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해고 노동자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복직투쟁을 벌인 일이 있었다. 지난해 9월 5일 파리를 찾은 이들은 무비자 체류 가능 기간인 석 달을 넘기면서 애타게 부르짖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주인공은 라파즈한라시멘트의 사내 하청업체인 우진산업 해고 노동자 3인. 라파즈는 시멘트 부분 세계 2위의 프랑스계 다국적 기업이다.
주 40시간 노동에 연장노동 140여 시간을 견디면 한 달 월급 130여만 원을 간신히 챙겨가던 우진 비정규 노동자들은 2006년 3월 31일 일제히 해고됐다. 우진 노동자 38명 중 21명이 참가한 가운데 노동조합을 설립한 날로부터 정확히 24일 만이었다.
하루 아침에 밥줄이 끊긴 노동자들이 그로부터 벌여온 눈물겨운 복직투쟁의 내용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라파즈한라 옥계 공장 정문 앞 천막농성, 서울본사 상경투쟁, 1인 시위, 단식농성 등. 기륭전자 조합원 최은미씨 말마따나 '죽는 것 빼고' 다 해봤다. 파리행은 해고 노동자들에게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리고 이역만리 외국 땅에서 우진 원정단의 손을 잡아준 것은 프랑스 노동자들이었다.
프랑스 최대 노동조합 중앙조직인 노동총동맹(CGT) 산하 건설노조는 원정단이 파리에 도착함과 동시에 투쟁에 합류했다. 노동총동맹은 조합원들이 모은 투쟁기금을 수시로 원정단에 전달하기도 했다. 민주노총(CFDT)과 대표적 대안세계주의 시민단체인 아탁(ATTAC) 또한 원정단이 라파즈 본사 정문 앞에서 펼치는 시위에 매일 같이 참가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 몽드> <리베라시옹>을 비롯해 프랑스의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원정단의 투쟁소식을 대서특필했다. 파리 시민들은 제발로 찾아와 원정단을 격려했다. 그 결과 라파즈한라의 프레데릭 드 루즈몽 사장은 원정단을 만나러 몇 차례 파리를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있었다. 파리 시민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원정단 만을 위한 거리 시위를 조직할 수는 없을까. 현장에 있던 프랑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민들이 원정단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시민들을 동원할 수도 없고 동원 되지도 않는다."
당연하지만 동시에 실망스러운 말이기도 했다. 프랑스 하면 연대를 떠올렸던 내게는 더더욱.
"실체와 만난 촛불, 기륭은 상징이다"
서설이 길었다. 우진 원정단의 기억을 장황하게 서술한 이유는 지난 11일 저녁 기륭전자 정문 앞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이다. 시간은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매일 저녁 7시는 이제 촛불의 시간이 된 지 오래. 그곳이 청계광장이건 시청광장이건 보신각이건 촛불은 어김없이 무더운 여름밤을 밝혀 왔다. 이날의 촛불은 기륭에서 타올랐다.
기륭투쟁 1084일, 단식 62일을 맞은 지난 11일 광화문의 촛불이 마침내 기륭의 촛불과 만난 것이다. 제96차 촛불시위였다. 기륭전자 조합원과 누리꾼, 일반 시민 300여 명이 모인 이날은 광화문이 기륭이요 기륭이 곧 광화문이었다. 구색은 맞춰야 했기에 기륭전자 주변으로 전경버스 13대와 물대포도 포진했다. 집회는 그러나 경찰과 충돌 없이 2시간 반 동안 평화롭게 진행됐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이를 가리켜 "비정규직이라는 밑바닥 투쟁이 기륭이라는 실낱 같은 고리를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과정"이라 진단했다. 교육 문제는 다수의 지지를 얻기 용이한 반면 비정규직 문제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것이 사회 구성원 자신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기륭 비정규 여성 노동자들이 이끌어온 싸움의 처절함은 가슴 아픈데 왠지 다가가기가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11일, 광화문과 기륭이 만난 것은 촛불이 제대로 된 진화 단계를 밟고 있음을 증명한다.
한국 자본주의의 압축성장 이후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폭로한 것이 기륭투쟁이다. 촛불은 이에 대한 답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촛불 자체가 자기분화 되는 과정에서 기륭이 튀어나왔다. 촛불은 끊임없이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를 제기해왔으나 실체를 얻지 못 한 채 소멸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야 실체와 만난 것이다. 기륭투쟁은 그래서 상징이다."
지난 11일 현장에서 만난 김원열 한양사이버대 교수의 생각도 여기서 멀지 않았다. 김 교수는 기륭의 촛불을 가리켜 "촛불 속에 존재하던 다양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다양한 방식으로 힘을 모으는 현상"이라 평가했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 모순의 핵심이다. 기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와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할 문제다. 다양한 요구를 쏟아내며 분출된 촛불은 중요한 순간 결집 되고 사회를 바람직하게 바꾸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것이 "촛불 시위가 100일을 넘기고 오는 15일이면 100차 촛불 시위가 벌어지는 데도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라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870만 비정규직의 시대, 우리가 바로 기륭 여성노동자
한편 일주일 전부터 기륭 투쟁에 참여해 왔다는 누리꾼은 본명 대신 '남자미녀'라는 아이디로 자신을 소개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카페 '액션 대로망'의 회원이라는 '남자미녀'는 촛불시위의 열성 참가자. 인터넷에서 기륭 노동자들의 사연을 알게 됐고 기륭 이야말로 비정규직 문제의 최전선이라 판단, 광화문에서 기륭으로 방향 전환했다는 것.
"비정규직이 일터의 광우병이라는 것을 이제 알 사람은 다 안다. 이전에는 특정 개인의 문제로 치부돼 개개인이 싸워왔으나 이제는 다같이 힘을 합쳐야 한다. 기륭전자의 최동렬 회장 같은 악덕 기업주는 이 땅에 발을 붙일 수 없도록 만드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 모두 함께 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의 독자들이 모여 만들었다는 카페 '액션 대로망'의 회원들은 기륭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싸우고 있는 KTX, 코스콤, 이랜드 투쟁 현장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직장 일이 끝나면 시간을 쪼개 집회에 참가해 왔다는 '남자미녀'는 그러나 사진 찍기를 거부했다. 촛불시위에 참가한 카페 회원 몇몇의 사진이 직장 홈페이지에 떠돌아 수모를 당한 일이 있다며.
역시 이름 밝히기를 꺼려한 50대의 한 여성은 촛불시위가 벌어진 청계광장에서 처음으로 기륭 투쟁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아팠다 한다. "이렇게 외진 곳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힘을 하나 보태자는 생각으로 달려왔다"고 말한 이 여성은 촛불을 든 채 시종일관 엄숙한 표정으로 시위를 지켜봤다.
"시민들이 원정단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시민들을 동원할 수도 없고 동원 되지도 않는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 노동자의 이 말은 사실이었다. 연민은 쉽다. 타자의 아픔에 동조하며 마음 아파하기는 쉽다. 그러나 연민이 사람들을 움직일 수는 없다. 내 문제, 우리의 문제라는 자각이 동반됐을 때 싸움은 힘을 얻는다. 지난해 우진 원정단을 위해 서명운동에는 적극 참여했어도 함께 거리를 행진한 바 없는 파리 시민에게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는 '남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지난 11일 기륭전자 앞에서 촛불을 든 시민, 누리꾼은 기륭 여성 노동자들의 싸움을 일러 '우리의 싸움'이라고 했다. 비정규직 870만 시대를 사는 오늘, 우리가 바로 기륭 비정규 여성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한 노동조건 속에 법정 최저임금을 받으며 연장노동으로 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2008.08.12 17:38 | ⓒ 2008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