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집을 찾아 갑갑한 마음을 달래는 사람들

재미로 본다지만 속마음까지 느긋할까

등록 2008.10.20 12:24수정 2008.10.20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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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인사동의 가을 풍경    인사동 거리에는 가을 축제를 알리는 깃발들이 매달려 있다.

인사동의 가을 풍경 인사동 거리에는 가을 축제를 알리는 깃발들이 매달려 있다. ⓒ 김학섭


전국은 가을 축제에 빠져 있었다. 지난 19일 기자가 찾은 인사동 문화의 거리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도처 전신주에는 가을 축제를 알리는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보도 위로 한 잎 두 잎 낙엽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안개 때문인가, 청명해야 할 가을 날씨가 오후에도 새벽 하늘처럼 음침하기만 하다. 고층빌딩이 뿌옇게 매연 속에 떠 있는 듯하다.

잠시 근심걱정을 집에 접어두고 나온 탓인가. 인사동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밝다. 차 없는 날이어서 자동차의 매연도 없어 공기도 맑았다. 가로수 몇 그루가 인사동 가을 풍경의 전부지만 가을을 냄새 맡으려는 사람들로 골목길은 온통 시장처럼 북적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파도처럼 밀려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


전통놀이를 하는 곳에는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인절미를 만들어내는 곳에 외국인들이 서서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고 있었다. 그들이 보는 인사동의 풍물시장은 과연 한국을 대표할 만큼 만족한 것일까. 어떤 외국인은 아이를 무등을 태우고 돌아다니는 풍경도 보였다. 일본 관광객들이 호박엿을 구입하여 입에 물고 좋아하는 모습이 흐뭇하다.

a 인사동의 가을 풍경    사주를 보고 있는 김호열씨. 인생의 희망을 주는 것이 사주를 봐주는 목적이라며 20대 아가씨의 손금을 보고 있다.

인사동의 가을 풍경 사주를 보고 있는 김호열씨. 인생의 희망을 주는 것이 사주를 봐주는 목적이라며 20대 아가씨의 손금을 보고 있다. ⓒ 김학섭


문화의 거리지만 우리 것이라고 내놓을 것들이 신통치 않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기자의 눈에 띤 것이 점집이었다. 인사동, 그것도 대한민국 문화의 거리 중심가인 인사동 입구에 어엿하게 자리 잡고 사주를 봐주는 곳. 바로 옆에는 수십 층짜리 고층 건물이 서 있었다. 현대와 공존할 수 없는 것 같은 사주 집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인간들은 최첨단 시대에 살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사주 집 앞에서 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일까. 한 20대 아가씨에게 무엇 때문에 사주를 보느냐고 물어보자 그저 재미삼아 본다고 웃으면서 대답하고 있었다. 정말 재미삼아 보려고 하는 것일까. 마음속에 진정 갑갑한 것이 없다는 말인가. 갑갑한 것이 없다면 왜 복채를 만원씩이나 주면서 사주를 보려 하는 것일까.

30대 후반 부부가 사주를 먼저 보고 나오더니 사람들이 보건 말건 서로 손바닥을 딱! 하고 마주쳤다.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다음은 20대 아가씨가 들어가더니 조금 후 웃으면서 나왔다. 역시 기분이 좋은 듯 기자에게 목례를 하고 총총히 인파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들 모두 점괘가 잘 나온 것 같았다.

“그들의 사주가 잘 나온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들이 좋아합니까?”
“그들이 우리를 찾아올 때는 갑갑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쁜 사주를 그대로 이야기해 줄 수는 없지요. 먼저 부부는 사업문제 애정문제 등을 물어 보았습니다. 더구나 헤어졌다가 5개 월 후에 합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 부부에게 희망을 갖도록 해 주었을 뿐입니다.”
“두 번째 여자는 왜 좋아 했습니까?”
“그녀 역시 취직문제와 애인이 있는 데 언제 취직하며 결혼을 언제하면 좋겠느냐고 물어 왔지요. 노력하면 곧 운이 따라올 것이라는 희망적인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녀 말대로 재미로 보러왔다가 나쁘다고 이야기를 해주면 재미가 아니라 평생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a 인사동의 가을 풍경    우리의 가락이 가을 하늘 가득퍼져가고 있다. 관광객들도 흥겨운 듯 어깨춤을 들석이는 사람도 있었다.

인사동의 가을 풍경 우리의 가락이 가을 하늘 가득퍼져가고 있다. 관광객들도 흥겨운 듯 어깨춤을 들석이는 사람도 있었다. ⓒ 김학섭


외국 사람들도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손금은 서양인이나 동양인이나 같기 때문에 운명도 같다는 주장이었다. 인사동 입구에서 수년째 사주를 봐주고 있다는 김호열씨는 최근에 동양철학이 서양으로 많이 보급되고 있다며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다. 김호열씨는 희망적인 말을 해주어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갖도록 해주는 것이 사주를 보는 사람들의 사명이라며 다음 사람을 서둘러 받고 있었다.

a 인사동의 가을 풍경    이곳에서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신발과 현대신발이 나란히 진열되어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인사동의 가을 풍경 이곳에서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신발과 현대신발이 나란히 진열되어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 김학섭

#인사동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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