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 가면을 쓴 하이드의 가면 벗기기

[서평]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록 2008.08.16 12:25수정 2008.08.1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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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한민국이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국제통화기금(IMF)을 이용해야 했던 우리는 그들이 구세주가 아니라 합법을 가장한 고리대금업자에 다르지 않다는 진실 여부를 꼼꼼하게 살필 여유가 없었다. 그저 당장 나라 경제가 파국으로 치달을까봐 장롱 속 깊이 넣어 두었던 아이 돌 반지며 패물을 아낌없이 꺼내들 정도로  한없이 순진했으니 말이다. 

 

그 당시 나도 아이 반지 한 돈과 18K 반지 두 개를 기증했다. 그때 우리는 IMF 총재가 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황제만큼 대단해 보여 정부는 어찌하든 환심을 사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문가들이야 그 세계은행이 바로 부자나라의 앞잡이들인 '악당 삼총사' WTO·FTA·IMF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거나 진실을 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겠지만 경제나 세계 경제 흐름에 무지한 나와 같은 이들은 피부에 부딪치는 현실이 되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으니 부끄럽기 이를 데 없다.

 

a 나쁜 사마리아인들

나쁜 사마리아인들 ⓒ 부키

▲ 나쁜 사마리아인들 ⓒ 부키

국방부의 불온서적으로 선정돼 화제가 된,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BAD SAMARITANS)>은 '나라가 부자가 되려면'이라는 프롤로그와 '세상은 나아질 수 있을까?'라는 에필로그인 가상 시나리오를 뺀 전 9장에서 세계화에 관한 신화와 진실, 자유무역, 외국인 투자, 민간기업과 공기업, 지적 소유권 문제, 문화에 대한 시각 등 다양한 측면으로 경제를 고찰하고 부자나라들이 심어준 그릇된 인식이나 열패감을 어떻게 극복하며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할 것인지를 경제학적 측면에서 고찰하여 보여주고 있다.

 

장하준 교수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IMF가 한국 경제를 어떻게 위기로 몰아갔는지 밝혀주는 부분은 경제문외한인 나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은 1997년 12월에 IMF와의 협정에 서명했을 때, 국내 총생산 대비 1% 수준으로 예산 흑자를 유지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외국 자본이 엄청나게 빠져나가면서 경제가 심각한 후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IMF는 한국 정부에 대해 예산 적자를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해야 했다. 한국은 그런 정책을 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한국은 부자 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국내 총생산 대비 정부 채무가 제일 낮은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는 한국이 적자 지출을 허용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경제는 당연히 폭락했다. 1998년 처음 몇 달 동안 하루에 100개 이상의 회사가 도산했고, 실업률은 거의 세 배가 되었다. 당시 한국 사람들은 IMF를 ‘I'M Fired(나는 해고되었다)’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렇듯 통제 불가능한 경제 폭락의 회오리가 계속 될 조짐이 보이자 비로소 IMF는 정책을 완화하여 한국 정부가 적자 예산을 운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그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0.8% 이내로 매우 작은 것이었다. 이보다 더 극단적인 사례로는 같은 해에 재정 위기를 맞은 인도네시아를 들 수 있다.

 

(중략)

 

만일 나쁜 사마리아인인 부자나라들이 이와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이들은 가난한 나라들에게 지시했던 일을 실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이들은 수요를 늘리기 위해 이자율을 낮추고, 정부의 적자 지출을 늘릴 것이다. 부자 나라의 재무 장관이라면 어느 누구도 경제 침체기에 이자율을 높인다든가, 예산 흑자를 운용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21세기 초에 미국 경제가 이른바 닷컴의 거품 경제 붕괴와 9·11 세계무역센터 폭파 사건의 여파로 휘청거리고 있을 때 ‘책임성 있는 경제 정책’을 편다던 조시 부시 대통령의 반 케인즈주의적 공화당 정부가 취한 해결책은(독자들도 짐작하겠지만) 재정 적자 지출과 유례없이 느슨한 통화정책이었다."

 

장하준 교수가 책을 쓴 이유는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그의 목적은 개발도상국이나 가난한 나라의 발전을 막아 영원한 경제 속국을 만들려는 부자나라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성토하거나 그들의 비리를 알리려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들이 숨긴 사실들을 바로 보는 것, 신자유주의 시장의 경제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공존하는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 그가 책을 쓴 이유다.

 

대부분의 부자나라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선을 가장해 사실을 은폐하고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확대해 귀에 들려주어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세뇌를 시키고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더 많은 이윤을 챙겨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함이다. 

 

돈이라는 것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생긴다고 한다. 부를 축적하면 할수록 더 커다란 욕망이 솟아올라 욕망의 노예로 살게 되는 부자들이야말로 영혼이 한없이 빈한한 자들이다. 어쨌거나 장하준 교수는 책의 말미에서 몇 가지의 대안을 제시해 주고 있다.

 

시장논리에 대응하고, 제조업을 튼튼하게 키우며, 부자나라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권하는 그런 눈앞의 사탕발림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자국의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산업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세계적인 경제학자가 내놓은 대안치고는 너무 소박하고 평범해 보일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가만히 돌이켜 보면 정말 필요한 부분, 핵심을 짚어 준 말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어느 나라에 살드, 궁극적으로 따져보자면 먹고 사는 것 이상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식량의 자급자족, 제조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먹을거리가 확보한 다음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도 결코 늦지 않는다. 올바른 일과 쉬운 일 중에서 쉬운 일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어느새 올바른 일을 행할 힘을 잃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지금 올바른 일을 선택해 실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바른 길을 알기 위해, 또 우리가 만나는 부자나라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정말 지킬 박사의 성품을 지닌 사람들인지, 지킬의 얼굴을 한 악마 하이드인지를 올바르게 분별하는 안목을 기르려면 경제와 세계의 흐름에 눈 감아서는 안된다. 그것이 바로 불온서적에 대한 호기심으로가 아니라, 전문가가 비전문가를 염두에 두고 쉽고 친절하게 풀어 쓴 이같은 서적들을 읽어야 하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 지음 / 이순희 옮김 / 부키 / 14,000원

2008.08.16 12:25ⓒ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 지음 / 이순희 옮김 / 부키 / 14,000원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부키, 2007


#나쁜 사마리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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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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