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소득이 많아졌지만 써야할 곳도 많아졌다. 전에 하지 않던 성형수술도 해야 하고, 학비도 더 많이 든다. 남들 다 하는 것 안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러다 계속 돈에 끌려 다니는 건 아닌지? 소신껏 사는 삶을 생각해 보자.
지난 초여름, 중학교 1학년인 셋째 보리는 반팔 여름교복을 입어야 하는데도 긴팔 교복을 입겠다고 우겼다. 양 팔꿈치에 점이 있는데, 그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다니더니 이제 신경이 쓰이나 보다. 하도 보채서 엄마가 강화에서 김포 피부과로 데리고 갔다. 두 군데를 들렀는데 두 곳 다 레이저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그런데 비용이 만만하지 않다. 한 번에 25만원씩 십여 차례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아내는 걱정이 많아졌다. 안 해도 될 정도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복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보채는 것도 문제지만, 비용도 문제였다. 그날 저녁 재무상담을 하던 중년 주부 고객과 얘기하다가 그 얘기가 나왔는데, 고객은 나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여자인 제 입장에서는 하고 싶을 것 같아요."막내 팔뚝 점 빼러 울산에 다녀오다그런데 남들과 다르다고 그런 식으로 수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활동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고 다만 눈에 좀 거슬릴 정도인데 말이다. 피부과 의사가 장삿속으로 수술을 부추긴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다 성형외과 원장인 선배가 생각나 전화를 해보았다.
"나는 팔뚝 점은 어지간하면 수술하지 말라고 하는데…." 전화 너머로 선배는 분명히 말했다. 단지 남의 눈 의식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의학적 논거가 있었다. 얼굴과 달리 팔은 많이 움직이기 때문에 깨끗하게 치료되지 않고 상처가 남는다는 것이다.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 내게 자신이 생겼다. 곧바로 보리에게 전화해서 울산 성형외과 원장을 만나러 가자고 설득했다. 보리는 썩 내켜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논거를 대며 설득해 보았다.
"종합병원 과장이었던 아주 유명한 의사야. 그리고 아빠랑 친한 대학 선배야. 그래서 바쁘지만 한 번 네 상태를 봐주겠대."
보리의 반응은 짧고 차가웠다.
"그런데?""으응. 아빠랑 기차여행한다고 생각하고 갔다 오자, 보리야. 선생님한테는 아빠가 전화해 놓을 게. 가정학습으로 처리해 달라고 하면 되잖아."겨우 보리로부터 "알았어"란 답을 들었다. 나는 내심 권위있는 원장 말을 보리가 믿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기차표를 끊었다.
원장 선배는 점을 뺄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윤리적 접근은 하지 않았다. 오로지 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전화로 말한 것처럼 얼굴과 팔은 수술 결과가 다르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나 한 번 점을 빼기로 마음먹은 보리 생각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자 선배는 차선책으로 그 시기를 설명했다.
"이쪽 밀크커피 반점은 레이저로 해도 네가 앞으로 더 크기 때문에 깨끗하게 안 돼. 하더라도 성장이 멈춘 고등학교 때 하자."
원장 선배는 설득 차원이 아니라 전문가로서 얘기했다. 수술을 늦게 하면 그 사이에 레이저 기술이 더 좋아질 거란 논거도 댔다. 반대편 팔뚝의 동전만한 검정점은 레이저로 안 되고 도려내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상처가 남기 때문에 점을 상처로 바꾼다고 생각하라고 설명했다. 이것 역시 해도 다 커서 하는 게 좋다고 했지만, 보리는 검정점은 수술해 달라고 했다. 마냥 뜻을 꺾을 수는 없어 검정점만 1차 수술을 했다.
이렇게 해서 결국 보리 뜻대로 점 빼는 수술을 했다. 서울에서 울산까지 새마을호로 오가는 10시간 동안, 우리는 식당 칸에서 식사도 하고 보리는 내게 수학 문제도 물어봤다. 나는 책을 보기도 하고 창밖 경치 구경도 하면서 모처럼 편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형수술, 남 얘기인 줄만 알았더니 이제 바로 우리 집 얘기가 되었구나.'
어릴 때는 그건 정말 내가 전혀 모르고 돈 많이 버는 연예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내 주변에서도 가끔씩 그런 일을 보게 된다. 몇 백만 원 든다는 치아교정도 비슷한 것이다. 예전보다 다들 돈을 더 많이 벌지만, 이런 식으로 쓰는 돈도 많아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행복해진 것인지는 의문이다.
낯선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사람일수록 비용이 많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