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서 자는 사람보고 경악한 까닭

[지리산 1박2일] 산은 사람을 어질게 만들다

등록 2008.10.10 15:49수정 2008.10.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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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산장 앞에서 장터목산장에서 하룻밤 묵고 아침 안개 속에서 사진을 찍고있는 작은 애. ⓒ 김은주

▲ 장터목산장 앞에서 장터목산장에서 하룻밤 묵고 아침 안개 속에서 사진을 찍고있는 작은 애. ⓒ 김은주

 

장터목산장에서 잘 때 방에서는 정말 이상한 냄새가 났습니다. 지하철을 탈 때 가끔씩 맡았던 냄새였습니다. 한눈에 봐도 오랫동안 안 씻은 게 표가 나는 그런 모습의 사람들한테서 났던 냄새입니다.

 

지린내 같기도 하고 고린내 같기도 한 아주 지독한 냄새인데, 이런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부류로 생각했지요.

 

그런데 멀쩡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등산객들한테서 그들과 똑같은 냄새가 난다는 게 참 이상했습니다. 오직 하루 땀 흘리고 씻지 않았을 뿐인데 그런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사실에 솔직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지하철서 그런 냄새 나는 사람을 봐도 편견을 갖지 않기로 했습니다.

 

화장실에서 자는 사람보고 경악

 

사람은 환경의 동물인가 봅니다. 화장실에 갔다가 경악했습니다. 글쎄 화장실 맞은편 바닥에서도 사람들이 자고 있는 게 아닙니까. 이 사람들은 우리보다 늦게 산장에 도착해서 자리를 배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이렇게 화장실 바닥에서도 자고 밥을 해먹는 취사실 바닥에서도 자고 처마 밑에서도 자고 벤치 위에서도 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슬을 피해 화장실에서 자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화장실이 백화점의 깨끗하게 닦아놓은 그런 화장실도 아니고, 헤즐넛 커피향이나 좋은 향기가 있는 그런 화장실이 절대로 아닙니다. 어두워서 잘은 안 보이지만 변기는 몹시 더럽고 지독한 화장실 악취가 있고, 바닥도 수상한 물기가 있고,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볼일을 보는 그런 화장실에서 잠을 잘 발상을 했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이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더러움과 깨끗함을 초월한 우리  범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생각해기로 했습니다. 산을 오르다 보면 이렇게 이들처럼 포용력이 넓어져서 살기 편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밤에 피곤했지만 잠자리가 불편해서인지 잠이 잘 안 왔습니다. 작은 애는 낮에 이것저것 먹더니 탈이 났는지 화장실에 들락날락거리고 사람들 또한 수시로 들어왔다 나갔다 해서 출입문 앞에 누워 있는 내 다리가 불안하더군요. 누군가 어두워서 못보고 다리를 밟을까봐 걱정돼 잠도 잘 못 잣습니다.

 

밤이 어둡고 지겨울수록 새벽은 더욱 환하게 온다고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우리의 아침 메뉴는 된장찌개였습니다. 감자와 양파를 자르고 멸치도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 된장국과 함께 아침을 먹었습니다.

 

이른 아침이고 전날 잠을 못자서인지 밥맛이 없더군요. 작은 애는 더욱 먹기 싫어서 숟가락이 더럽다느니 하면서 투정을 부리더니 급기야 안 먹으면 안 되겠느냐고 떼를 썼습니다. 그때 우리 옆에 서 있던  붙임성 있어 뵈던 아줌마가 인스턴트 카레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내려가니까 이거 먹어."

 

작은 애는 카레를 보자 먹고 싶어 했습니다. 내가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런지 다른 사람의 호의에 잘 적응을 못합니다. 산에서 내려가서 먹어도 될 텐데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런 걸 주는 아줌마의 성의가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공짜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는 내 습성이 나타나서인지 나는 좀 어색한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아줌마가 보통 아줌마가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만 특별히 친절을 베푸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취사장에서 밥을 해먹고 나면 된장 국물이든 김치찌개 국물이든 이런 게 남게 마련이지요. 감자 껍질도 남고 이것저것 쓰레기가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 아줌마가 옆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쓰레기 우리한테 주세요. 우리는 지금 내려갈 거니까 내려가서 버릴게요."

 

옆에 있던 아줌마의 대학생 아들도 밝은 표정으로 맞장구쳤습니다. 그 엄마에 그 아들이라고 엄마가 친절하고 밝으니까 아들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친절과는 거리가 먼 나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우리 애들도 어디 가서 그 아들처럼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는 내가 매사에 밝게 살아야 하고 사람들에게 작은 친절이나마 친절을 베푸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산이 사람을 어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산에 오면 배울 점이 참 많습니다. 사람들한테서도 배우고 자연에게서도 배우고 또 나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스스로도 깨닫고, 그래서 ‘인자요산’이라고 했던가요. 어진 사람이 산을 좋아한다고, 아마도 산이 사람을 어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장터목산장 안내 표지판을 보고 놀랐습니다. 장터목산장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글쎄 산장이 있던 자리가 옛날에 장이 섰던 자리라고 하더군요. 함양사람과 산청사람들이 서로의 물건을 교환하던  곳이라 장날이면 소도 올라오고 사람도 올라오고 했다고 하더군요. 맨몸으로 올라오는 것도 죽을 지경인데 짐을 싣고 올라왔을 옛사람들의 노고가 느껴졌습니다.

 

아침을 먹고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날은 3일 연휴의 시작으로 아마도 엄청난 사람이 산에 올라올 거라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러면 산장을 예약하지 못한 우리는 아마도 어제 우리가 불쌍하게 여겼던 화장실에서 잔 사람이나 노숙을 할 처지에 놓이게 되겠지요. 물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젯밤처럼  운 좋게 방에서 잘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어제보다 더 운이 좋은 처지였습니다. 미리 산장에 가서 기다리다가 안내방송이 나오면 일찍 달려가 줄을 서면 좋은 자리에서 잘 수도 있고, 또 이날은 오르막길보다는 평지를 걸으면 되는 여정이라 힘도 덜 들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이런 긍정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부정적인 선택을 해버렸습니다. 어제 중산리에서는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의 힘을 믿었던 우리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참 후회가 됩니다. 그래서 내려오면서 다음에는 가을에 산장을 꼭 예약하고 올라와서 중산리에서 노고단까지 꼭 지리산 종주를 마치겠다고 서로서로 약속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8월 14일과 15일 다녀온 우리가족의 지리산 등반기를 3회에 걸쳐서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길어져서 한 회를 더 쓰게 됐습니다. 그만큼 지리산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산이었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 또한 인상 깊었습니다.

2008.10.10 15:49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지난 8월 14일과 15일 다녀온 우리가족의 지리산 등반기를 3회에 걸쳐서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길어져서 한 회를 더 쓰게 됐습니다. 그만큼 지리산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산이었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 또한 인상 깊었습니다.
#장터목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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