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먹는 토란탕, 그 아릿한 맛이 기대된다

사람 키만큼 자란, 우리 텃밭에 있는 토란 수확을 앞두고

등록 2008.09.03 11:35수정 2008.09.0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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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봄에 심은 토란이 무성하게 자랐다. 추석을 앞두고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이른 봄에 심은 토란이 무성하게 자랐다. 추석을 앞두고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전갑남

새벽 5시 반.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어댄다. 밖은 아직 깜깜하다. 그러고 보니 해가 많이 짧아진 모양이다. 낮이 길 때는 5시 조금 넘으면 밭에 나가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6시가 다 되어야 동이 튼다. 모르는 새 세월은 훌쩍 지나고 있는 것이다.


이른 아침, 밭에 나왔다. 맑은 공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선선해서 좋다. 감나무 가지 사이로 빠끔히 고개를 내민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해거름부터 시작한 풀벌레들의 합창이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다. 청아한 가을소리가 참 좋다. 그나저나 녀석들은 지치지도 않고, 목이 잠기지도 않나?

우리 텃밭에서 뭐부터 수확하지?

아내가 코를 훌쩍인다. 환절기를 타는 모양이다. 이번 가을엔 그냥 넘어가나 싶었는데 몸 상태가 영 말이 아닌 것 같다.

아내가 걱정 섞인 말을 늘어놓는다.

"여보, 어쩌죠? 해는 짧고, 할 일은 많은데 몸은 안 따라 주고."
"밭작물 거두는 것 때문에? 주말에 조금씩 시간을 내야지. 급하면 식구들 부르고!"


우리 텃밭에 가을이 왔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들고, 해가 짧아지자 작물들은 씨앗을 맺고, 알맹이를 영그는데 한창이다. 갖은 비바람에 시달리면서도 넉넉함을 안겨주는 자연에 고마움이 느껴진다.

이제 작물을 거둘 때가 다가오고 있다. 봄부터 부산을 떨며 가꾼 것들이 가을과 함께 결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나 혼자 애쓰는 모습이 안 되어 보였는지 미리 걱정부터 하는 모양이다.


아침을 먹으면서 아내가 내게 묻는다.

"우리 올핸 뭐부터 거두죠? 고구마가 첫 타자인가?"
"고구마는 아직 멀었지! 토란부터 거둬야 될 걸."
"아! 추석 때 토란탕 끓여야지."

 우리 토란밭이다. 한 되 남짓 심은 토란이 이렇게 자랐다.
우리 토란밭이다. 한 되 남짓 심은 토란이 이렇게 자랐다.전갑남

토란을 캘 때가 되었다. 가을이 오자 우리 텃밭에는 토란뿐만 아니라 거둘 게 참 많다. 붉어진 고추를 따고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고구마, 땅콩도 수확하고 메주콩, 서리태, 팥, 들깨도 털어야한다. 애써 가꾼 땀의 결실이 보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한 열흘 뒤면 토란을 거둘 수 있다

우리 동네에서 토란을 심는 집은 거의 없다. 아마 토란을 즐겨먹지 않은 것 같다. 음식도 지역에 따라 좋아하는 게 따로 있는 모양이다. 예전 내가 살던 전라도에서는 토란을 집집마다 심었다. 토란줄기는 말려서 겨울철 묵은 나물로 무치거나 육개장, 개장국을 끓일 때 요긴하게 썼다. 또 알토란은 들깨를 갈아 토란국을 만들어먹고, 추석 차례상에는 탕국 재료로 쓰였다.

 토란이 키도 크고, 밑동도 통통해졌다. 토란은 알뿌리는 알뿌리대로, 줄기는 줄기대로 요긴하게 쓰인다.
토란이 키도 크고, 밑동도 통통해졌다. 토란은 알뿌리는 알뿌리대로, 줄기는 줄기대로 요긴하게 쓰인다.전갑남
토란은 재배가 간단하다. 이른 봄 적당한 간격으로 씨알을 땅 속에 묻어두면 별 신경 쓰지 않아도 자란다. 비교적 축축하고 그늘진 땅이 알맞다. 밑거름으로는 잘 썩은 두엄을 깔아두면 좋다.

토란은 싹 트는 게 더디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다 알뿌리가 혹시 썩은 게 아닐까 걱정할 때쯤, 반갑게 고개를 내민다. 어린 싹은 시나브로 자라다 장마철에는 기세 좋게 자란다. 그러다 거둘 때가 되면 어른 키만큼 커있다.

토란을 가꾸는 데는 관리가 크게 필요하지 않다. 싹이 튼 뒤 한두 차례 풀만 잡아주면 된다. 키가 훌쩍 자라 무성하면 풀을 이겨먹는다. 병충해로 망가지는 일이 없어 약을 치지 않아도 된다. 토란은 그야말로 무공해작물인 셈이다.

한 되 남짓 심은 토란이 텃밭 한 모퉁이를 풍요롭게 한다. 우리가 가꾼 토란도 키가 엄청 컸다. 밑동도 팔뚝만하게 굵어졌다. 이파리도 널찍하다. 비 오는 날 잎을 받쳐 들면 비를 가릴 것 같다. 토란은 천남생과로 꽃이 핀다고 하는데, 나는 여태껏 토란꽃은 구경하지 못하였다.

귀하고 귀한 대접을 받는 토란

서늘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무거운 토란잎이 일렁거린다. 간밤에 내린 이슬로 옴팍한 잎자루에 물방울이 맺혔다. 큰 잎은 큰 잎대로, 작은 잎은 작은 잎대로 저마다 안고 있는 물 알갱이가 아침햇살에 영롱하게 빛난다.

 토란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아침햇살에 영롱하게 빛난다.
토란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아침햇살에 영롱하게 빛난다.전갑남

두 손으로 토란잎을 붙들자 물방울이 수은 알갱이처럼 모였다 흩어졌다 한다. 작은 구슬이 수없이 만들어진다. 나는 이른 아침 토란잎 위에서 구슬치기를 한다. 이리저리 굴리다 또르르 밑으로 떨어지면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다. 토란은 물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잎에서는 한 방울도 흡수하지 않는다. 속마음을 숨기면서 겉으로 딴청을 피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며칠 전, 잘 아는 후배가 집에 놀러왔다. 멀리서 토란밭을 보더니만 엉뚱한 질문을 해서 놀랐다.

"어, 밭에다 연을 심었네요? 연이 물 없는 데서도 자라나요?"
"뭘 보고 그러는 거야?"
"저기 키 큰 거, 연 아니어요?"
"이사람, 저건 토란이야. 연하고 토란도 구별할 줄 몰라?"

내 말에 후배가 멋쩍어했다. 도회지에서 나고 자란 후배는 토란을 가까이 접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연은 연꽃축제에서 가까이서 보아 잘 알고 있었는데, 토란은 처음 보았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농촌생활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작물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전 흔하게 재배하던 것들이 많이 사라지고, 가까이 접할 수 없기 때문일 게다. 도회지에서만 쭉 살던 젊은 세대들이 특히 더하다.

 토란잎은 연잎과 비슷하다. 토란을 토련이라고도 부른다.
토란잎은 연잎과 비슷하다. 토란을 토련이라고도 부른다.전갑남

하기야 토란잎은 연잎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토란을 토련(土蓮)이라고도 부른다. '밭에서 자라는 연'이라는 뜻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후배가 토란잎을 보고서 연이 아닌가 하고 혼동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토란(土卵)은 '땅에서 나는 알'이라고 한다. 알만큼 영양이 풍부하다는 뜻인지, 뿌리가 알처럼 생겼다하여 나온 말인지 알 수 없다. 아무튼 흙에서 나온 귀하고, 영양 많은 음식을 뜻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알토란'이란 말도 있다. '부실한 데가 없는 옹골차다'는 뜻이다. '알토란같은 땅'이라든가 '알토란같은 내 새끼'라는 말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토란은 생긴 것은 별로지만 소중하고 귀한 대접을 받는 것임에 틀림없다.

알토란으로 추석에 토란탕을 끓여야 제 맛

예전 어머니는 알토란을 가지고 추석 차례상 탕국을 끓였다. 추석이 임박하면 키가 하늘을 찌를 듯 크게 자란 토란을 베고, 삽으로 조심스럽게 토란을 캐냈다. 흙 속에 드러난 알토란은 정말 토실토실했다. 토란줄기는 껍질을 벗겨 맑은 가을볕에 바짝 말려 채소가 귀한 겨울철에 귀하게 먹었다.

 알토란은 껍질을 벗겨 삶아낸 후 토란탕을 끓이면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추석 차례상에 올리기도 한다. 작년에 거둔 토란이다.
알토란은 껍질을 벗겨 삶아낸 후 토란탕을 끓이면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추석 차례상에 올리기도 한다. 작년에 거둔 토란이다.전갑남

올 추석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는 추석 전에 미리 토란을 캐보아야겠다. 어머니가 끓이셨던 토란탕을 아내에게 끓여달라고 해야겠다. 아내도 예전 맛을 내며 맛난 토란국을 끓일 줄 알까?

"당신, 토란 요리할 줄 알아?"
"내가 얼마나 토란을 좋아하는데 그걸 모를까요?"

친정어머니 손맛을 간직한 아내가 벌써 입으로 토란을 끓인다.

토란은 소금을 조금 넣고 쌀뜨물에 삶는다. 그러면 토란의 아린 맛과 미끈거림이 사라진다. 양지머리나 사태국물에 무, 삶은 토란, 다시마를 넣어 폭 끓인 후 나중 두부를 넣어 함께 끓인다.

아내가 입으로 끓인 토란탕인데도 침이 고인다. 추석이 기다려진다. 그나저나 우리 토란은 밑이 제대로 들었을까? 정말 궁금하다. 잎이 무성한 것을 보니 밑도 실하겠지!
#토란 #토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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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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