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떡 데이'에 호미씻이를 하다

[북한강 이야기316] 아쉬운 '농업인의 날'

등록 2008.11.06 19:01수정 2008.11.0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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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은 '가래떡 데이', 즉 농업인의 날이다. 컴퓨터 백신의 연구가인 안철수씨가 이날 젊은이들이 막대과자를 나눠먹는 모습을 보고 이왕이면 전통의 것이 좋겠다 하여 2003년 직원들에게 가래떡을 나눠준 것이 시초가 되었다.

 

지금은 농업인의 날 공식기념일, 쌀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이벤드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래떡을 나눠먹으면 무병장수하고 재산이 가래떡처럼 쭉쭉 불어난다던데, ‘우리 쌀로 만든 가래떡’ 정을 나누며 깊어가는 가을이야기를 함께 나누면 어떨까.

 

농업인의 날을 전후해 나름대로의 ‘호미씻이’ 행사를 하며 일 년 농사를 마무리한다. 계절로 미루어보아 이맘때가 지나면 호미 쓸 일이 별로 없겠기 때문이다. 어디 호미뿐이랴, 여름내 분신노릇을 한 삽, 괭이, 분무기, 예취기 등 모든 농기구들을 깨끗이 씻고 손질하여 창고에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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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씻이를 한 호미들이 나란히 겨울잠 준비를 하고 있다. ⓒ 윤희경

호미씻이를 한 호미들이 나란히 겨울잠 준비를 하고 있다. ⓒ 윤희경

 

호미씻이(세서연)는 원래 음력 7월 백중날 머슴들의 날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농사를 짓느라 심신이 피로해진 머슴들에게 술과 음식을 차려 잔치마당을 열었던 것이다. 정자 아래나 계곡에서 종일 먹고 마시고 춤추며 에너지를 재충전, 활력소를 불어넣었을 터이다.

 

호미는 내가 제일 애용하는 농기구이다. 호미는 단순소박하면서도 섬세하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품이다. 제초제를 치지 않고 마음을 다스려 정직하게 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지갑 같은 존재이다. 늘 옆구리에 차거나 끼고 들고 다니며 김도 매고, 논두렁밭두렁 자투리땅을 후비고 비벼 곡식을 묻는다.

 

밭고랑의 잡풀을 뽑아 없애면 김매기, 무 배추와 나무에 흙을 긁어 덮어주는 일을 북주기라 한다. 김매기와 북주기를 몰아 골걷이라 부르기도 한다. 농사일 중에 가장 힘들고 성가신 일이 골걷이다. 골걷이에 허리가 쑤시고 저려온다. 다리가 안으로 휘다가 세월이 지나면 골병이 들어 어기적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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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종류도 다양하다. 왼쪽부터 땅의 흑을 파올리는 호미. 다음이 감자 북을 줄 때 쓰는 통허미, 세번째가 무배추 북주는 호미, 다음이 잔듸 풀뽑기와 뿌리를 캐내는 호미다. ⓒ 윤희경

호미 종류도 다양하다. 왼쪽부터 땅의 흑을 파올리는 호미. 다음이 감자 북을 줄 때 쓰는 통허미, 세번째가 무배추 북주는 호미, 다음이 잔듸 풀뽑기와 뿌리를 캐내는 호미다. ⓒ 윤희경

 

김을 잘 매려면 호미를 잘 다스려야한다. 호미도 주인을 알아 김매기나 북주기가 시원찮다 싶으면 곧잘 투정을 부리고 툭툭 튀어 오른다. 호미는 주인의 손놀림에 따라 흙덩이를 옆으로 빼내고, 파서 넘기기도 한다. 주인의 김매기 솜씨가 서투르다 싶으면 흙덩이를 떠서 도로 제자리에 놓기도 하고 반쯤 쏟아 내기도한다. 김매기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지금도 밭을 맬 때마다 겸손한 마음으로 호미를 다루곤 한다.

 

호미씻이를 끝내고 사방을 둘러본다. 가을은 어느새 하늘이 가까운 곳으로부터 산을 잠재우며 내려와 옷을 갈아입고 있다. 여름내 푸르렀던 영혼들은 간 곳 없고 산전체가 수채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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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열매들은 스스로 몸을 씻고 겨울 채비를 한다. 백당 열매. ⓒ 윤희경

자연의 열매들은 스스로 몸을 씻고 겨울 채비를 한다. 백당 열매. ⓒ 윤희경

 

아침마다 찬 서리 내려 세상이 하얗고 살얼음 일어 배추 잎들이 달달 몸을 움츠리고 서 있다. 서둘러 무를 뽑아 갈무릴 하고 배추들을 묶어 다독여놓는다.

 

가을 열매들은 붉다. 산수유, 구기자, 찔레, 사철 등. 저마다 뜨겁게 가슴을 달궈내며 허전하게 식어가는 가을을 달래주고 있다. 밤새 내린 서리방울을 녹여내며 알몸을 씻어 내리고 있다. 참, 맑고 깨끗하게 가을 이별 채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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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오려는가, 먹구름이 서산 마루를 넘어가고 있다. ⓒ 윤희경

가을비가 오려는가, 먹구름이 서산 마루를 넘어가고 있다. ⓒ 윤희경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이 가을을 어찌 마감해야 골걷이로 무디어진 허리마디가 시원해올까. 신명이 나야할 '농업인의 날'이 며칠 앞이건만, 마음 한편이 왜 이리 허전하고 아쉽기만 할까. 가을비라도 내리려나, 아까부터 자꾸만 허리께가 찌뿌드드한가 싶더니 구름 한 장 서산마루를 넘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 북집 '네오넷코리아'. 웰촌포탈' 알콩달콜 전원생활' 정보화마을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이야기를 찾아오시면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수 있습니다.

2008.11.06 19:01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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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씻이 #가래떡 데이 #농업인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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