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짜리 반지하? 좋은 방은 1억!

서울 올라온 부산 처자, 파란만장 '방 구하기' 대작전

등록 2008.08.26 16:18수정 2008.08.26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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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렵게 구한 내 방이다. 옥탑이긴 하지만 원룸에 비해 방도 넓고 깨끗하다. 공간박스와 기품있는 중고 화장대도 구입했다.
어렵게 구한 내 방이다. 옥탑이긴 하지만 원룸에 비해 방도 넓고 깨끗하다. 공간박스와 기품있는 중고 화장대도 구입했다. 이유하

나는 문예창작과 출신이다. 대학시절 '철 모르게' 글쓰기를 지망했다. 문화에 관심이 많았지만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된 탓에, 무조건 'in(인) 서울'을 지향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 부산의 방송국에서 방송작가를 하기도 했지만 마음은 이미 서울에 있었다.


집안 식구들의 온갖 핍박과 반대에도 두 귀를 막아버리고 지난 4월에 달랑 커다란 박스 하나를 부산에서 서울로 부쳤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일이었다.

당장 서울로 올라오긴 했지만, 변변한 직업도 집도 없었다. 집을 보러 다니긴 해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결국 엄마는 나에게 설득당해서 '나중에 돌려주는 조건으로' 직업이 생기면 전세를 구해준다고 했다. 우리 집은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고, 엄마도 서울 물가를 잘 몰랐다. 엄마나 나나 모두 한 3000만원 정도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다. 그 때부터 직업도 없으면서 뻔뻔하게 방을 보러 다녔다.

반지하 방충망을 뜯고 들어온 낯선 남자

"여자 혼자 방 보러다니면 큰일 난디. 꼭 친구랑 같이 가야 하고, 햇볕은 잘 들어오는지, 물은 잘 나오는지, 어디 습진 곳은 없는지 꼼꼼히 따져봐라 알겠나?"

방을 구한다고 하니 서울에 먼저 정착한 과 선배와 친구들이 발벗고 나서서 이것저것을 알려주었다. 같은 과 1년 선배였던 K는 나보다 1년 먼저 서울에 자리 잡았다.


친구랑 방을 보러 갔는데 복덕방 아저씨가 자꾸만 산으로 올라가더란다.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말도 못하고 쫓아가는데 도착한 그 곳은 진정한 귀곡산장! 지금 당장 무너진다고 해도, 절대 이상하지 않은 그런 집이었다. K는 같이 간 친구랑 그 집 앞에 서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그 뒤 K는 어느 정도 맘에 드는 '반지하방'를 구했는데, 몇달 전 낯선 남자가 새벽에 방충망을 뜯고 들어오는 사건이 일어났다. 다행히 바로 112에 신고해 별 일 없이 남자는 경찰에게 인계되었고 사건은 마무리 되었지만, 그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론 K는 며칠을 잠 못 이뤘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방을 구해야만 했다.


오늘 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흉흉한 세상. K는 무작정 싸다고 덥석 계약하지는 말라고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이말 저말 듣고 보니 두려워졌다. 하지만 두려움은 둘째 치고 하루 종일 방을 보러 다니다 보면 정신이 피폐해진다. 내 삶과 현실을 정확하게 마주하게 되는 거다.

"진짜 좋은 방 나와있어, 1억"

꼴에 보는 눈이 있어서 처음엔 나도 홍대나 신촌 근처에서 살고 싶었다. 매일 가는 행동반경도 그 즈음이고 해서 7월 초 방을 보러 다녔는데, 기본적으로 요새는 서울 전체에 전세가 잘 없다고 했다. 특히 저렴한 원룸 전세는 더더욱 없었다.  

"저기요. 지금 나와 있는 원룸 전세 있나요?"
"원룸 전세요? 얼마 정도로 생각하세요?"
"그게… 한 5천만 원 이하로… 좀 안 될까요?"

얼마를 예상하냐고 물어볼 때마다 오금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5000만 원은 땅을 파도 없었지만, 소심하게 말도 못하고 5000만원 이하의 최대한 싼 방을 보여 달라고 했다. 

"음…. 5000만원은 지금 나온 방이 없고, 방 두 개짜리 좋은 거 나왔는데 한 번 보러 갈래요? 진짜 좋아. 넓고."
"네? 어딘데요?"
"음. 저기 신촌 뒷편인데, 참 좋아. 요즘 그런 방이 없지."
"얼만…데요?"
"1억."

어머나! 에구머니나! 맙소사! 1억이라니. 1억이면 당연히 방이 좋겠지! 나는 속으로 백만번 아저씨를 욕했다.

돌아다녀보니 신촌·홍대 쪽은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올라서 찔러볼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근처 아현동도 싸다는 건 다 옛말이었다. 뉴타운으로 지정된 이후, 아현동은 거래되는 매물이 거의 없었고 가격도 비쌌다. 가장 살고 싶었던 대학로로 발길을 돌렸다.

대학로 뒤편에는 원룸이 많았다. 공인중개소를 돌아다녀보니, 5000만원짜리 반지하방이 2~3개 정도 나와 있었다. 하지만 돈에 비해서 깨끗한 것도 아니었다. 그 돈을 주고 거기에서 산다니 도저히 내 맘에 차질 않았다.

'문화적 중심지'에서 살고싶은 욕심을 접고, 홍제동·뚝섬·방화동 등등 그나마 싸고 괜찮다는 지역을 돌아다녔지만, 내 돈으로 계약할 수 있는 방은 정말로 후줄근했다.

약속까지 정했는데 눈앞에서 방 놓쳤네

 옥상에서 본 풍경. 비슷하게 생긴 집들이 빼곡하다. 저 많은 옥탑에서도 다들 열심히 살고 있겠지?
옥상에서 본 풍경. 비슷하게 생긴 집들이 빼곡하다. 저 많은 옥탑에서도 다들 열심히 살고 있겠지?이유하

거기에 부동산 중개비는 보통 20만~30만원 정도다. 부동산 중개인이 알아서 다 해주기 때문에 안전하고 편하긴 하지만, 돌아다니다 보니 그 돈이 너무 아까워졌다. 노선을 살짝 변경해서 직접 인터넷으로 방을 구하러 다니기로 했다.

중개인이 끼지 않으면 사기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집을 계약하기 전 등기부등본을 떼서, 계약하는 주인과 실제 주인이 맞는지 비교해보고, 저당잡힌 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등기부등본은 주소만 알면 인터넷 대법원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가 대표적인 직거래 사이트인데, 이곳에는 하루에도 방이 수백 개씩 올라온다. 수많은 방 중에서 잘 살펴보면 괜찮은 방이 한두 개씩은 있기 마련! 좋은 방은 중개소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나가기 때문에 가끔 직거래로 올라 오는가 보다.

하지만 사람 맘은 다 똑같은 법일까? 괜찮은 방이 떴다 하면 정말 사람들이 '새까맣게' 모여든다. 순식간에 리플이 달리고, 며칠 안에 집이 나가버린다.

실제로 신촌에 3500만원짜리 반지하방(신촌에서 최고의 가격이다!)이 있다고 해서 약속을 정하고 갔는데, 그 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벌써 방이 나가버린 경우도 있었다. 불과 1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얼마나 괜찮은 방이었기에….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일을 겪은 후로 이를 악 깨물었다.

논현동에 투룸짜리 반지하방을 보증금 1000만원에 월 55만원을 주고 구한 친구는(논현동에서 이 정도 가격의 투룸은 잘 없다. 아무리 반지하라도) 리모델링이 채 끝나지도 않은 방을 계약했다. 

전세 2500만원에 구한 옥탑방

그러다가 지금 사는 이 방이 매물로 올라왔다. 인터넷에 올라온 지 10분밖에 되지 않는 따끈따끈한 물건이었다. 나는 당장 전화를 하고 제일 처음으로 방을 보러가기로 했다.

엄청난 폭우를 동반한 태풍 '갈매기'가 오던 날인 7월 19일 방을 보러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서 오돌오돌 떨면서도 '꼭 좋은 방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방을 보곤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했다. 주저하다간 좋은 기회를 모두 놓쳐버린다는 '인생의 진리'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노량진수산시장 건너편 주택가에 있고, 옥탑방인데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살짝 멀었다. 하지만 모든 걸 뛰어넘는 가격, 전세 2500만원인데다 빌라 4층에 붙어있는 옥탑이라 위험하지도 않고, 깨끗했다. 딱 마음에 들었다. 그날 밤 비록 전세지만 내 집이 생겼다는 생각에 잠을 못 이뤘다. 서울에 올라온 지 4개월만의 일이었다.

사실 서울에 방은 많다. 전세가 잘 없어서 그렇지 보통 시세로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 원 정도의 방은 수두룩하다. 그 아래 위로도 방을 구할 수 있는데, 비싼 경우 월세가 한 달에 65만원에서 70만원에 이르기도 한다. 월세 감당이 싫어서 좀 욕심을 부렸다. 그 돈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다는 말인가?

나는 지금 집에 만족한다.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뜨신 밥' 먹으면서 이렇게 저렇게 살 수도 있겠지만, 서울에 와서 혼자 '쌩쇼'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일 뿐, 갈 길이 멀다. 신문을 보니 가진 자들에게 유리하도록 부동산법이 개편된다고 했다. 갈수록 소시민들은 방 구하기가 힘들어 질 것이고, 그럼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반지하도 아니고 정말로 컴컴한 지하에서 살게 될까봐 두렵다.

이런 저런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답답해진다. 하지만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내 손에 들어오는 만큼만 만족하며 사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마음 먹으니 내 방이 더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것 같다.
#서울 집값 #전세방 #옥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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