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즙파동'과 '엿먹어라', 그리고 국제중

각성제 먹으며 중학입시 준비하던 시절, 60년대로 돌아가자는 건가

등록 2008.11.01 19:41수정 2008.11.0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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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서울시지부 소속 교사들이 29일 저녁 서울 신문로 2가 서울시교육청앞에서 국제중 강행, 단협 해지, 일제고사 강행을 규탄하며 '공정택 교육감 퇴진 촉구 서울교사 1,000인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31일, 서울시교육청이 국제중 설립을 확정 고시했다. '아름다운' 10월의 마지막 밤이다. 원래 다음 달 고시 예정이었으나 국제중 설립에 속도를 내기 위해 황급히 고시했다고 한다. 급하긴 급했나 보다.

드디어 중학교 평준화마저 위험해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 건 '무즙파동', '엿 먹어라'다. 이것들은 중학입학시험이 아직 있던 1960년대에 벌어졌던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이 있은 후 국가는 중학입시체제를 폐지했다. 적어도 초등학생만은 입시과열에 시달리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였다. 이제 사십여 년 만에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려 한다. 40년 전으로 돌아가는 '복고댄스'다.

초등학생도 이제 입시경쟁에 매진하란다.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라며 추앙하는 게 유행인데, 초등학생이 무슨 죄가 있는지 이 아이들더러 건국 시절로 돌아가란다. 선진화하겠다더니 경제위기도 원점으로, 교육도 원점으로, 복고 태풍만 몰아치고 있다.

1960년대 풍경, 무즙파동과 창칼파동

아래는 2004년 2월 11일 KBS 뉴스의 한 대목이다.

"책이 첫 선을 보인 것은 1966년, 38년 전입니다. 값은 350원, 당시 처음 나온 라면이 하나에 10원할 때입니다.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무즙파동이 벌어지고 김기수 선수가 복싱바람을 몰고 온 그 시절입니다."

책을 소개하는 어떤 기사다. 여기서 1966년의 시대상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라면값과 두 사건을 짚었는데 그 중 하나가 '무즙파동'이다. 1966년을 대표하는 사건이었다는 뜻이다. 정말 대단했었나 보다. 이 요상한 단어는 무엇인가?


1964년 12월 7일 실시된 서울지역 전기(前期) 중학교 입시의 자연과목 18번 문제.

다음은 엿을 만드는 순서를 차례대로 적어 놓은 것이다.

①찹쌀 1kg가량을 물에 담갔다가 ②이것을 쪄서 밥을 만든다 ③이 밥에 물 3L와 엿기름 160g을 넣고 잘 섞은 다음에 60도의 온도로 5∼6시간 둔다.

위 ③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정답은 보기 1번 디아스타아제였다. 그런데 보기 2번 무즙에서 사단이 났다. 초등학교 자연 교과서에 '침과 무즙에도 디아스타아제가 들어 있다'라는 대목이 있었단다. 오답처리된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무즙이 왜 안 돼!'

이 무즙파동에 대한 동아일보의 당시 사설.

"무즙으로 엿을 만드는 실험까지 해 본 학부모가 있다고 한다. 서울시내는 이 문제로 온통 떠들썩한 상태이다. 합격자 발표를 연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신중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당국은 오락가락했는데, 오답처리하면 무즙 측에서 항의하고, 무즙도 맞다고 하면 디아스타아제 학부모들이 교육청 농성에 들어가고. 이렇게 몇 개월을 끌다가 서울고법 특별부가 "무즙도 정답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간신히 수습된다. 이 사건은 신문 1면을 장식하는 등 당시 중학입시과열의 폐해를 상징하는 유명한 일화가 됐다.

그때 무즙 진영 학부모들이 무즙으로 곤 엿을 들고 교육청에 쳐들어가 '엿 먹어라'라고 했단다. 이것이 '엿 먹어라'라는 욕의 유래라고 한다. 한편에선 엿 먹으라는 욕은 그 전부터 쓰였고 그 의미는 엿이 성기를 뜻하는 데 있다고 한다. 이쪽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신문기사에도 버젓이 무즙파동이 '엿 먹어라'의 유래라고 나올 때가 있다. 무즙파동이 미친 파장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그 전부터 쓰던 말까지 그때부터 새롭게 시작된 말이라고 인식하게 됐을까?

1968학년도에는 '목판화를 새길 때 창칼을 바르게 쓴 그림은?'이라는 문제가 나와서 이른바 창칼파동이 벌어졌다. 이때도 복수정답 시비가 생겼고 학부모들이 경기중학교장을 연금하기도 했다. 이런 사건들을 겪은 후 중학교 서열체제를 없애버렸다. 일류중 입시는 아이들에게 시킬 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등학생들은 중학교 입시 때문에 각성제를 복용해가며 공부했다고 한다.

교육청에 상기시켜 주고 싶은 말, '엿 먹어라'

이제 다시 라면이 처음 출시됐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최초의 라면을 지금 시장에 내놓으면 어떤 반응이 있을까? 모르겠다. 어쨌든 그 당시 있었던 일류중학교 체제는 이제 다시 우리 현실에 등장하게 됐다.

최초의 라면이 어떤 반응을 초래할 진 알 수 없지만, 구식 일류중이 어떤 반응을 불러올 지는 분명히 예측할 수 있다. 시장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을 것이다. 막대한 학비에도 이곳에 아이를 들여보내기 위해 부모들은 흥분할 것이다. 최초의 라면은 아마도 아이들에게 먹이지 않을 것 같은 부모들인데 말이다.

지금 생기는 국제중은 시작에 불과하다. 일단 서울 국제중이 제 궤도에 올라서면 곧 다른 지역에서 '왜 우리 지역은 국제중을 만들지 않는가?'라고 나설 것이다. 분권화 기조에서 각 지역의 열망을 어차피 막지 못한다. 지역마다 생겨나고, 서울에선 그 수를 늘리는 가운데 중학체제는 서서히 40년 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제 막 복고열풍의 첫 스텝을 밟았다.

대학입시를 볼 때마다 입시파동이 벌어지고, 문제논란이 일어난다. 그리고 학생이 반드시 자살한다. 이제 초등학생이 그 일을 벌이게 생겼다. 40여 년 전, 라면이 처음 출시됐을 때 중학입시 때문에 벌어졌던 '무즙파동'과 그때 교육청에 던져졌던 '엿 먹어라'라는 비난이 부활할 날도 머지않았다. '엿 먹어라'라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돈다. 엿이 생각나는 10월의 마지막 밤이다.
#국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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