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장어양념구이, 맛과 가격에 황홀했다!

[맛객의 맛있는 이야기] 불맛, 양념맛의 조화에 장어맛 지대로이더라

등록 2008.11.11 09:34수정 2008.11.1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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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맛, 양념맛, 불맛 다 대만족이다 ⓒ 맛객

장어맛, 양념맛, 불맛 다 대만족이다 ⓒ 맛객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제주도 매력은 처음 가서는 잘 모르고, 세번 정도는 다녀와야 제대로 느낀다.”

 

경험상 그 얘기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첫번째 방문 때는 약간 이국적이라는 느낌을 빼 놓으면 특별한 매력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세번째 방문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제주는 내게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렇듯 제주는 알면 알수록 매력을 발산하는 지역임에 틀림없다. 왜 그런지는 다 이유가 있다.

 

처음으로 제주를 방문한 사람은 낯설기만 해서 뻔한 관광 코스로만 돈다. 누구나 다 가는 관광지와 음식점. 사정이 이렇다보니 별 볼 것도 없고 가격만 비싸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두세번 더 찾다보면 유명관광지가 아닌 진짜 제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문득 바라 본 하늘, 푸른 바다, 현지인들과의 인연, 그리고 토착민들이 찾는 식당에서 느끼는 진짜 제주의 음식들. 이러한 것들을 경험하면서 제주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이 식당도 관광 코스로만 돌다 돌아가는 사람들이 본다면 아주 후회할 음식점이다. 5일장이 서는 날에만 장사를 하기 때문에, 가는날이 장날이어야 하는 행운이 따라주어야 한다.

 

제주 민속오일장(2,7일)은 규모가 제법 큰 재래시장이다. 제주에서 거둔 갖가지 채소들이 가장 많이 보이지만, 어른 손목만한 더덕을 비롯해 약재나 버섯도 즐비하다.

 

또 한쪽으로는 어물전코너가 있어 신선한 해산물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장터 구경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먹을거리 아니겠는가.

 

내, 어린 시절 장날이 돌아오면 아버지는 별로 살 것도 없으면서 장터로 향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거나하게 취해서 돌아오셨다. 북적북적한 국밥집에서 요기도 하고 탁배기도 한 잔 걸치는 재미로 장터를 찾았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었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그러하였듯, 나 역시 이제는 장터의 허름한 주막집에서 국밥에 막걸리 한잔의 맛을 아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북적거리는 장터 식당중에서 유달리 손님 많은 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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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집을 연상시킬 정도로 북적거리는 광주식당, 제주 민속5일장이 서는(2, 7, 12, 17, 22, 27일)에만 영업한다 ⓒ 맛객

잔치집을 연상시킬 정도로 북적거리는 광주식당, 제주 민속5일장이 서는(2, 7, 12, 17, 22, 27일)에만 영업한다 ⓒ 맛객
 

어물전 코너 바로 옆에 유독, 손님들로 북적북적 거리는 집이 눈에 띄었다. 언뜻 보면 단체손님이라도 받은 것처럼 빈자리 하나 보이지 않는다. 입구에는 온갖 포장마차스런 안줏감들이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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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열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정신없는 틈에도 상냥한 미소와 여유를 잃지 않고 있다. 타고난 장사 체질인가 보다 ⓒ 맛객

손이 열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정신없는 틈에도 상냥한 미소와 여유를 잃지 않고 있다. 타고난 장사 체질인가 보다 ⓒ 맛객

아주머니 한분은 연신 불쇼를 펼치면서 동시에 몇가지 일을 더 해내고 있었다. 달인의 면모라고나 할까... 연탄불에 꼼장어를 굽고 있었다. 사진을 찍자 아주머니 왈,

 

“사진 찍으려면 모델료 주셔야 하는데요.”

 

그 바쁜 와중에 여유까지 부린다. 역시 달인이다! 웃음꽃 핀 얼굴에 상냥한 목소리는 일순간, 유랑자의 긴장감을 무장해제 시키고도 남았다. 다 구운 곰장어를 접시에다 옮기는데 그것을 보고 그만 침을 꼴깍 삼키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검붉게 구워진 곰장어는 어물전을 돌아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내 발걸음은 어느새 다시 그 식당 앞에 머물고 있었다.

 

“아나고 한 접시 구워주세요.”

“양념으로, 소금으로?~”

“양념으로!”

 

그 순간 옆에서 지켜보던 오만복이 대단한 건수라도 건진 듯 말을 꺼낸다.

 

“맛객! 제주인데 소금구이가 낫지 않아?“

“오만복! 나도 원래는 소금구이를 선호하지만 이집 손님을 봐. 이처럼 많은 손님들이 이용한다면 뭔가 특별한 손맛이 있지 않겠어?”

“그렇군!”

 

내 경험상 소금구이는 정말 신선한 활 붕장어를 구울 때나, 아니면 손맛이 의심스러운 경우 둘 중에 하나여야 한다. 주문을 마치고 자리를 잡았다. 곧 찬 5종류가 차려진다. 고들빼기김치와 꽃게무침, 김치, 그리고 시금치와 콩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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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엔 평범해보일지라도 맛을 보는 순간 절대손맛에 탄복하게 된다 ⓒ 맛객

보기엔 평범해보일지라도 맛을 보는 순간 절대손맛에 탄복하게 된다 ⓒ 맛객

잘 익은 고들빼기 김치를 맛본 순간, 우리는 간만에 의견일치를 보았다. 맛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김치 역시 제대로 된 발효의 풍미가 입맛을 돋웠다. 완벽하게 입에 착 감기는 맛이란... 꽃게무침을 먼저 맛본 오만복, 또 다시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양념도 맛있고 무엇보다 꽃게가 무척 신선하다는 것이다. 나도 맛을 봤다. 살짝 달달했지만 거슬리는 단맛은 아녔다. 연한 꽃게껍질을 깨고 쏟아져 나오는 꽃게살과 양념이 어우러진 맛이란... 불과 찬 몇가지를 맛본 것에 불과했지만, 곧 나올 붕장어(아나고)양념구이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는 하늘에 닿아있었다. 순하게 넘어가는 막걸리로 잠시 흥분감을 가라앉히고 있는 사이, 드디어 등장했다. 붕장어 양념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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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장어 양념구이, 보기보다 양이 제법 된다 ⓒ 맛객

붕장어 양념구이, 보기보다 양이 제법 된다 ⓒ 맛객

 

 

역시나! 눈으로만 딱 봐도 신공스런 때깔이라니. 검붉은 표면에는 지금도 불이 타오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불맛이 제대로 배들어 보였다. 번철에 초벌구이을 한 다음 양념을 발라 다시 석쇠에 올려 연탄불맛을 가미한 요리다.

 

“오만복! 처음엔 쌈 하지 말고, 초장도 찍지 말고 그냥 붕장어 자체로만 맛봐봐.”

“니 말 꼭 들어야 돼?”

“싫음 말고.”

“다시 한번 권하지도 않냐?”

“나보고 어쩌라고?”

“시키는 대로 한다고!”

“허..허... 헤! 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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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그리워지는 붕장어양념구이 ⓒ 맛객

금세 그리워지는 붕장어양념구이 ⓒ 맛객

 

붕장어구이는 횟감으로 먹을 때 식감과는 180도 다르다. 때문에 일본인들이 붕장어찜으로 스시를 즐기잖은가. 붕장어구이 한점을 입에 넣고 씹는 순간, 이의 역할이 무색할 정도로 부드럽게 부셔져 사라져간다. 탁월한 양념맛과 불맛이 더해진 이런 붕장어구이는 내, 살다 살다 처음 느끼는 황홀경이다.

 

정신없이 먹고 있던 오만복이 갑자기 세속적인 말을 꺼낸다.

 

“이거 가격 물어봤어?”

“아니, 뭐 한 2만원 하지 않을까?”

 

마침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이거 가격이 얼마예요?”

“만원인데요.”

“무어야! 만 이천원도 아니고 단돈 만원? 오만복! 이건 하이파이브감이야! 자! 손 내밀어.”

 

“짝!”

 

단돈 만원이라는 가격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오만복 갑자기 홍합이 가득 든 대접을 보더니 오버하기 시작한다.

 

“와~ 이 정도 맛에 이 기적 같은 가격이라니. 왠지 홍합도 무한리필 될 것 같아.”

“허..허... 헤! 헴!”

 

막걸리 두병까지 합해서 12,000원에, 그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붕장어양념구이를 경험할 수 있는 곳. 바로 우리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제주도라는 사실이 그저 믿기지 않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업소 위치는 제주 민속오일장 내 어물전코너 바로 옆에 있습니다. 제주 민속오일장은 2,7일장입니다.
#제주도 #붕장어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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