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한나라당이 욕을 먹는 거예요" (이완구 충남지사)
"지사도 '이명박 정부'를 홀대하지 마시라" (박순자 최고위원)
한나라당이 '국민의 사랑을 되찾겠다'며 대전·충남을 시작으로 전국 민생탐방에 나섰다. 그러나 첫날부터 당 지도부와 이완구 충남지사 사이에 감정 섞인 설전이 벌어져 행사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이 지사는 당 지도부를 향해 "그런 태도 때문에 한나라당이 욕을 먹는 것"이라며 핏대를 세웠고, 박희태 대표 등 지도부도 "너무 말이 지나치다"며 얼굴을 붉혔다. 결국, 양쪽은 서로 "섭섭하다"며 언성을 높이다 부랴부랴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 지사는 한나라당 소속이지만, 대전·충남은 한나라당에 불모지나 다름없다. 지난 4월 총선에서는 이 지역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민심 취약지역에서부터 신뢰를 얻겠다는 취지로 이곳을 민생탐방의 출발지로 택했다.
박 대표는 취임 100일이 되는 10월까지 전국 민생탐방을 계속할 계획이다. 오는 6일에는 경북 봉화의 수해지역을, 10~11일은 호남을 찾는다.
박희태 대표 "민심 왜 잃었는지 반성하러 왔다"... 시작은 화기애애
5일 오전 9시 30분 대전 중구 충남도청사. 박희태 대표, 임태희 정책위의장, 정몽준·허태열·공성진·박순자 최고위원 등 한나라당 지도부가 총출동해 충남도와 당정협의회를 했다.
시작은 화기애애했다. 박희태 대표는 인사말에서 "오늘 당정협의의 목적은 충청의 민심을 듣자는 것 단 하나"라며 "어떻게 민심을 잃었기에 (총선) 참패의 결과를 가져왔는지 반성과 다짐을 하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이어 "(충남 지원을 위한) 보따리도 많이 싸갖고 왔다"며 "오늘 당정협의가 단순한 세리모니나 쇼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박 대표는 "저희를 좀 사랑해달라, 한나라당을 사랑해주시면 충청이 발전한다"며 거듭 구애의 메시지를 던졌다.
이완구 지사 "민심 심상치 않다, '충청 홀대론' 고개 들어"
그러나 좋은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완구 지사의 현안보고에 박순자 최고위원이 제동을 건 게 화근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두 사람 사이에서 거친 말이 오갔다.
이 지사는 먼저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이 대거 낙선했는데, 지역 민심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어 책으로 만들었다"며 지역 현안에 대한 각 정당의 활동 내용과 언론보도 등을 묶은 자료집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 지사는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시면 (민심이)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최근 '충청권 홀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지사는 행정복합중심도시, 국제 과학비즈니스 벨트 등을 거론하면서 "(민심이) 대선 공약 직후에는 대단히 우호적이었는데 다시 험하게 바뀌었다"며 "국방대 논산 이전 문제도 지난해 12월 확정된 이후 8개월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도권 규제 완화 문제에 대해서도 분명히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당 지도부에 대전·충남 인사들이 별로 안 보인다"며 당 인사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박순자 최고위원, "이 지사도 이명박 정부 홀대 말라" 발끈
이 지사의 '충청권 홀대론'에 박순자 최고위원이 발끈했다. 박 최고위원은 작심했다는 듯 "이 지사의 보고에 대해 (몇 가지) 지적을 하고자 한다"며 "이 지사가 준 자료집을 보니 민주당이나 자유선진당 관련된 기사만 있고 한나라당은 없다"고 지적했다.
박 최고위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 지사는 "한나라당은 관련 기사가 없다"고 곧장 맞받아쳤다. 그러자 박 최고위원은 "이 지사가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다. 홍문표 의원과 이진구 전 의원이 많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며 "자료를 찾으려면 얼마든지 있다, 지사가 생각이 짧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최고위원은 "이 지사가 '이명박 정부의 충청권 홀대'라고 말했는데 이 지사도 이명박 정부를 홀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사가 당 지도부에 대전·충남 인사가 없다고 말한 데 대해서도 "인사에는 여러 원칙이 있는 것"이라며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런 점을 말하는 건 옳은 처신이 아니다"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완구 지사, "그런 태도 때문에 한나라당이 욕먹어"
박 최고위원의 말에 이번엔 이 지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 지사는 "지사로서 리얼하게(있는 그대로) 말씀을 드린 것이다. 박 최고위원은 (지역민심 사정을) 잘 모르신다"고 되받아쳤다. 또 이 지사는 "바로 그런 태도와 입장 때문에 한나라당이 욕을 먹는 것"이라며 "그런 말씀 하러 이 자리에 오셨느냐,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안 된다"고 따졌다.
이 지사의 성토에 박 최고위원은 "목소리를 낮추시라, 예의를 다하시라"며 호통을 쳤다. 곁에 있던 공성진 최고위원, 박희태 대표도 "그만 하시라" "말씀이 너무 지나치다"며 이 지사를 나무랐다. 그러나 이 지사는 그치지 않고 박 최고위원을 향해 "최고위원답게 말하시라"고 쏘아붙였다.
두 사람의 설전에 마주 보고 앉았던 충남도 관계자들과 당 지도부 사이에 싸늘한 기운이 돌았고 양쪽의 긴장감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제2정조위원장인 황진하 의원이 국방대 이전과 관련해 "논란이 많다"고 언급한 게 문제였다.
이 지사는 "황 의원의 국방대 이전 논란 얘기는 받아들이기 곤란하다"며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국방대 이전 결정은 행정처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직 잘 파악이 안 되신 것 같은데 이 사안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황 의원의 주장을 일축했다.
박희태 대표, "소통하려다 보면 덜커덩하기도 해"... 어색한 마무리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박희태 대표는 "소통 하려다 보니 다소 덜커덩 거리는 소리가 났으나 발전을 위한 진통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유익한 당정협의였다"면서 서둘러 당정협의를 마무리했다.
이완구 지사도 "지역현안과 관련한 민심이 하도 들끓어 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마음이 상하셨다면 푸시기를 부탁한다"며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최고위원들의 표정은 풀어질 줄 몰랐다.
한편,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이날 충남도와 당정협의에서 '세종시 특별법'을 정부 입법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세종시 특별법은 연기·공주에 들어설 행정중심복합도시의 행정구역 범위와 법적 지위 등을 규정하고 있다.
임 의장은 "당에 정진석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행복도시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있다"며 "특위 주관으로 당정협의를 통해 정부 입법을 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임 의장은 국제 과학비즈니스 벨트 구축과 관련해서도 "이 사업이 가장 적합한 지역은 바로 충청권"이라며 "지역 공감대를 형성해 사업계획을 빨리 확정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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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한나라당이 충청서 욕먹어" "그렇게 말하면 섭섭... 예의 갖추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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