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판단을 받게 된 불온서적

등록 2008.10.23 13:40수정 2008.10.2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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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지난 7월 ‘북한 찬양’ 도서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지상에 숟가락 하나> ‘반정부·반미’ 도서 <나쁜 사마리아인들> <대한민국 史> <소금꽃 나무> ‘반자본주의’ 도서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따위 23권이 군장병 정신전력 저해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불온서적'으로 낙인 찍힌 이후 두 달 만에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것을 주도한 사람들이 군 법무관들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이유는 이들이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서적을 동의하고 나선 것이 아니라 “불온서적 지정은 군인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침해하고, 행복추구권,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병역의무 이행으로 일반인이 누리는 기본권을 군인만 누리지 못해 결과적으로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군 장교인 법무관들이 검열 조처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는 점이다.

 

불온서적은 지정 당시부터 사상과 이념의 자유를 제약하고 통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10만권 이상 팔리 책, 대학교재로 쓰이는 책, 청소년권장도서까지 포함되어 있어 비판 강도는 더욱 강했다.

 

군사독재시절 같이 국방부가 불온서적으로 지정했으면 출판사는 절판, 서점은 수거한다고 소동을 벌였겠지만 절판된 책은 재판에 들어갔고, 인터넷 서점은 특집코너를 만들면서 판매량이 오히려 10배 이상까지 늘어난 책들도 있었다.

 

불온서적 지정이 사상과 자유를 통제한다는 비판과 함께 책 판매량이 늘어나면 국방부도 불온서적 지정이 문제가 있음을 알고 취소해야 했지만 이상희 국방장관은 지난 8일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장병 정신 전력에 이롭지 않다면 계속할 것" "군인이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답변을 통하여 불온서적 지정 방침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결국 상명하복을 생명처럼 여기는 비록 군 법무관들이지만 군 내부에서 불온서적이 양심과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일반인과 달리 군인들만 읽지 못하는 게 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군 법무관들은 불온서적인 사상과 이념, 평등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불온서적 지정 근거로 삼은 군인사법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규정이 없어 포괄위임입법 금지원칙에 어긋나고, 다른 근거인 군인 복무규율은 대통령령으로 기본권을 제약할 근거가 못 된다”고 주장하여 법적근거도 문제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국방부는 항명 같은 행위와 헌법소원 피청구인에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까지 지목한 것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국방부는 깊게 생각해야 한다. 헌법소원을 낸 법무장교들의 행위를 군기강을 무너뜨린 '집단행동'으로 간주하여 징계하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

 

항명 같지만 항명이 아니다. 그들은 법률가들이다. 군인으로서 국가와 국민 안위를 지키는 일을 거부했다면 항명이지만 헌법이 보장한 사상과 이념의 자유와 일반인과 똑같이 책을 읽을 권리를 국방부가 침해했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이명박 정부들어 사상과 이념, 집회,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 군부독재시절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상과 자유, 양심을 통제하는 사회는 더 나은 사회로 결코 나아갈 수 없다. 사상과 이념, 양심의 자유는 통제될 수 없는 성역이다.

 

더 나은 사회란 반드시 돈을 많이 버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말한다. 국방부가 지정한 불온서적이 얼마나 문제가 있으면 어떤 집단보다 보수적인 법률가와 군인들이 헌법소원까지 냈는지 생각해야 한다. 하나의 이념과 사상만을 강요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우리는 이번 가을 사법부에서 시작된 작은 파장을 기억하고 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는 권력을 향한 직접 저항은 아니지만 법률가로서 하위 법률이 헌법을 위반했다는 판단을 받아 보겠다는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것이다.

 

9월 5일 춘천지방법원 형사1부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처벌을 규정한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9월 17일 광주고등법원 형사부는 사형을 규정한 형법 41조 등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박재영 판사는 10월 9일 야간 옥회집회를 사실상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0조 따위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군 법무관들이 낸 불온서적 헌법소원과 병역법과 사형제, 야간옥회집회 금지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우리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국방부와 일부세력들은 이들을 향하여 항명, 집단행동, 법복을 벗으라는 비난보다는 헌법소원과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데 합당한 의견이라면 존종해야 한다. 그래야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소망하는 선진국이다.

2008.10.23 13:40ⓒ 2008 OhmyNews
#불온서적 #군법무관 #헌법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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