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생면부지 1
.. 밤거리를 쏘다니는 생면부지의 인간들은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늘었지만 땅강아지 한 마리 보이지 않고, 쇼윈도를 사정없이 두드리던 나방 한 마리 날아들지 않는다 .. <박병상-우리 동물 이야기>(북갤럽,2002) 195쪽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고치고, “부딪힐 정도(程度)”는 “부딪힐 만큼”으로 고칩니다. 지난날에는 ‘진열창(陳列窓)’이라고 썼으나, 이제는 영어바람이 부는 때인 만큼 ‘쇼윈도(show window)’라고 쓰는 듯한데, ‘유리창’이라고만 해도 넉넉합니다.
┌ 생면부지(生面不知) : 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
│ - 생면부지인 나에게 잘 대해 주는 것을 보면 /
│ 세상에 어느 미친놈이 생면부지의 부랑자에게
├ 생면부지의 인간들
│→ 처음 보는 사람들
│→ 낯선 사람들
│→ 얼굴 모르는 사람들
└ …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은 “만난 적 없는 사람” 또는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면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고,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면 “낯선 사람”이에요.
이와 같은 말은 이러한 말투 그대로 적을 때가 가장 낫습니다. 알아듣기에 가장 알맞고 쓰기에 가장 걸맞습니다. 말뜻과 말투를 돌아보지 않고 한문으로 뒤집어씌우면 골치가 아픕니다.
ㄴ. 생면부지 2
.. 서로 생면부지의 운전사들이 애써 손신호나 헤들라이트로 귀뜀아닌 ‘눈띔’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 <김형국-하면 안 된다>(지식산업사,1986) 70쪽
‘손신호’라는 말이 좋습니다. 손으로 주고받는 신호니 ‘손 + 신호’이지 ‘手 + 신호’가 아닙니다. ‘눈띔’이라는 말도 재미있군요.
┌ 생면부지의 운전사들
│
│→ 처음 보는 운전사들
│→ 본 적 없는 운전사들
│→ 낯선 운전사들
│→ 모르는 운전사들
└ …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라 하면 됩니다. “生面인 사람”이라고 해 보셔요. 듣는 사람마다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뭔 소리를 하나 알쏭달쏭해 하리라 봅니다.
만난 적이 없다면 “만난 적 없는 사람”이나 “본 적 없는 사람”이라 하면 되어요. “마주친 적 없는 사람”이라든지 “스치지도 않은 사람”이라 해도 됩니다. 흔히 말하듯 “처음 보는 사람”이나 “낯선 사람”이라 해도 괜찮습니다. “不知인 사람”이라고 글을 써 보셔요. 읽는 사람마다 뒷통수를 긁적이며, 뭔 글나부랭이를 이 따위로 썼느냐며 씨부렁씨부렁 투덜투덜 궁시렁궁시렁 하리라 봅니다.
┌ 생면부지인 나에게 → 처음 보는 나한테
└ 생면부지의 부랑자에게 → 낯선 떠돌이한테
있는 그대로 쓰면 말썽이 되지 않습니다. 꾸밈없이 쓰는 글에 잘못이 깃들지 않습니다. 수수하게 자기를 낮추면서 말을 하고 글을 쓸 때에는 언제나 살가움과 따스함이 묻어나기 마련입니다. 누구나 아는 낱말로, 언제 어디서라도 주고받을 수 있는 말투로 이야기를 엮어내면 됩니다.
ㄷ. 생면부지 3
.. 서로 생면부지인지라 오후 6시 백두산 매표구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 <박도-항일유적 답사기>(눈빛,2006) 121쪽
‘오후(午後)’는 ‘낮’으로 고쳐 주고, ‘매표구(賣票口)’는 ‘표파는곳’으로 고칩니다.
┌ 서로 생면부지인지라
│
│→ 서로 얼굴을 모르는지라
│→ 서로 모르는 사이인지라
│→ 서로 첫 만남인지라
│→ 서로 처음 만나는지라
└ …
서로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아직 만난 적이 없으리라 봅니다. 만난 적도 없을 테지요.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고 “첫 만남”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국어사전에서 ‘생면(生面)’을 찾아보니 ‘생면목(生面目)’과 같은 낱말이라고 합니다. ‘생면목’은 “처음으로 보는 얼굴”을 가리킨답니다. ‘부지(不知)’를 찾아봅니다. “알지 못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생면부지’란 “처음 보는 얼굴에다가 알지 못함”을 나타내는 셈이군요.
┌ 처음
└ 모름
그러면, 우리들은 “처음이면서 모른다”고 하거나 “아직 모르면서 처음”이라고 말하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두 가지 뜻 가운데 하나만 따도 되고요. 가만히 살피면, 우리들은 “서로 생면이다”나 “서로 부지이다”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 이렇게 말했다가는 알아먹을 사람이 없을 테지요. 그런데 두 낱말을 더한 ‘생면부지’라는 말은 쓰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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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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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38) 생면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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