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과 가리게로 만든 가방
김혜원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 재활용 패션을 파는 특이한 매장이 있다는 것은 방송을 통해 들은 듯도 하다. 아름다운 가게 재활용 프로젝트의 하나로 출발한 매장이며 가수 이은미씨나 이상은씨 등 몇몇 유명인이 단골로 이용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별관심이 없었다.
평소 환경이나 재활용에 큰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는 환경을 생각하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만들고 또 그들끼리 사고파는 운동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이 쓰다버린 것을 갖고 다시 만들어봐야 거기서 거기지. 얼마나 좋은 상품이 나오겠어. 공연히 버릴 물건에 힘쓰고 돈쓰고…. 나도 집에서 몇 번 해 봤지만 결국은 버리게 되더라.' 이런 나의 선입견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초 인사동 쌈지길 '에코파티메아리' 매장 문을 열면서 완전히 깨져 버렸다. 깨끗한 인테리어와 밝은 조명, 그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상품들이 마치 백화점 명품매장의 그것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나에게 샵마스터 이지연씨가 친절한 설명을 덧붙인다.
"놀라셨죠? 여기서 팔리는 상품은 물론이구요, 매장 벽이나 바닥 진열대들도 모두 버린 목제나 철제·박스 등을 주워 와서 만든 것이랍니다. 하지만 어딜 봐도 버린 것을 재활용해 만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죠? 제품마다 과거 이력을 표시해 놓지 않았다면 아마도 대부분 손님들이 재활용상품이라는 걸 모르실 거예요."쓰레기 주제에 비싸다고? 하나밖에 없는 '신상'인걸신기한 눈으로 매장 안을 둘러보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명함지갑을 찾았다. 이력을 보니 사용하고 버린 소파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오래된 가죽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손에 닿는 부드러운 느낌도 좋지만 바느질도 여간 꼼꼼한 것이 아니다. 이 정도라면 이태리 명품 라벨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벽에 걸린 양복모양 가방이 재미있다.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기증된 양복과 셔츠로 만들어졌다는 이 가방 가격은 13만7천원, 가죽점퍼로 만든 가방과 가죽소파로 만든 가방이 각각 17만3천원, 8만3천원이다. 조금 비싼 감이 없지 않다. 그만큼 손작업이 많이 들어가는데다가 독특한 디자인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방이라는 가치가 있는 만큼 구매력 있는 30~40대 여성에게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상품이라고 한다.
발이 편안해 보이는 여성용 로퍼(굽 낮은 구두)도 눈에 들어온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볍고 편안했지만 아쉽게도 내게 맞는 크기가 없단다. 의류는 없느냐고 물으니 더 이상 의류는 팔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