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2]최근 미국 비농업 부문 고용 하락 추이(단위: 천명) * 자료: BLS/Maver Analytics
새사연
이어지는 기획에서 상세히 다루겠지만 보다 본원적인 문제는 미국경제의 근본이라고 할 미국 국민들의 고용과 소득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구제금융법이 통과되던 10월 3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9월 비농업 부문 고용은 15만 9000개가 줄어 들어 올해 9개월 동안 총 76만개가 감소했다. 공식 실업자만 천만 실업자에 근접하고 있는 것이다. 실업률은 8월에 이어 9월에도 6.1%로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미국 경제 전체로 병이 전염되기 시작했지만 구제금융법은 주택시장이나 실물경제 안정화와 관련된 어떠한 요소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아직도 미국 경제는 응급실에 있다. 당장은 금융부실이 심각하여 응급조치가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실물경제 부문은 아직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여기에는 다시 수술비가 얼마가 추가로 들어갈지 알 수도 없다.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서 심장에 경색된 혈관을 수술한 뒤 실물경제라는 몸통은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지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다.
내심 미국 재무부의 기대는 금융부실 안정화 → 신용경색 완화 → 기업 자금조달 회복 → 기업경기 활성화 → 고용과 민간소비 회복이라는 메커니즘이겠지만, 이렇게 순환기 응급조치로 경제 전체가 선순환을 타면서 살아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금융부실 수술만으로 끝난다면 미국경제가 향후 장기적으로 입원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하이에나와 장의사들의 시대가 왔다구제금융법안 통과 여부를 둘러싸고 전 세계가 미국 의회를 주시하고 있는 동안, 월가는 부실로 먹잇감이 된 6번째 규모의 와코비아 은행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월가의 금융위기가 전방위로 확산되던 지난 9월 와코비아 은행 역시 부실에 몰려 인수자를 구하는 처지가 되었다. 자신도 상당한 모기지 부실을 안고 있었던 씨티그룹이 나섰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지원 아래 와코비아의 은행부문을 21억 달러(주당 약 1달러)에 인수하는 합의를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10월 3일, 미국 웰스파고 은행은 주당 7달러(인수가격 151억 달러)라는 훨씬 좋은 조건으로 미국 정부 지원도 필요 없이 와코비아 은행 전 부분을 인수하겠다고 나섰고 와코비아는 당연히 동의를 했다. 씨티그룹은 즉각 씨티와 와코비아가 배타적 협상(exclusivity agreement)를 하기로 했으니 웰스파고와의 합의는 무효라고 반박하고 나섰고, 분쟁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10월 4일 연방 대법원이 나서서 씨티가 와코비아의 배타적 협상자이니 법원의 추가 명령이 있을 때까지 씨티와 협상안을 유지해야 한다고 비상 명령을 내린 상태다.
와코비아를 둘러싼 씨티와 웰스파고의 쟁탈전은 앞으로 월가에서 어떤 풍경이 벌어질 것인지를 잘 암시해주고 있다. 화려했던 월가 주요 금융회사들이 이후에도 계속 무너져 내릴 것이고 그 와중에 상처만 입고 생존한 금융회사들은 무너진 다른 기업들을 인수합병하여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문자 그대로 정글의 살풍경이 벌어질 전망이다. 현재로 보아서 미국 재무부의 7천억 달러는, 그나마 힘센 금융기업들이 인수합병 전쟁을 치를 실탄을 대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
특히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국 기업 인수합병의 1/3을 차지하면서 월가의 떠오르는 스타로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사모펀드들이 지금은 레버리지가 극도로 위축되어 숨죽이고 있지만, 월가의 고물상으로 자임하고 나서서 인수합병을 주선하거나 주도할 가능성도 있다. 외환위기로 초토화된 한국 금융시장에 소리 없이 들어와 뉴브리지 캐피탈이 제일은행을, 칼라일이 한미은행을, 그리고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가로채서 구조조정을 거친 후 비싸게 팔아버린 한국 모습이 본토인 미국에서 재연되지 말란 법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살아남은 투자은행들은 먹고 먹히는 인수합병 전쟁의 와중에서 인수합병 자문을 명목으로 수수료를 챙기고자 할 수도 있다. 명성 높은 총잡이들과 보안관들이 모두 없어진 월가에 당분간 하이에나와 장의사들이 휘젓는 19세기 미국 서부개척시대를 상상하는 것은 허황된 것일까.
월가의 고물상들이 던지는 미끼에 현혹되어 철없이 '월가 쇼핑'을 운운하며 부실한 금융기업을 헐값에 인수해 보겠다거나 미국의 고급 금융인력을 스카웃하겠다고 기웃거리는 어리석음을 우리 정부가 보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한 지난 30일, "미국 의회에서 (구제 금융안이) 통과되면 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본다"며 "우리 정부가 긴급한 상황에 대해 선제 대응을 해나간 것이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현실감이 극히 떨어지는 주장을 하고 있는 마당이니 월가보다 우리의 상황이 더 아찔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홈페이지(http://www.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이 글은 새사연 연구센터에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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