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틀린 맞춤법을 발견한 혜민이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하민지
[국문과] '늦으면 안 되'라고 하면 안 돼 "아…얘 계속 틀려."
"으이구, 또 전공병 발동했네.(웃음)"
혜민이와 나는 국어국문학과 동급생이다. 우리는 전공 탓인지, 맞춤법 틀린 것이나 비표준어, 비문 등에 유난히 예민하다.
예를 들면 학교 주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차림표에 '김치찌개'가 아니라 '김치찌게'라고 쓰인 것 혹은 '식권 받읍니다'라고 쓰인 것을 보면 "우리가 주인 분에게 지적하고 고치자"며 난리를 피우기도 한다.
들어보면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주변 국어국문학과 친구들 역시 이런 경우가 꽤 많은 것 같다.
이처럼 자신의 전공과 관련해 예민한 부분이 있다든지 전공수업에서 배운 내용들과 연관시켜 생각하게 되는 강박관념을 갖는 것을 '전공병'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다른 학문을 전공하고 있는 친구들은 어떤 전공병이 있을까?
[통계학과] 버스 타러 갈 때도 '지수분포' 계산경제학과를 전공하는 상원오빠(27)는 "우리 과 친구들은 일상생활에서도 경제학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어떤 현상을 봐도 경제학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원오빠가 들려준 '경제학 전공병'의 사례는 이런 것이었다.
친구가 휴대폰을 새로 샀는데, 너무 비싸게 샀다. "왜 그렇게 비싸게 샀어? 다른 곳을 찾아보면 더 싸게 살 수 있는데"라고 한마디 하면 친구는 이렇게 받아친다고 한다. "정보탐색 비용이 더 높아. 그냥 가까운 곳에서 바로 사는 게 더 싸게 사는 거야."
휴대폰 구매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는 것이 귀찮았던 친구는 '돈을 더 많이 주더라도 마음 편하게 한 번에 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정보탐색 비용'이라는 경제학적 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통계학과 찬의(23)는 "모든 것을 '계산'하려 드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찬의는 "집에서 버스를 타러 나갈 때도 지수분포(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을 나타내는 분포)를 이용해 시간을 계산해 '평균적으로 승강장에서 이 정도 기다리니까 이 때쯤 나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들었다"고 한다.
[시각디자인학과] 장동건보다 글씨체가 더 예쁘다의상학과 동숙이(22)는 "주변의 모든 천에 관심이 간다"며 "의상학과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가면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식탁보 같은 것을 자연스레 살펴보고 평가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동숙이는 때로 "이건 와플 피켓의 식탁보구나" "이건 배트윙 스타일의 소매구나"라는 등 수업에서 배운 전문적 용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다가 친구들에게 "누가 의상학과 아니랄까봐"라는 핀잔을 듣기도 한단다.
이중 전공으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형복이(22)는 '타이포그래피'(이미 만들어진 문자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디자인 기술)에 특히 관심이 많다. 형복이는 "글자 조판을 직접 하다 보니, 평소에 책이나 신문을 넘겨보다가도 '이 활자체는 윤신문체 9.5포인트 사이즈에 문단너비는 120%로 돼 있군'이라며 분석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형복이는 "지하철역에 장동건이 모델로 나온 디지털카메라 광고물이 붙어 있었는데, 사람들은 '장동건 멋있다' '디카 좋아 보인다'고 할 때 나는 '아, 저 글씨체 동글동글하니 예쁜데 무슨 글씨체인가…' 생각했다"며 "'전공병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