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민영화' 첫발 뗀 정부... '물값 폭등' 현실화?

"4대분야 민영화 없다" 대통령 발언 두 달만에 뒤집혀

등록 2008.08.24 17:48수정 2008.08.2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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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3일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공공기관 구조조정에 일환인 공기업 민영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정부는 의료부문, 고속도로, 상수도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기관을 민영화할 경우 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이 있을 것으로 판단, 민영화 대상에서 배제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안들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지난 5월 23일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공공기관 구조조정에 일환인 공기업 민영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정부는 의료부문, 고속도로, 상수도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기관을 민영화할 경우 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이 있을 것으로 판단, 민영화 대상에서 배제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안들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청와대

이명박 정부가 상수도 경영을 민간기업에 맡기는 내용의 법안을 24일 예고하며 사실상 '물 민영화'의 첫 발을 뗐다.

정부가 그 동안 "전기·가스·수도·건강보험은 민영화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천명한 상황에서 이 같은 법안을 추진할 경우 정부의 신뢰성이 또다시 추락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환경부가 '상하수도 서비스 개선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이하 상하수도법)을 9월중 입법예고할 것"이라며 "이 같은 방안이 지난 14일 한나라당 제5정책조정위원회(위원장 안홍준 의원)에도 보고됐다"고 밝혔다. 환경부 상하수도정책관실에 따르면, 상하수도법은 10~11월 법제처 심사를 거친 뒤 12월경 국회에 제출된다.

환경부, '민간기업에 경영 위탁' 상하수도법 9월 입법예고

상하수도법은 ▲ 164개 지자체로 분산돼 관리되고 있는 상하수도를 30개 이내로 묶어서 광역화하고 ▲ 서비스 개선을 위해서 민간기업에 경영을 맡기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5월 민간기업이 상수도 관리 지자체가 출자하는 법인의 지분을 50% 이상 소유할 수 있는 내용의 '물산업지원법'을 추진하려고 했다가 물 민영화 논란이 일자 6월 2일 연기한 바 있는데, '민간기업의 지분 출자' 조항만을 걸러내고 법안의 이름을 바꿔 사업을 재추진하기로 한 셈이다.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당정협의회에서 논의할 정도의 사안은 아니다"(임태희 정책위의장)며 정부 입법안을 반대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민간기업의 소유 지분 참여를 허용하지 않기로 한 만큼 5~6월처럼 거센 반발여론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그러나 여당도 이번 정책이 물값 폭등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씻어낼 수 있을 지 선뜻 자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차명진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이번 조치로) 물값 인상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가 이를 취소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환경부는 여당에 보고한 자료를 통해 "수도사업 종사자의 잦은 보직이동과 비전문인력의 배치로 전문성이 떨어지고, 지자체가 사업운영과 감독을 겸함으로써 책임성에 한계가 있다"며 "각 지자체가 지역여건에 맞게 직영·위탁·공사화 등의 전문 경영기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수자원이 풍부한 기초자치단체와 그렇지 못한 이웃 기초단체를 30개 이내로 광역화해 상수도 관리를 통폐합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상수도 설비를 잘 갖춘 지자체와 그렇지 못한 지자체를 한데 묶으면 효율성이 그만큼 제고돼 중복투자의 부담도 한층 덜 수 있다는 계산이다.

환경부는 "민간기업이 수도시설을 설치·운영하되 사업자 선정과 요금 결정은 지자체가 한다"며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강조하고 있다. 유료도로와 철도시설을 각각 관리하는 도로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의 예처럼 상수도 관리 업무가 민간기업에 아웃소싱된다는 얘기다. 별도의 기구가 상수도 서비스를 평가해 요금 수준을 규제하는 영국과 이탈리아의 예를 참조해 가칭 중앙수도사업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그러나 민간기업의 경영 참여가 물값 인상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의 장담이 지켜질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민간기업의 상수도 운영 허용한 이탈리아·남아공 등 '물 빈곤층' 양산

민간기업의 상수도 운영을 허용한 뒤 수도요금이 4배(이탈리아), 6배(남아공)씩 뛰어올라 '물 빈곤층'을 대규모로 양산한 나라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영을 맡을 민간회사는 수도요금의 일정 부분을 위탁 수수료로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윤 극대화를 원하는 민간회사가 수수료에 만족하지 않고 수도요금 인상을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정회사의 소유주가 전문경영인에게 회사 경영을 맡기더라도 전문경영인이 비용 증가 등을 이유로 상품가격 인상을 제안할 경우 이를 무시하기 힘든 것과 같다. 지자체가 민간기업과의 상수도 운영 계약을 파기하고 업무를 다시 떠맡는 것도 현실성 없는 얘기다.

80%를 상회하는 상하수도 보급률을 들어 "우리나라를 남미와 같이 '실패한 개도국들'과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환경부의 논리도 영국의 사례 앞에서는 설득력을 잃는다.

1973년 10개 지역의 물관리공사(Regional Water Authority)가 세워진 뒤 1989년 대처 정부가 세계 최초로 상하수도 100% 민영화를 이뤄낸 영국은 민영화 이전에 비해 물값이 실질가치 기준으로 약 42% 상승했다고 한다.

유럽연합(EU)의 다른 회원국들과 비교하면, 민영화 이전의 영국 수도요금이 독일의 절반 수준에 그쳤지만, 지금은 EU 회원국중 최상위권 수준이 됐다는 얘기다.

작년 11월 '영국 물 산업의 문제'(The Problems of Water in England and Wales)라는 보고서를 낸 영국 그리니치대학 국제공공서비스조사연구소(PSIRU) 스테픈 토마스 교수는 "투자자본에 대한 이자 등의 이유로 가격이 오르면서 최저소득층 가정의 3분의 1이 소득의 3% 이상을 물 값으로 내는 '물빈곤계층'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물 민영화가 가속페달을 밟을 경우 돈을 못 내서 단수가 되고 국민의 건강과 생존권이 위협받는 '극단적인 시나리오'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가스·전기·물·의료보험에 대해서는 민영화 계획이 없다"(6월19일 기자회견)고 선언한 마당에 정부가 물 민영화의 공포를 떠올리는 법안을 다시 추진함으로써 정부 정책의 신뢰성이 더욱 추락한 것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4대 분야 민영화 포기선언 2달 만에 상수도사업을 민간에게 위탁하겠다는 정부의 행태에 어이가 없을 뿐"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출범 6개월은 전 종목 예선 탈락감이지만 '말 바꾸기'만큼은 금메달감이라는 것이 연일 입증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상수도 민영화? 풍문이 사실로 되는가
"경영만 민간위탁해도 '민영화'... 수도요금 상승할 수밖에 없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상수도 사업을 민간에 위탁하는 것을 골자로 한 '수도 산업 구조개편에 대한 법률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 알려지면서 '상수도 민영화' 논란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물 사유화 저지·사회 공공성 강화 공공행동'의 한지원 사무국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법안에 대해 "상수도 민영화 과정 중 하나"라고 규정했다.

한 사무국장은 "아르헨티나 등의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소유는 정부가 하고, 경영은 민간이 하는 방식의 민영화는 있었다"며 "이러한 민영화 방식 역시 수도요금 상승 등의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또 "지난 2001년 9월 수도법 개정으로 상수도 사업을 한국수자원공사에 위탁한 이후, 코오롱 등 기업에 민간위탁하는 식으로 민간 위탁 흐름이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사무국장은 상수도 사업의 '경영권'만을 민간 위탁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관리권, 운영권 등을 민간 자본에 넘길 경우, 지자체와 투자비용 등을 위한 운영 대가 계약을 맺게 되는데 이 경우 계약 초기 3~4년은 낮은 수도요금을 고수하다가 이후 수도요금을 올려 결과적으로 운영 기업이 최종이익을 볼 수 있도록 계약을 한다"며 "지난 2006년 한국수자원공사에 상수도 사업을 민간위탁한 논산의 경우 현재 이러한 '운영 대가 계약'으로 인해 소송위기 직전까지 갈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광역화와 민간위탁 경영을 통해 '유수율(상수도 사업자가 만들어 내보낸 수돗물 가운데 요금이 걷힌 물의 양)'의 상승을 꾀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인구분산지역의 경우 유수율은 높아질지 모르지만 상수도 보급률은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이야기한 것과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반박했다.

누리꾼들, "수도 민간위탁? 눈 가리고 아웅이다"

대부분의 누리꾼들도 이번 수도 사업 구조개편안을 '상수도 민영화'라고 규정했다. 누리꾼들은 수도 사업 구조개편안과 관련한 뉴스에 수백여 개의 댓글을 달아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누리꾼 '바람돌'(오마이뉴스)은 "공공성이 유지되어야 할 시설들을 민영화해서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려는구나"라며 "지금 너희가 아무리 나라를 거덜 내도 국민들이 기필코 살아남아서 역사의 심판을 내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누리꾼 '초헌'(다음)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 누구 좋은 일 시킬려고 수도 민간위탁이니 하는 말장난을 하는가"라며 비판했고, 누리꾼 'inhok'(네이버)은 "풍문이 사실로 되는가"라며 "수도 민영화 안 하겠다고 하던 때가 언제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누리꾼 'mchos703'(네이버)은 "관리 감독을 제대로 못하는 것을 민영화로 때우려 하다니 공무원들 무능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며 "그런 식으로 하려면 모든 공무원과 정부부처를 민영화해라"고 주장했다.

#상수도 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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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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