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해국, 키가 크고 왕성하며 솜털이 보송하다. 만지면 터질듯.
윤희경
어느 날, 모래밭 지평선 너머로 한 여학생이 무언가 머리에 이고 가물가물 다가섭니다. 봉사부장 ‘해옥’이가 광주리를 이고 나타난 것입니다. 하도 기가 막혀,
“이게 뭐냐.”
“저녁 잡수시라 울 엄마가 선생님 갖다 드리라 했어라.”
생전 처음 대하는 곰치국과 통미역 줄거리, 깡 보리밥에 막 된장…. 광주리를 내려놓자마자 많이 드시라 해놓곤 바닷가를 겅중겅중 뛰어다녔습니다.
마지막 미역 줄거리를 씹으며 부서지는 포말을 향해 끼룩끼룩하고 있는데, 이번엔 “선생님, 이거” 하며 진 보라색 꽃다발을 한아름 안겨주었습니다.
당시엔 꽃의 관해 별관심이 없었기에 그 꽃 이름을 몰랐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해국’이란 걸 알았습니다. 마침 수평선 너머에서 불어온 바닷바람에 해옥이의 단발머리가 나풀거리고 가무잡잡한 얼굴이 해국을 닮아 뽀얗게 물들어왔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가을만 되면 동해안 섬마을 백사장에 밀려오던 파도소리와 가파른 벼랑 너덜겅에 주걱모양을 하고 촘촘히 피었던 해국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