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라틴미술세계로 떠나는 여행

덕수궁미술관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 11월 9일까지 열어

등록 2008.08.20 09:59수정 2008.08.2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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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미술관 입구에 붙은 20세기 라틴아메리카거장전 현수막. 멕시코 '리베라' 81×60cm '피놀레 파는 여인' 1924(좌). 베네수엘라 '폴레오' 90×70cm '위원회' 1942(우). ⓒ 김형순


라틴아메리카 15개국 대표작가 80여 명이 참석하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展'이 덕수궁미술관에서 11월 9일까지 열린다. 미술 감상에 있어 유럽이나 영미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심미안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우리가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지 않고 언제 한 곳에서 이렇게 많은 명화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겠는가. 언어장벽 없이 감상할 수 있는 미술이기에 더욱 그렇다. 라틴아메리카 문화와 역사, 일상과 축제 등을 그림 속에서 사람과 풍경으로 만나보면 어떨까 싶다.


이번 전은 한국주재 라틴아메리카 14개국 대사의 제안과 적극적 후원으로 추진되었다는 점과 작품 선정에서 우리 측 미술관 관계자의 의견을 100% 받아들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라틴역사에서 1492년과 1810년은 중요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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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카를로스 오로스코 로메로' 캔버스에 유화 98×78cm '창가에서' 1950. 멕시코 '리베라' 캔버스에 유화 63×54cm '테완테펙의 목욕하는 사람' 1923(좌) ⓒ 김형순


라틴아메리카는 고대문명시절 잉카, 마야, 아스텍 같은 훌륭한 문명이 있었다. 그러나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에 도착한 이래 그런 문명은 초토화되었고 거의 300년간 식민통치를 받다가 1810년부터 나라별로 독립하기 시작한다.

식민시절 거의 300년간 사회구조는 유럽태생 백인, 식민지태생 백인(크리오요), 메스티소(에스파냐계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인)와 원주민(인디오), 아프리카 흑인노예 등 피라미드형으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1810년 이후 그런 구조가 많이 엷어지고 그런 과정에서 특이하게 혼합된 문화가 생긴다.

위에서 보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멕시코 화가 카를로스 오로스코 로메로의 '창가에서(1950)'는 마치 한 여인의 슬픈 표정을 통해서 라틴아메리카의 수난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아래 디에고 리베라의 자연과 대지의 생명력을 그린 인디오 여인(1923)의 목욕하는 모습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좀 난다.


1910년 멕시코혁명과 그 후 사회변혁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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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시케이로스' 캔버스에 유화 81×101cm '노동절(May Day)' 1952 ⓒ 김형순


멕시코의 경우 1910년에 혁명이 터져 봉건주의가 무너진다. 이에 영향을 받아 1920년부터 문맹인 민중을 계몽하고 사회를 변혁시키려는 멕시코벽화운동이 일어난다. 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물론 디에고 리베라다. 그의 '피놀레 파는 여인'(1924, 첫 번째 사진 왼쪽)은 박수근의 길에서 '노상하는 여인'과 너무 닮았다.


역시 벽화운동의 계승자인 멕시코 작가 시케이로스의 '노동절(1952)'은 박진감 넘치는 현장성과 역동성으로 넘친다. 우리의 60년 4월혁명이 연상된다.

붉은 깃발을 든 노동자의 분노에 찬 행진과 이를 막으려고 권총을 들이대는 군인의 과도한 진압은 긴장감에 휩싸이게 한다. 이 작품은 멕시코시티 국립배우협회 건물에 제작된 벽화를 위한 습작으로 정말 당시의 노동자들의 긴박한 처지를 생동감 넘치는 현장감으로 잘 표현하였다.   

300년 식민통치에서 엑서더스(출애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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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오스왈도 과야사민' 캔버스에 유화 99×67/91×135/98×67cm '엑서더스' 1953 ⓒ 김형순


이 작품은 에콰도르 작가인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엑서더스(탈출, 1953)'로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그 오리지널은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파라오 밑에서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키는 출애굽사건을 차용한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두건을 쓴 여자들만이 나온다는 것이 극적 효과를 준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몸짓이 이렇게 절박할 수 있을까. 이런 처연한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이런 염원을 어느 누구도 막을 순 없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인의 비극적 삶의 현황을 호소력 넘치는 서사적 구조로 승화시켰다.

고단한 일상과 힘겨운 역사를 이겨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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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오로스코' 캔버스에 유화 213×122cm '상처 입은 원주민' 1947. 스페인군의 공격으로 상처입고 고통스러워하는 인디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 김형순


라틴아메리카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300년의 식민시대 100년간 과도기를 통해 고단한 삶과 굴곡 많은 역사의 여정을 이겨왔다. 그들의 고통과 힘겨움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이런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태양처럼 식지 않는 열정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위 작품의 제목은 리베라와 함께 또 하나의 멕시코벽화운동의 거장인 오로스코의 '상처 입은 원주민(1947)'이다. 이를 보면 그들의 삶이 얼마나 처절하고 혹독했는가를 알 수 있다. 몸 어디 한 구석 성한 곳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그 우여곡절을 다 이겨냈다.

이 작품의 배경은 1520년 아스텍제국이 스페인 페르난도 코르테스와의 수개월간 격렬한 전투에서 온 것으로 원주민들이 당한 처절한 정신적 육체적 피폐함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이런 걸 몰랐다면 어떻게 라틴아메리카인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축제적 삶의 불꽃, 화려한 브라질 카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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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에밀리아노 디 카발칸티' 캔버스에 유화 71×87cm '카니발' 1924 ⓒ 김형순


하지만 이들은 이런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축제적 삶으로 바꾸는 끈까지 놓지는 않았다. 브라질 작가 카발칸티의 '카니발(1924)'는 바로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브라질의 대표적 카니발을 그린 것이다. 부활절 7주 전에 벌어지는 이 축제는 1723년부터 시작되었고 그 규모는 성대하다. 19세기에는 이탈리아까지 퍼져나갈 정도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이 축제가 더욱 현대화되고 세계화되어 브라질 리우카니발로 진척되면서 지구촌에서 가장 성대하고 화려한 축제가 된다.

이 축제는 모자라는 일손을 채우기 위해 서부아프리카에서 브라질로 강제로 끌려온 흑인노예의 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축제에 아프리카의 전통제례에서 보이는 춤과 음악과 장식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거기에 가톨릭의 종교의식이 혼합되면서 종교를 넘어서는 또 하나의 치유와 조화의 성격을 띠게 된다.

유럽, 혼혈과 원주민, 아프리카문화의 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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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파비아니' 캔버스에 유화 74×49cm '흑인누드'(좌). 브라질 '카발칸티' 캔버스에 유화 80×99cm '바이야의 흑인여인' 1956(우). 도미니카공화국 '레데스마' 캔버스에 유화 121×90cm '성모마리아' 1956(하) ⓒ 김형순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곳은 300년간의 식민시대 유럽태생 백인과 식민지태생 백인, 메스티소와 원주민 그리고 흑인노예계급 등이 피라미드처럼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1810년대부터 1820년대까지 과도기적 독립기를 맞으면서 브라질을 제외하고 미국보다는 50여 년 먼저 노예해방을 이룬다.

이런 오랜 유럽, 아프리카, 인디오 등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혼재현상은 그림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위 왼쪽 파비아니의 '흑인누드'와 오른쪽 카반칸티의 '흑인여인'을 보면 같은 흑인여인이면서도 왼쪽은 아프리카풍이고 오른쪽은 인디오풍 혹은 유럽풍이다.

오른쪽 아래 도미니카공화국의 레데스마가 그린 '성모마리아(1956)'는 흑인여자이다. 이런 특징은 여기선 흔히 보는 현상이다. 하여간 이 그림은 파울 클레의 추상화에서 보는 것 같은 그런 세련된 형상과 장식도 가미되어 더욱 돋보인다.

2차 대전 후 혼미 속에서도 세련된 현대미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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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엑토르 폴레오' 캔버스에 유화 41×33cm '쇠락(Decline)' 1949 ⓒ 김형순


이 작품은 베네수엘라의 작가 폴레오의 것이다. 폴레오 그림은 맨 위 첫 번째 사진의 오른쪽에도 보인다. 세 사람이 뭔가 모의를 하고 있는 모습의 '위원회'(1942), 이들은 당시 자신들의 나라가 독재주의로 기울자, 이를 미리 막아보려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자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국보급 작품이란다. 

다시 위 작품 '쇠락(1949)'을 보자. 폐망한 고대신의 이미지다. 인간의 허망한 욕망이 낳은 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후유증과 사회전반에 넘치는 침체된 분위기를 초현실주의적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이 정신적으로 황폐해질 때 파멸로 갈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 같다. 하여간 이런 상징과 암시를 깨진 헬멧과 가면으로 대치시킨 수작이다.

초상화의 대가, 보테로의 시인과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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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페르난도 보테로' 캔버스에 유화 247×197cm '브래지어 차는 여자' 1976. '페르난도 보테로' 114×96cm '시인' 1968(아래) ⓒ 김형순


이 작품은 요즘 신구상주의 스타작가로 부각되는 콜롬비아 보테로의 작품으로 뚱뚱한 사람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작가는 요즘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얼마 전에 청담동 오페라갤러리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보테로의 본령은 초상화다. 왜 뚱뚱한 여자들이 말라깽이가 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은근히 풍자한다. 그래서 관객의 마음을 편하고 푸근하고 유쾌하게 해준다. 르네상스시기의 프레스코 화에 관심을 보이면서 모나리자를 재해석하는 등 독자적 행보를 보인다. 

'시인(1968)'에서는 벨기에 화가 마그리트의 모자를 패러디한 것이다. 지식인층에 대한 풍자인가 옹호인가 다소 애매하다. 그는 정갈하게 꾸며진 아름다움을 비판하고 오히려 펑퍼진 몸의 편안함이 주는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관객이 맛보게 한다. '브래지어를 차는 여자(1976)' 등은 모성이나 가족애 등을 풍성한 육체에 담고 있다.

색채리듬과 공간구성 그리고 세련된 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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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지저스 라파엘 소토' 나무 위에 복합매체 203×152cm '회색의 가치' 1994. ⓒ 김형순


이제 끝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옵아트와 구성주의 기하하적 추상을 감상해보자. 위 베네수엘라 작가 소토의 '회색의 가치(1994)'는 옵아트라고 할 수 있는데 유럽이나 미국의 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우연히 관객이 입은 옷 무늬와 비슷해 우연의 일치였다.

회색의 가치를 재발견한다는 제목이 참 멋지다. 검은색과 흰색 사이에서 착란을 일으키게 하는 효과가 놀랍다. 투명한 합성수지를 사용하는 시네티즘(역동성, 움직임 등으로 새로운 조형을 창출하는 테크놀로지 미술)에도 도전하면서 시각언어의 다양한 조합에 따라 우리의 인식이 바뀔 수 있음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미술의 최고스타인 프리다 칼로는 지금 세계 순회전이라 섭외가 힘들어 백남준 작품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주최 측에서 몇 점만을 어렵게 유치했단다. 대표작은 아니지만 '미겔 리라의 초상' 등을 한쪽 코너에서 볼 수 있다.

최근 내방한 비바스 베네수엘라 국립미술관재단이사장은 과천현대미술관에서 한국작품을 보더니 라틴미술과 유사성이 많다며 반겼다고 한다. 부디 이번 전을 통해 세계미술계에 내놓을만한 우리만의 정체성과 창조성의 원류를 재발견하게 하는 계기가 되면 더 좋겠다.

덧붙이는 글 |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 공식홈페이지 http://www.laart.kr
덕수궁미술관 관람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관람료: 성인(덕수궁 입장료 포함) 1만원, 청소년 8000원, 초등학생 6000원 02)368-1414
그림해설시간: 10시, 11시, 12시30, 14시, 15시, 16시, 17시, 18시30 휴관일: 매주 월요일


덧붙이는 글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 공식홈페이지 http://www.laart.kr
덕수궁미술관 관람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관람료: 성인(덕수궁 입장료 포함) 1만원, 청소년 8000원, 초등학생 6000원 02)368-1414
그림해설시간: 10시, 11시, 12시30, 14시, 15시, 16시, 17시, 18시30 휴관일: 매주 월요일
#라틴아메리카거장전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 #오로스코 #시케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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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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