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왕주조는 허영만의 식객 100번째 편에서 볼 수 있다.
허영만
세왕주조의 술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최근 몇 년 동안 부부는 매우 유명해졌다. 각종 방송에 세왕주조와 이 대표가 소개되고, 신문 지상에도 크게 보도됐다.
뿐만 아니라 허영만의 <식객> 100회에 세왕주조를 소재로 만화가 그려졌고, KBS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서는 촬영지로 선정되며 안방에 소개됐다. 덕분에 지역에서는 이미 유명인사가 다 됐다.
10년 동안의 고생이 결실을 맺었을 성싶지만, 정작 큰 돈은 벌지 못했다. 모은 돈을 모두 새로운 제품 개발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세왕주조가 보유한 제품 수는 웬만한 대형 주류회사 못지 않다. 대통령상을 3번이나 수상한 '생거진천 쌀막걸리'와 냉침법을 응용해 만든 '가시오가피주', 그리고 흑미(黑米)로 빚은 '흑미와인' 등 35종의 제품이 있다.
제품이 이렇게 늘어난 이유는 책임감 때문이다. 돈을 벌 작정이면, 잘 팔리는 것은 더 많이 만들고, 안 팔리는 것은 단종하면 된다.
굳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보다 기존 제품을 잘 포장하고 홍보하면 된다. 선택과 집중, 그것이 일반적인 장사의 이치다. 하지만 이 대표는 장사치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찾는 술은 계속 만들어야 된다는 게 그의 고집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새로운 맛을 원하면, 양조장에서 새로운 맛을 창조해냈다.
"사람들이 새로운 제품을 요청하면, 애 아빠는 묵묵히 신제품 개발에 나서요. 지난해에는 지역 어르신이 흑미를 가지고 와서 검은쌀 막걸리를 개발해 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 분이 다른 지역 축제에 갔다가, 지역 특산품으로 막걸리 담근 걸 보시고, 우리 애 아빠한테 우리 지역의 특산물인 친환경 흑미로 막걸리를 만들어보자고 한 거죠. 지금 팔고 있는 '검은쌀 막걸리'의 탄생비화죠."물론 제품 개발에 나섰다 낭패를 겪은 일도 많았다. 한 번은 반살균 형태의 알코올 도수 7도의 신개념 막걸리를 시장에 내놓은 적이 있었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달짝지근한 맛과 톡 쏘는 맛이 어우러져 소비자들의 입맛을 빠른 시간 내 사로잡은 것.
그러나 늘어나는 주문량에 함박 웃음을 지은 것도 잠시. 이내 반품이 쏟아져 들어왔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막걸리가 유통 과정에서 상한 것이다. 개발비와 원료비만 고스란히 날렸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이를 계기로 막걸리와 쌀, 누룩의 성질에 대해 더 깊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는 연구원 하나 없는 세왕주조의 소중한 자산이다.
세왕주조 막걸리에서 옛 맛이 나는 이유?
▲'1935 龍夢製' 용몽 가마터에서 지은 항아리. 7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이 항아리에서 술이 익어간다.
노준형
▲발효실 항아리에서 술이 익어가고 있다.
노준형
세왕주조 막걸리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그저 담백하고 시원할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부터 아이의 손을 잡고 오는 젊은 부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고향의 맛을 다시 느끼고 싶은 이들, 역사가 깃든 곳을 찾는 호기심 어린 발걸음 등 그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결국 다시 찾는 이유는 맛이다.
"막걸리 맛을 보면 옛 맛이 난다고들 해요. 비법이 뭐냐고 묻는데. 방법이 특별한 게 있겠어요? 그냥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드니까 옛 맛이 나겠죠."세왕주조 술은 옛 방식 그대로 만들어 낸다. 고두밥을 찧고, 이틀간 종균실에서 배양한다. 그 다음 배양된 것을 항아리에 담고, 덧밥(술밥)을 다음날 넣어준 뒤, 이틀 동안 숙성한다. 이 모든 것을 사람의 손으로 한다. 예전에 기계를 들여놓은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건물 구석에 처박혀 있다. 사람의 손맛을 낼 수 없어서다. 사람이 손으로 균을 띄울 때 날씨에 따라 그 방법이 다른데, 이 미세한 감각을 기계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다.
술이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의 여유는 술을 자연스럽게 익게 만든다. 하루 이틀 만에 뚝딱 만들어낸 술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맛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숙취의 고통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6일 동안 술이 익어가면서 숙취 유발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가 자연스럽게 날아가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먹거리 불안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지만, 세왕주조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 집의 첫 번째 고객이 바로 이 대표의 부친이기 때문이다.
"저희 막걸리를 우리 아버님은 매일 드세요. 점심 때 반주로 꼭 한 잔씩 하시거든요. 우리 아버님께서 잡수시는 건데… 그런데 그걸 떠나서 사람들이 먹는 거잖아요. 물론 돈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이것이 가업이잖아요. 우리 집안의 명예도 걸려 있는 거구요."70여 년 동안 우리 술을 빚어온 세왕주조. 3대를 이어온 전통주의 역사는 옛 것이 사라진 현대인들에게 추억을 선물로 선사한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대를 이어 계속될 양조장을 만들고 싶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할 것이 많다. 우선 양조장 옆에 전통주 전시 시음 판매장을 만들 계획이다. 그곳에 양조장의 역사를 기록할 것이다.
"우리 양조장의 역사를 나무로 표현하고 싶네요. 우리 할아버님께서 나무를 심으셨고, 아버님은 뿌리를 내리셨어요. 저희는 줄기를 뻗게 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후손들은 나무의 잎이 무성하도록 만들어 주겠죠? 100년이 흐르고, 200년이 흘러도 후손들이 대를 이어 전통을 지킨 우리의 역사를 보고 양조장을 지켜나갔으면 합니다."
▲빛깔에 취한다. 세왕주조의 전통주 3종 세트
노준형
사라질 뻔 했던 덕산 양조장 |
세왕주조의 양조장은 제58호로 지정된 등록문화재다. 일본 사람이 설계한 건물이며, 1929년에 짓기 시작해 1930년에 완공됐다. 백두산에서 전나무를 가져와 지었다. 자연을 활용한 건물로 양조장에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통풍을 좋게 하기 위해 문의 방향을 정했고, 건물 내부에도 바람이 통할 수 있는 통풍구를 마련했다.
집 앞에 측백나무를 심어 해충을 방지하고 목조 부패를 방지했다. 측백나무의 진액이 바람을 타고 날라오면서 해충을 방지하고, 건물의 나무가 썩지 않는 역할을 하는 것. 실제 2006년 보수공사를 하면서 건물을 해체한 적이 있었는데, 뼈대가 하나도 썩지 않았었다. 외벽은 썩지 않도록 검은 도료를 사용했다.
건물 내부에 들어서면 70년의 세월을 순간 이동한 듯한 느낌을 가진다. 발효실에 들어가면 항아리에 ‘1935 龍夢製’(용몽제)란 글자가 찍혀 있다. 물론 전시용은 아니다. 거기서 술이 보글보글 익어가고 있다. 1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에는 허영만의 <식객>에도 등장하는 오래된 금고가 자리를 지키고 있고, 벽에는 이승만 시절부터 받은 주류 품평회 상장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덕산 양조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했던 아찔한 기억이 있다. 2001년의 일이다. 그 해에 덕산 양조장의 일부가 도로 계획 상 길이 나는 곳으로 지정됐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군청에 항의를 했지만, 딱히 방법은 없었다. 다행히 그 해와 이듬해에 도로 공사는 없었고, 2003년 2월에 문화재 등록이 받아들여지면서 건물 철거는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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