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휑한 농성장' 걱정은 그만, 맥주 한잔 그날까지!

[편지] 기륭전자 최은미씨가 연대하는 동지·시민·누리꾼들에게

등록 2008.08.20 10:34수정 2008.08.20 10:34
0
원고료로 응원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공장에서 쫓겨나 투쟁을 시작한 지 1092일, 김소연 분회장이 단식에 돌입한 지 70일째인 8월 19일, 사태 해결은 아직 요원합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함께 촛불을 들고, 동조 단식을 하는 동지·시민·누리꾼들을 보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조합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최은미(25)씨가 19일 그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오마이뉴스>로 보내와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19일 오전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앞에서 열린 전국금속노동조합의 '기륭자본 규탄 및 총력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한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이 '사람답게 살고싶다 비정규직 철폐하자'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김소연 분회장의 단식은 70일을 맞았다.
19일 오전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앞에서 열린 전국금속노동조합의 '기륭자본 규탄 및 총력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한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이 '사람답게 살고싶다 비정규직 철폐하자'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김소연 분회장의 단식은 70일을 맞았다.오마이뉴스 선대식
19일 오전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앞에서 열린 전국금속노동조합의 '기륭자본 규탄 및 총력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한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이 '사람답게 살고싶다 비정규직 철폐하자'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김소연 분회장의 단식은 70일을 맞았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안녕하세요? 저 기륭 은미예요.

 

제가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제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그 마음을 이렇게라도 전하고 싶어서예요. 항상 찾아와주시고 따뜻하게 대해 주신 점 너무 감사드려요.

 

사실 기륭투쟁의 1000일은 많이 외롭고 쓸쓸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조합원은 열 명 정도. 아침출근 투쟁은 조합원 외 지역 동지 한두 명 정도…. 낮에는 조합원 한명이 컨테이너를 혼자 지키고 밤에는 여성 두 명이 컨테이너에서 잠을 자고…. 일주일에 단 한번 연대의 힘을 받는 날에도 찾아와 집회에 참여해주는 대오는 80명 남짓이었습니다.

 

많은 시간을 끈질기게 투쟁했어도 회사에 강력한 힘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지 않고는 아무것도 모아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준비와 결의 끝에 소중한 목숨을 걸고 투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식투쟁을 하면서도 많이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죽어가는 동지를 보며 웃음마저 잃어버린 채 외로운 농성장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많은 시간들이 지나고 기륭투쟁이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각종 언론에 알려지면서 하나둘 씩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셔서 저희들의 손을 잡아 주시고 힘내라고 격려해주고 함께 동조단식도 해주시고 때로는 문화제 진행도 해주시고….

 

참 많이 고마웠습니다. 그런 연대의 힘으로 저희들을 다시 웃게 해주셨습니다. 분회장님과 흥희 언니를 병원으로 보내고 다시 농성장을 지키면서 한편으론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 목숨을 건 단식투쟁이 끝났으니 다시 예전처럼 휑한 농성장을 쓸쓸히 지켜야겠구나.' 그래서 분회장님께서도 단식농성을 쉽게 푸실 수 없었습니다.

 

많은 관심과 연대 속에 투쟁하는 건 짧은 순간이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만 무관심과 냉대 속으로 추락하는 건 아주 한순간의 일이니까요. 많은 투쟁사업장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걸 3년간 보아 와서 제 속에도 패배주의가 생겼나 봅니다. '어차피 안 될 거야' 하고 말이죠.

 

"생맥주 한잔 시원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지난 3월 만났던, 금속노조 기륭분회조합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최은미 조합원(25)의 모습(자료사진).
지난 3월 만났던, 금속노조 기륭분회조합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최은미 조합원(25)의 모습(자료사진).남소연
지난 3월 만났던, 금속노조 기륭분회조합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최은미 조합원(25)의 모습(자료사진). ⓒ 남소연

그런데 두 분이 병원으로 간 이후에도 계속해서 동조단식을 진행해주시고 옥상 위 천막을 사수해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이제 우리가 김소연 분회장의 빈자리를 채우자는 내용의). 씨니님이 쓰신 제안 글을 보고 너무 감동받았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저렇게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이해하고 계시구나! 우리들의 현실과 고민들에 대해서 이렇게 따뜻하게 이해해주시니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동지들이 많았습니다. 함께 비정규 투쟁 하고 있는 동지들과 지역 동지들. 함께 릴레이동조단식을 해주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영화와 책', 82cook, 한기연 분들.

 

그리고 최근 저녁마다 촛불을 함께 밝혀주신 많은 시민 여러분과 누리꾼 여러분들.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우리 투쟁이 빨리 승리해서 보답하고 싶습니다. 

 

다음에 기회 되면 꼭 생맥주 한잔 시원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2008.08.20 10:34ⓒ 2008 OhmyNews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이 기자의 최신기사 'F 학점' 받은 국가교육위원회

AD

AD

AD

인기기사

  1. 1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2. 2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3. 3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4. 4 윤석열·오세훈·홍준표·이언주... '명태균 명단' 27명 나왔다 윤석열·오세훈·홍준표·이언주... '명태균 명단' 27명 나왔다
  5. 5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