로 위약금을 지불하지 않게 될 이용자들 간의 형평성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텍사스주에 살고 있는 한 이용자의 경우, 최근 의무약정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스프린트에 가입했던 3개의 휴대전화 이용 서비스를 해지하는 바람에 총 600달러를 위약금으로 지불했다며, 이제 와서 위약금을 완화하는 것은 이미 위약금을 지불한 소비자와의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더군다나 자신이 가입한 스프린트사의 이동통신 서비스가 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달라스 지역에서 통화음질 상태가 좋지 않아 이용에 불편을 느껴 어쩔 수 없이 해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약금을 부과한 것은 이동통신 회사의 횡포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불만이 팽배해지자 미국 연방의회 의원들과 주 정부의회 의원들이 이동통신 의무약정 기간 위약금과 관련된 법안을 제안하고 나섰다. 지난해 9월, 미 연방 의회의 에이미 클로브차(Amy Klobuchar) 의원과 제이 록펠러(Jay Rockefeller) 의원은 사용 기간에 따라 의무약정 기간 위약금을 차등해서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휴대전화 사용자 권리 법(안)'(Cell Phone Consumer Empowerment Act)을 미 의회에 제출했다.

FCC "이용 기간 따라 위약금 차등 부과해야"

한편, 이동통신 회사들의 의무약정규정 완화 제안서를 받은 FCC는 지난 6월 이동통신 의무약정규정 개정과 관련된 청문회를 개최했다. 이번 청문회에서 케빈 마틴(Kevin Martin) FCC 위원장은 의무약정 기간 위약금은 휴대전화 단말기 가격에 따라 차등해서 부과되어야 하고, 서비스 이용 기간에 따라 의무약정 기간 위약금도 차등 부과되어야 하며, 대부분의 이동통신 회사들이 2년으로 정한 이동통신서비스 의무약정 기간도 손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동통신 회사들은 소비자들이 첫 번째 요금고지서를 받고 계약 내용을 검토한 후 원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부여해야 하며, 2년 이상 이동통신 서비스를 사용한 소비자가 재계약할 경우 서비스 의무약정 기간의 적용을 면제해주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소비자, 법원, 미 의회, 그리고 FCC로부터 전방위적인 압력을 받고 있는 미국의 이동통신 회사들은 자신들이 내놓은 제안에 대해 FCC의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의무약정 기간 위약금의 완화를 시행하고 있다. 먼저 7000만 명의 가입자를 가진 미국의 최대 이동통신 회사인 AT&T는 그동안 서비스 이용 기간에 관계없이 천편일률적으로 부과하던 의무 약정기간 위약금을 가입자들의 사용 기간에 따라 차등해서 부과하기 시작했으며, 가입자 6600만 명으로 미국 내 2위 이동통신 회사인 버라이존(Verizon)은 의무약정 기간 위약금을 60달러까지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국 이동통신 회사들의 이러한 발빠른 대응은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FCC가 연방 정부 차원에서 의무약정 기간 위약금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 각 주 법원에서 진행 중인 소송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서 기인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최진봉 기자는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매스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로 재직중 입니다. 이기사는 미디어 미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최진봉 기자는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매스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로 재직중 입니다. 이기사는 미디어 미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동통신 #AT&T #FCC #의무약정 기간 #위약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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