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 "빨갱이 잡았는데 정권이 바뀌니..."

태안지역 '제1기 아버지학교'에서 목사된 과정·심경 밝혀

등록 2008.11.03 17:43수정 2008.11.0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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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9,30일 열린 태안아버지학교에서 이근안씨는 특별강사로 초청돼 자신의 재소자시절을 얘기했다. ⓒ 충서아버지학교 카페동영상 갈무리


1980년대 경기도경찰청 공안분실장 시절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씨가 목사가 되면서 파장을 낳고 있다. 기독교계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자신의 고문으로 희생당한 많은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참회가 없이 스스로 용서 받았다면서 목사가 되겠다는 것은 마치 영화 <밀양>에 등장한 유괴살인범의 모습과 닮았다는 것.

그럼에도 이근안씨는 출소한 지 이틀만에 첫 간증집회를 시작으로 약 160여 차례 교회와 기도원을 다니면서 간증을 하고 있다. 그는 목회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지금처럼 집회를 다니거나 교도소에 가서 재소자들의 교화를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고 한다.

그는 또 지난 5월 29일과 30일 이틀 동안 태안의 '평화로운동산'에서 열린 태안지역 '제1기 아버지학교'에 특별강사로 나서, 자신은 빨갱이만 잡았는데 정권이 바뀌니 역적이 돼있었다고 말하면서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고, 자신의 가장 큰 피해자 김근태 전 장관과는 2005년 12월 31일에 김 전 장관이 교도소로 찾아와서 끌어안고 화해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그는 출소 직후에 어려웠던 가정사와 아들의 죽음, 그리고 재기에 성공하기까지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다시 한 번 믿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니 역적이 돼 있더라"

특히 그는 수감시절 정기적으로 자신을 찾아온 목사에게 성경공부를 하겠다고 말했더니 그 목사가 "당신은 울분의 주먹을 풀어라, 안 그러면 세례를 받을 수 없다"는 말에 화가 났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한 손에 성경을 쥐고 또 한 손에 울분의 주먹을 쥔 것이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강의 녹취록.

"(교도소 복역 중 어느 목사님이 자신을 만나러 와서) 한 달에 한 번 오겠다고 하면서 한 시간 (성경을) 가르치고 가더니 그 뒤로 몇 번 오더니 '울분의 주먹 풀어라, 안그러면 세례 못받는다'고 했습니다.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 손에 성경을 들고 한 손 울분의 주먹을 쥔 건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빨갱이 잡기에만 열심히 했는데 정권이 바뀌니 역적이라고?  임금이 바뀌니까 충신이 역적되는게 오늘의 일만은 아니지만 나는 불만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현실을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 용서해야겠다고 다짐한 후 교도소 내에서 통신으로 신학공부를 했고, 전도사 고시를 거쳐 출소 후 강도사 고시에 합격했다고 밝혔다.

"그래도 반성을 했습니다. 나 자신부터 용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 그 목사님에게 신학공부 좀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죄수 신분에 신학대학을 어찌 다니려고 하냐'고 했지만 '사람은 안 되지만 하나님은 가능하지 않습니까. 통신신학이라는게 있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일주일만에 목사가 다시 왔길래 나는 어느 대학에 합격됐냐고 했더니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 8학기 과정에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와 교도소 측의 허락을 받았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는 또 자신에게 고문당한 피해자인 김근태 전 장관과의 화해를 언급하기도 했다.

"(교도소에서 성경을 쓰고 공부한 이후에) 재소자들이 나를 찾아와서 (성경에 대해) 질문하고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 기뻤습니다. 그러던 중에 2005년 김근태 (전) 장관이 섣달 그믐날 교도소를 찾아와서 화해했습니다. 끌어안고 화해했습니다. 이어 출소해서 두 달 있다가 신학교 졸업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출소한 지 이틀만에 간증을 부탁받고 지금까지 1년반동안 159번째 정도 하고 있습니다."

"출소 후에 처자식들 처참하게 살고 있는 모습 보고..."


또 그는 자신이 출소 후에 돌아간 가정이 엉망이 돼 버린 사실도 고백하고, 그 때문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저는 목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기 싫어서 믿음의 길을 가게 됐습니다. 내가 목회활동을 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습니다. 교도소에서 나와보니 큰아들이 회사 연구소에 다녔는데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고, 둘째아들은 심장마비로 죽고, 막내는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또 아내는 새벽부터 나가서 빌딩 화장실 청소 하고 길거리의 파지나 빈병을 모아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현실을 보니) 나는 남편이 아닌 짐이었습니다. 목숨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죽으면 무슨 도움이 될까. 오히려 자식들에게 좌절과 비극만 줄 것 아닐까. 새롭게 살아보자고 다짐했고, 다음날부터 아내가 새벽에 나갈 때 함께 나가서 청소했고, 그 덕분에 지금은 아들들도 직장생활 하고 제 자리를 잡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 자리에 모인 아버지들에게 인생의 난관에 부딪힐 때 좌절하지말고 새롭게 출발하는 용기를 갖기를 바란다며 이야기를 마쳤다.

한편 이날 열린 '태안 아버지학교'는 두란노에서 개최하는 아버지학교의 지역모임으로, 기름유출사건으로 실의에 빠진 태안 지역의 가정과 아버지들이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일어설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약 80여 명의 참가자들이 5월 29, 30일 이틀간 열렸으며 특별강사로 이근안씨를 비롯해 일명 '용팔이'로 알려진 김용남씨도 강의를 했다.

덧붙이는 글 | 강의 내용은 '충서아버지학교' 카페에서 '태안 희망1기 아버지학교'의 '이근안형제 간증' 편으로 10여분에 걸쳐 녹화한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강의 내용은 '충서아버지학교' 카페에서 '태안 희망1기 아버지학교'의 '이근안형제 간증' 편으로 10여분에 걸쳐 녹화한 것입니다.
#이근안 #이근안목사 #아버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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