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의 역사개입, 역사의 광우병 같은 것

[주장] 불법 부실 공사하듯 역사교과서 개정 안 된다

등록 2008.10.17 18:39수정 2008.10.17 18:39
0
원고료로 응원

정부는 소위 '근현대사 교과서 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해 직접 수정에 나서겠다고 한다. 10월말까지 전문가협의회에서 교과서 편향여부를 257개 표현을 중심으로 심의하고 11월 부터는 교과서 저자와 협의하여 11월말까지 수정내용을 확정해 내년 1학기 부터 수정된 교과서로 수업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과정에서 저자 등과 협의가 잘 안되면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을 근거로검정합격 자체를 취소해 해당 출판사가 교과서 발행을 못하도록 할 것으로 보인다.

 

너무 서두른다. 기존 제도와 절차, 해당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무시한다. 내년 1학기엔 개정된 교과서로 수업한다는 목표만 있고 과정은 중요치 않은가 보다. 역사 서술을 마치 시점을 정해 놓고 공사 하듯 밀어 붙인다.  부실공사가 되기 쉽고, 안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정치권력이 부실 공사 감독, 사실상 국정 교과서 탄생 예고?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부실 공사의 주체가 정권이란 점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국가가 역사적 평가를 독점했던 유신과 5공 시절의 국정교과서 체제로 돌아가게 된다. 역사 해석에 대한 다양성 보장하고 비판적 인식을 통해 역사를 보는 안목을 갖춘  민주시민을 양성한다는 취지로 국정교과서를 폐지하고 검인정교과서를 발행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과거 국정교과서는 정권을 찬양함로서 역사 보다는 정권 홍보서로 전락했고 수업에서 근현대사는 특히 현대사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역사는 그냥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로만 인식되었다. 역사에 대한 현재적 의미부여 해석 따위는 발붙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정권에 영향을 받지 않고 역사교과서를 출판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교과서 검인정제도이다. 검정 교과서는 교육부가 검정실시계획을 발표하고 제작자가 집필한 검정도서를

승인신청 하면 교과용 도서심의회의 검정심사를 거쳐야 채택된다. 그런데 이마저도 역사교사들과 학계 일부에서는 교육부의 검정심사 가이드라인이 너무 엄격해 자율적인 집필이 사실상 불가능한 변형된 국정교과서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하는데 역사학자들이 보기엔 과거 국정교과서의 틀을 아직 벗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마자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교과서 검인정제도를 완전히 무시하고 정권이 직접 역사교과서를 고치겠다며 나서고 있다. 이는 사실상 국정교과서 시대로의 복귀이다. 권력에 의한 역사적 횡포이다.아마도 '좌파 정권 산물'이란 프레임을 적용해 상징적인 청산 사례로 삼고 싶은 것 같다.

 

이를 통해 정권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있는 듯 하다.역사적 평가를 바꿈으로서 평가에 동의하지 않으면 곧 좌파란 낙인을 찍으려할지 모른다. 알아서 기든지 불온세력으로 낙인 찍히던지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의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얼마전 대표적 역사학회의 회장은 인터뷰에서 '정부가 학계 동의 없이 밀어 붙이지는 않을 것'이란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상식을 벗어난 이런 권력의 행태에 아마도 역사학게는 너무 황당해서 말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럴 때 일 수록 역사학계가 정신 바짝 차려주고 나서주길 당부한다.친일과 독재와 학살이 정당화 되어선 안되지 않겠는가.  

 

정치권력의 역사개입은 역사의 광우병 같은 것

 

역사왜곡 이나 정치개입은 눈에 보이거나 직접 다가오는 문제가 아니라서 아마도 다수 시민들이 그것의 위험을 체감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정치권력의 역사 개입은 역사의 광우병 같은 것이다. 당장에는 전혀 그 위험을 느낄 수 없으나 서시히 역사의식을 마비시키고,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을 볼온시 또는 불건전한 것으로 몰아가게 될 것이다.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강풀의 '26년' 만화도 보고 영화 '화력한 휴가'도 보고좋은 강의가 있으면 찾아가 듣기도 하고, 책이라도 사서 봐야 한다.  한국근현대사를 이해할 때 세상을 보는 통찰력도 형성된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언행과 관료의 행정 등을 기록하는 사관의 기록을 왕 조차도 열람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사후에 역사(실록) 편찬의 자료가 되는 기록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그래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후대의 역사적 평가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도 정치권력의 역사개입은 있어서는 안 된다.그 자체로 역사와 민주주의의 후퇴가 아닐 수 없다. 다시 상식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천준호 기자는 KYC 공동대표입니다.  정치개입에 분노한 역사학자들이 특강에 나섭니다. 한국근현대사 아카데미 12개 강좌가 20일(월) 부터 시작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KYC 홈페이지(www.seoulkyc.or.kr)를 참조하세요. 

2008.10.17 18:39ⓒ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천준호 기자는 KYC 공동대표입니다.  정치개입에 분노한 역사학자들이 특강에 나섭니다. 한국근현대사 아카데미 12개 강좌가 20일(월) 부터 시작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KYC 홈페이지(www.seoulkyc.or.kr)를 참조하세요. 
#한국근현대사 #역사 교과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2. 2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3. 3 신체·속옷 찍어 '성관계 후기', 위험한 픽업아티스트 상담소 신체·속옷 찍어 '성관계 후기', 위험한 픽업아티스트 상담소
  4. 4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5. 5 전 대법관, 박정훈 대령 바라보며 "왜 '별들'은..." 전 대법관, 박정훈 대령 바라보며 "왜 '별들'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