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수 대법관 후보자, <조선> 기고문 기억하십니까

2003년 글에서 대법관 임명기준으로 인권의식보다 업무처리능력 꼽아

등록 2008.08.26 15:45수정 2008.08.2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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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수 서울대 법대 교수가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라는 흐름속에서 학계출신 첫 대법관 탄생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양창수 대법관 후보자가 지난 2003년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 운동을 벌였을 때 이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언론칼럼을 통해 밝힌 바 있었다.

 

양 후보자는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대법관 임명기준은 시민사회단체들이 말하는 것보다는 업무처리능력이 우선되어야 하고, 또 시민사회단체들이 대법관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추천하는 것도 문제라고 비판하였다.

 

곧 대법관 인사청문회가 열릴 예정인데, 양 후보자가 이런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지 따져묻지 않을 수 없다.

 

양창수 대법관 후보자는 2003년 8월 6일자 조선일보에 "대법관 후보 공개추천 재고해야"라는 제목으로 한 편의 글을 기고했다. 양 후보자가 칼럼을 쓴 시기는 참여연대 등이 대법관 후보자를 공개추천한 직후였는데, 8월 4일 조선일보가 "너도 나도 대법관 추천하나"는 사설로 시민단체의 대법관 추천운동을 맹비난한 직후, 양 후보자는 그 사설과 거의 동일한 글을 기고하였다.

 

당시는 대법관 임명을 비롯하여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분출하고, 대법관 구성의 변화를 촉구하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던 때이다. 그 해 6월경부터 참여연대와 민변, 환경운동연합 등은 ‘바람직한 대법관 및 헌법재판관 추천운동’을 벌였다. 대법관이라는 자리는 판사들의 최종 승진코스가 아니며 인권과 국민의 기본권 보호,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의 측면에서 소신있는 사람이 임명되어야 하고, 법원내부 출신에서 벗어나 법원 안팎의 다양한 인물을 찾아야 하고, 50대 중반의 남성으로만 가득찬 대법관들이 연령과 성별면에서도 다양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런 사회적 요구에 따라 대법관후보자제청자문위원회가 설치되기는 했지만, 제청자문위원회조차 의례적인 절차로 전락해버려 일부 제청자문위원들이 위원직을 사퇴하고 다수의 법관들이 대법원을 중심으로 한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등 '사법파동'이 벌어졌다.

 

양 후보자는 이 칼럼에서 대법관의 가장 중요한 임명기준은 많은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국민의 인권과 기본권 보호 및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에 대한 의지, 입법부와 행정부에 대한 균형과 견제 능력과 사법부의 독립성 수호 의지, 사회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한 여성 대법관 임명 필요 등을 대법관 임명제청의 기준으로 제시했던 시민단체들의 주장을 반대하고, 기존 법원장급 이상 고위 법관을 임명하던 기준을 그대로 고수하겠다는 것이었다. 최고 사법기관에서 일하는 대법관의 자질이 수많은 판결들이 밀리지 않게 빨리빨리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이라고 하니, 이는 대법원과 대법관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말이다.

 

양 후보자는 또 이 칼럼에서 시민단체 등이 대법관 후보자를 공개추천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 이유로는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대법원장의 판단을 흐트릴 수 있으며, 특정 집단이 그 입장과 이익에 따른 왜곡없이 믿을 수 있는 자료와 정보에 입각하여 사람을 추천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기때문이라 했다.

 

자신들이 바라보는 기준에 따라 대법관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은 국민 모두의 기본적 의사표현의 자유이자 권리이다. 공개추천했다고 해서 대법원장의 판단이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불법적인 수단과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지를 확인하거나 여론의 평가를 받기위해 추천된 사람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조차 잘못이라고 한다면 이는 의사표현의 자유와 권리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아니다. 대법관 후보자를 어떤 집단에서 추천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차후 그 대법관의 판결을 객관적인 법에 따른 판결로 누가 승복하겠는가하는 양 후보자의 공개추천 반대 이유도 명분이 없다.

 

지난 2003년을 전후로 대법원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는 높아졌으며 이에 따라 시민단체들은 대법관구성의 다양화를 촉구하고 다양한 추천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그리고 대법원은 사회적 변화요구를 반영해 그 구성과 역할이 조금씩 개선되었다.

 

양 후보자가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2003년 조선일보 칼럼을 통해 밝혔던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지 답해야 한다. 대법관 후보자로서 아직도 업무처리 능력이 가장 중요한 대법관 임명기준이라 보는지, 시민들의 권리인 동시에 여론수렴과 사회적 평가의 기회를 만드는 대법관 후보자 공개추천도 여전히 반대하는지 답해야 할 것이다.

 

참여연대는 조만간 이 문제를 비롯하여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양 후보자가 답변해야 할 사항들을 담은 공개질의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양창수 교수 2003.8.6 조선일보 기고문 - "대법관 후보 공개추천 재고해야"

최근 대법관의 임명을 둘러싸고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사회단체에서는 오는 9월에 임명될 대법관 후보로 특정인을 공개추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법원의 역할과 구성에 대하여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좋은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 그 중에는 대법관 자리를 법관 기수별 승진의 최종단계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바람직한 주장도 있다. 그런데 그 논의의 내용을 보면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다.

우선 대법원이 어떤 사람으로 구성되어야 하는가는 대법원이 하는 일,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데서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법원은 일반의 민사·형사·행정사건에서 최종심으로 위치한다. 국민들은 자신이 당사자가 된 사건이라면 당연히 사법부의 정점에 있는 대법원에까지 가서 재판을 받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법관들은 하급법원에서부터 홍수처럼 밀려들어 오는 상고사건으로 그야말로 쉴 틈이 없다. 헌법 재판을 주로 하는 미국의 대법원에서 대법관 전원이 1년 내내 판결하는 사건수는 모두 합해서 200건도 안 된다. 우리는 한 사람의 대법관이 한 달에 200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하는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상고사건의 제한이나 대법관수의 증원 등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견은 그렇게 열심히 주장되었음에도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밀려 거의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러니 대법원이 지금과 같은 직무를 처리하도록 되어 있는 한에서는 대법관도 재판업무를 적정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장 중요한 임명기준의 하나로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만일 다른 기준을 앞세우려면, 대법원에 계류된 사건이 처리될 때까지 4~5년쯤은 예사로 기다려야 하는 사태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또 대법관 후보로 특정인을 공개적으로 거명하여 추천하는 것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나라의 헌법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이 제청해서 국회의 동의를 거친 다음,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관 제청권을 대법원장에게 준 것은 대법관 후보자의 물색에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가장 적절한 지위에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대법원장은 대법관을 제청하기 전에 임명요건을 충족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의견을 들어야 한다. 이번에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에서 법에 관련된 직무를 대표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를 구성,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에 필수적으로 참여하되 그 내용을 엄격하게 비밀로 하자는 제안을 한 것도 종전에 행하여져 왔던 그 의견수렴과정을 제도화하여 한층 객관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대법관 후보로 특정인을 공개적으로 거명하는 것은 그 의견수렴 과정을 왜곡할 우려가 적지 않다.

우리 사회는 입장과 이익을 달리하는 수많은 집단이 서로 대립하는 다원화 사회가 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추구해 온 민주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어느 집단이 그 입장과 이익에 따른 왜곡 없이 진정 믿을 수 있는 자료와 정보에 입각하여 사람을 추천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또 한 집단이 자신의 이익과 목표에 부합하는 인물을 공개적으로 추천하여 그가 대법관이 된 경우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추천 집단과 생각을 달리하는 집단은 그 대법관이 한 재판을 객관적인 법에 따른 것이라고 믿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우려 때문에 대법관 피제청자에 대하여 다름 아닌 국민의 대표인 국회로부터 동의를 얻도록 하고, 또 그 과정에서 인사청문회를 열도록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법에 대한 믿음, 그리고 공정한 법 운용에 대한 신뢰가 깨진다면 법원은 그 존립의 근거를 잃게 될 것이다.

2008.08.26 15:45ⓒ 2008 OhmyNews
#양창수 #대법관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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