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이 나를 닮았다

간지럼 많이 타는 것도, 예쁘고 아름다운 것도

등록 2008.08.05 09:12수정 2008.08.0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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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을 넋 잃고 보고 있는 우아한 나. ⓒ 이예슬

백일홍을 넋 잃고 보고 있는 우아한 나. ⓒ 이예슬

 

2008년 8월 3일(일).

 

아빠와 엄마, 슬비 언니랑 계룡산에 있는 신원사에 갔다. 거기에서 멋있게 생긴 배롱나무를 보았다. 분홍색 백일홍이 정말 예뻤다. 꽃이 흰 백일홍도 보았다. 분홍색 백일홍은 많이 봤는데, 흰 백일홍은 처음 봤다. 백일홍은 꽃이 백일동안 핀다고 해서 백일홍이다.

 

아빠께서 배롱나무를 ‘간지럼나무’라고 하셨다. 언니와 내가 나무의 몸을 간지럽게 해 보았다. 진짜로 나무가 간지럼을 타는지 가지와 잎이 웃으면서 움직였다. 신기해서 언니가 다른 곳으로 간 다음에도 한 번 더 해보았다. 또 잎과 꽃이 흔들거렸다.

 

나도 간지럼을 많이 타는데 배롱나무도 간지럼을 많이 타는 것 같았다. 배롱나무가 나를 닮았는지, 내가 배롱나무를 닮았는지 모르겠다. 꽃도 아름답고 예뻤다.

 

대웅전에 들어가서 부처님한테 절(?)도 했다. 시주함에 돈도 아낌없이 넣었다. 중악단도 보았다. 중악단은 옛날에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다. 나는 중악단에서 산신께 소원을 빌었다. 무엇을 빌었는지는 비밀이다.

 

중악단에서 나와 석탑을 돌며 탑돌이도 했다.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지켜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길거리 돌담에 돌을 하나씩 올리면서도 소원을 빌었다. 그랬더니 내가 여자스님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 때문일까. 요즘 내가 더 행복해진 것 같다. 학원에서 공부도 더 잘 되는 것 같고, 아빠도 내 편이 된 것 같다. 날마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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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과 절은 함께 붙어있는 친구예요. ⓒ 이예슬

백일홍과 절은 함께 붙어있는 친구예요. ⓒ 이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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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멋진 돌담에다 돌을 올려두는 나. ⓒ 이예슬

아주 멋진 돌담에다 돌을 올려두는 나. ⓒ 이예슬

 

2008년 8월 2일(토).

아빠, 언니랑 같이 배드민턴을 치러 가까운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짝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언니랑 나랑 5분씩 교대로 치기로 했다. 아빠는 쉬지 않고 계속 치고, 나와 언니만 번갈아 가면서 쉬었다.

 

나와 언니는 5분이 되면 한 번이라도 더 치려고 노력했다. 나는 목이 말라 몇 번 물을 마셨다. 그런데 아빠는 한 시간 넘게 치는 동안 물을 두 번 밖에 드시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라켓을 힘차게 휘두르는데 배드민턴 공이 맞지 않고 다른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잠자리였다. 날아가는 잠자리가 내가 휘두른 라켓에 맞아버린 것이다.

 

놀라서 얼른 살펴봤더니 라켓에 맞은 잠자리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 날갯짓을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죽은 것이었다. 그런데 더 심한 것은 잠자리의 날개와 몸통만 있고 머리가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배드민턴을 치기 위해 라켓을 휘둘렀는데 아무런 죄도 없는 잠자리가 맞고 만 것이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꼭 그런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라켓을 피하지 못하고 죽은 잠자리의 비행실력이 별로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잠자리한테 미안했다.

 

계속해서 배드민턴을 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실력은 늘어가고 있었다. 아빠와 배드민턴공을 주고받는 횟수가 늘었다. 하지만 아빠의 실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연습을 더 열심히 하면 아빠보다 더 잘 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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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아래 있는 계룡산 신원사 대웅전. ⓒ 이예슬

푸른 하늘 아래 있는 계룡산 신원사 대웅전. ⓒ 이예슬
덧붙이는 글 이예슬 기자는 광주우산초등학교 4학년 학생입니다.
#신원사 #계룡산 #백일홍 #배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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