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소비자들은 좀체 지갑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경기 침체 여파로 소비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백화점의 모습.
장윤선
"어! 5천원이다."
26일 오후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지하 2층 영캐주얼 매장. 한 20대 여성이 소리치는 외마디에 순간 이목이 집중됐다. 그녀가 놀란 것은 브랜드 티셔츠가 한 장당 5천원에 팔리고 있었기 때문. 백화점에서 아무리 '브랜드 데이', '깜짝 타임세일', '고별전', '이월상품대전', '초대전', '특별전'을 열어도 의류가격이 1만원을 밑도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아웃렛매장이나 동대문 쇼핑타운에서 팔리는 '노 브랜드' 상품이라면 몰라도 백화점에서 브랜드 상품이 5천원에 팔리는 것은 보기 드문 장면이다. 백화점에서 옷이 이 정도 가격에 팔리고 있다면 남대문이나 동대문시장보다도 싼 것이다. 거의 땡처리 수준이다.
백화점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좀체 지갑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경기 침체로 펀드에 투자했다가 반토막나고 부동산 담보 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소비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1997년 IMF 때보다 더 힘들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다른 백화점 명품 코너에서는 3000만 원짜리 겨울 코트가 팔려나가고 있다. 웬만한 부유층도 경기 침체에 몸을 움츠리고 있으나 대한민국 1% 최고 상류층은 끄덕없는 셈이다. 20대 80의 사회라고 하더니 이제 1대 99의 사회로 가는 듯했다.
재킷 한 벌에 10만 원 이상이라면? "생각해 보고 올 게요" 신촌 현대백화점에서 경기 불황을 가장 크게 느끼는 곳은 여성 의류매장들이었다. 지난달 6일 부도를 맞은 '패션네트'의 브랜드 '마리끌레르', '이지엔느' 등은 이미 '고별전'을 마치고 이 백화점에서 철수한 상태였다. 간혹 마지막 남은 재고 처리를 위한 '특가전'을 열 뿐 백화점 매장에서는 좀체 만나기 어려웠다.
이 백화점에서 만난 여성복 매장의 30대 담당자는 "한 번에 500만~600만 원어치씩 옷을 사가던 큰손이 사라졌다"며 "어차피 없는 사람들이야 백화점에 오더라도 매대에서 파는 세일 상품을 사고 말지만 이런 큰손들은 한 번 오면 매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데 아예 발길을 끊은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매장의 판매원은 "세일 상품의 경우에도 재킷이 10만원 이상이면 비싸다고 손사래를 치고 그냥 내려놓고 가거나 생각해 보고 다시 오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며 "고객들의 이런 소비심리를 반영하느라 업체들도 더 저렴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소공동의 롯데백화점에서는 49만8천원에 판매되던 싱글 버버리 재킷이 단돈 9만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판매원은 "작년 이월상품이고 또 몇 장 되지 않아 아주 저렴한 가격에 내놓게 됐다"면서 "9만원에 팔기에는 매우 아까운 상품"이라고 씁쓸해 했다.
이밖에도 비록 이월상품이기는 하지만 50만원대의 겨울재킷이 6만9천원에 판매되기도 했고, 한 유명 의류브랜드의 경우에는 전 품목을 50% 할인하는 '폭탄'세일을 벌이기도 했다.
서울 신촌 백화점의 부인복 매장에서 일하는 한 담당자는 "올 들어 매출이 20% 감소했다"며 "세일을 한 가격이라고 얘기해도, 비싸다고 하는 사례가 늘어났다"고 했다. 부인복의 경우에는 고가라 하더라도 마다치 않고 구매하던 소비자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비싸다'는 볼멘소리가 늘어났다는 것.
백화점 찾는 50~60대 여성들, "깎아주세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