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가 지팡이 될 때까지, 안타 칠래요"

[인터뷰] '우리나라 최초 여자 야구선수' 안향미 선라이즈 감독

등록 2008.08.10 10:43수정 2008.08.1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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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미 감독은 지난해 개최된 제1회 한국여자야구연맹 회장배 대회에서 홈런왕과 타격왕을 휩쓸었다. ⓒ 김선재

안향미 감독은 지난해 개최된 제1회 한국여자야구연맹 회장배 대회에서 홈런왕과 타격왕을 휩쓸었다. ⓒ 김선재

인생을 9회말 투아웃 이후에 비유하지만 그의 삶은 '1회 초'부터 드라마틱했다.
 
열두 살 나이에 남자들만의 리그에 진입했다. 모진 홀대와 시린 외로움을 견디며 야구를 배웠다. 세상은 매번 그에게 '삼진아웃'을 선언했지만 꿋꿋이 견딘 그는 한국 최초 여자야구단 창단이라는 통쾌한 홈런을 날렸다. 야구방망이가 지팡이로 바뀔 때까지 뛰고 싶다는, 여자야구팀 '선라이즈' 안향미 감독을 지난달 24일 만났다.

 

"저희 팀이 남자 사회인야구단하고도 시합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저를 모르는 분은 없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유명한 줄은 몰랐어요."

 

꾸밈없는 성격과 소탈한 웃음이 금세 주위를 밝게 만든다. 사실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안향미' 이름 석 자 모르는 이가 없다. 한국 최초 여자야구선수로 널리 알려졌다.  

 

"울면서 야구장 다닌 기억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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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포지션은 투수와 3루수이다. ⓒ 안향미

그녀의 포지션은 투수와 3루수이다. ⓒ 안향미

안 감독이 야구공을 처음 잡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유도선수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3남1녀가 모두 운동을 한 가지씩 배웠다.

 

테니스를 배우던 그는 테니스부가 갑자기 해체되어 운동을 쉬던 참이었다. 야구하는 남동생을 보호자 자격으로 데리고 다니다가 "같이 해보라"는 아버지의 말에 야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팀에 들어가서야 야구가 '남자 운동'이고 여자가 자기 혼자라는 걸 알았다. 첫날부터 그만두고 싶었지만 이미 유니폼은 나와 있었다. 어린 마음에 큰 돈 주고 맞춘 유니폼이 아까워서 그만두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그 유니폼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셈이죠(웃음). 그런데 야구는 혼자 하는 종목이 아니잖아요. 테니스처럼 붙잡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공을 던져주거나 받아주거나 상대해주지도 않았어요. 만날 구석에 혼자 있었고, 말 한 마디 못하는 날이 허다했어요. 울면서 야구장 다닌 기억밖에 없어요."

 

그래도 잘하고 싶었단다.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리라'는 다짐으로 갖은 설움을 극복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심신이 건강하고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그는 공을 맞추는 재주가 뛰어났다.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최초의 여자 야구선수'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은 "홍일점으로서 열악한 환경에서 얼마나 버틸지 두고 보자"는 호기심뿐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남자들 틈에서 꿋꿋이 공을 던졌다. 악바리처럼 연습했다. 아침마다 코피를 쏟아 세면대가 빨갛게 물들었다. 어려서부터 워낙 남자형제들과 지내는 게 익숙했던지라 숙소 사용 등 생활의 불편함은 없었다. 어쩌다 남자 선수의 벗은 뒷모습을 볼 경우도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악~ 이러고 눈 가리면서 소리 지르는 건 식상하잖아요. 아마 남자선수들이 저 때문에 불편했을 거예요."

 

여럿이 재밌게 야구하고파 여자야구팀 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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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여성 프로야구 리그를 그린 영화 <그들만의 리그> 실제 주인공과 함께 한 안향미 감독 ⓒ 안향미

미국 최초의 여성 프로야구 리그를 그린 영화 <그들만의 리그> 실제 주인공과 함께 한 안향미 감독 ⓒ 안향미

시트콤에 출연하는 배우처럼 리얼한 표정이다. 한바탕 웃음에 핑크색 티셔츠 빛깔 따라 얼굴이 발그레 물든다. 내숭을 모르는 솔직담백 말괄량이 캐릭터지만 그는 섬세한 감성으로 야구에 접근한다. 체력싸움이 아닌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야구가 좋다'고, 나이가 들수록 야구가 좋다고 말한다.

 

이십대 초반 한참 생체에너지가 넘칠 때에 비하면 지금 실력이 좋아진 건 아닌데 '노하우'는 많이 쌓인 것 같다고 조심스레 터놓는다. 외국에서도 백발노인이 축구를 하진 않지만 야구는 하더라며 앞으로 한 20년, 아니 '야구방망이가 지팡이로' 바뀔 때까지 야구를 하겠다는 꿈을 밝힌다.

 

"2002년도 일본엘 갔어요. 어학원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여자야구팀 '드림윙즈'에 입단해서 2년간 선수생활을 했거든요. 혼자 쓸쓸하게 야구를 하다가 여럿이 같이 하니까 좋더라고요. 그래서 일본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바로 여자야구팀을 만들었어요. 대단한 의도나 계획에 의한 게 아니에요. 제가 아는 야구지식도 나누고 재밌게 같이 뛰고 싶었죠."

 

그렇게 창단한 팀이 '비밀리에'다. 유니폼도 튀는 노란색으로 정했다. 그의 포지션은 투수와 3루수였다.

 

의욕적인 출발이었지만 좌절도 만만치 않았다. 팀이 분열됐다. 한국 최초 여자 야구선수 안향미의 존재가 부각될수록 곱지 않은 시선이 늘어갔다. 사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 그즈음에는 아예 인터뷰를 거절하고 2년간 '잠수'를 타기도 했다.

 

사람이 가하는 온갖 상처와 등돌림, 지독한 외로움과 막막함 등은 이십대 청춘이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도 가혹한 심리적 '테러'였다. '최초이자 유일한' 여자 야구선수의 삶은 '다사다난' 자체였다. 하지만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 땜에 힘들고, 일하는 사람은 일 땜에 힘들고 나는 야구 때문에 힘들었다"면서 세상에 힘들지않은 일이 어디 있느냐고 덤덤히 되묻는다.

 

'카운터 여직원'으로 프로팀 입단 권유 받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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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여자야구선수 안향미 씨 ⓒ 김선재

한국 최초의 여자야구선수 안향미 씨 ⓒ 김선재

"사람으로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게 더 많아요. 일본에 있을 때도 학비가 모자라 6개월 남겨두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는데 제 사정을 들은 감독님이랑 선수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주었죠. 일본 사람들이 돈 관계 분명하고 자기 것이 확실하잖아요. 그들의 정서에선 드문 경우라고 하던데 너무 고맙죠."

 

작년에는 호주팀 초청으로 참가한 미국 세계여자야구대회에서 4번 타자를 치며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호주에 대한 인상이 좋아서 기회가 닿으면 유학을 오고 싶다고 했더니 선수들이 전부 '자기 집에서 홈스테이 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외국 선수들은 대부분 나를 좋아하는데 한국에선 왜 이렇게 찬밥신세인지 모르겠다"고 넋두리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야구판은 아직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후 프로팀 입단 테스트를 두 군데 봤으나 떨어졌다. 모 구단에서는 그에게 '선수'가 아닌 '카운터'에서 일하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10여년 전만 해도 야구장에는 "여자 기자가 들어오면 하루 종일 재수없다"며 출입을 금할 정도로 보수적이었다고 전한다.

 

한국여자야구연맹도 2007년에야 발족했다. 그가 주축이 됐다. 현실적 여건상 연맹의 윗분들은 전부 남자들이다. 그래도 '여자야구'의 발전이라는 설립 취지에 따른 역할을 기대했으나 그의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웠다. 일부 관계자들은 그에게 '실력을 보여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해오기도 했다.

 

지난해 제1회 회장배 전국여자야구대회 홈런 7개와 8할6푼6리 타율을 과시하자 그 뒤로는 '실력'을 갖고는 아무 말도 못하더라는 웃지 못할 일화를 들려준다. 타격상과 홈런상을 휩쓴 안향미 감독은 현재 연맹을 탈퇴한 상태. '야구하고 싶다'라는 본래 마음에 비추면 결정은 쉽다. 시류에 묻어가지 않으려는 자, 거센 물살의 저항을 감내해야 하리. 그렇다 해도 너무 일찍 태어난 걸까. 그는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며 웃는다.

 

"아기자기한 여자야구 재미 보여줄 것"

 

현재 우리나라는 수십 개의 여자야구단이 있다. 그는 '선라이즈' 감독이다. 전국 각지의 직장인·대학생·학원강사·주부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선수 20여명이 주말에 모여 연습과 시합에 임한다.
 
다들 야구에 대한 애정이 매우 뜨겁다. 그런데 유니폼 입고 있으면 여자인지 남자인지 분간이 안 가는 선머슴 같은 선수들이 대부분이라고 그는 안타까움을 표한다. 

 

"머리도 좀 기르고 외모도 가꾸어서 귀엽고 섬세한 야구를 하자고 선수들을 설득하고 있죠. 피에로가 되자는 게 아니라 여자야구는 남자야구에 비하면 힘이 떨어지니까 특유의 아기자기함을 살려야죠. 여자야구만의 매력과 재미를 찾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야구이야기를 할 때면 눈매가 또렷해지는 그. 금세 아이처럼 유순한 표정이 되어 냉커피를 마시고 있다. 스물여덟의 '씩씩한 아름다움'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그지만 동년배보다는 '아저씨 팬'이 많다고 터놓는다. 연애도 몇번 해봤다. 하지만 무겁지도 않은 가방을 들어주려는 남자들에게 흥미를 못 느낀다고 말한다. 

 

"또 모르죠. 정말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연약한 척 하고 싶을지… 하하."

 

늦어도 서른 즈음에는 호주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다. '한국 최초의 여자야구선수 안향미'를 소재로 한 영화가 제작 준비중인데 그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자금이 마련돼 유학을 떠날 수 있다고 귀띔한다. 평생을 해처럼 지고 산 '한국 최초의 여자야구선수'라는 수식어를 내려놓고 삶을 돌아볼 생각이다.

 

'야구선수 안향미'가 아니라, '안향미'가 야구를 하는 것인데 늘 이름 앞에 '존재규정'이 내려져 있었으니 갑갑했단다. 훌훌 털고 떠날 것이다. 떠나거들랑 세상을 더 너그럽게 바라보는 마음공부를 해서 자유로워지고 싶단다. 관객의 함성을 타고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높이높이 멀리멀리 나는 야구공처럼 말이다.

#안향미 #여자야구 #선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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