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乙)가 머무는 맑은(淑) 섬(島)이라고 해서 이름이 붙은 을숙도. 이름이 무색하게 하구언이 만들어진 뒤 철새도래가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김대홍
밤새도록 벌어진 모기와 전투에서 결국 패했다. '엥엥'거리는 모기를 잡기 위해 수 없이 뺨을 때리고 머리를 쳤다. 아마 누가 봤다면 실성했다고 봤으리라. 그렇게 자해를 했으나 방 안 어디에도 모기 사체는 없었다. 오늘은 꼭 모기향을 사리라 다짐을 했다. 1만원짜리 여인숙에서 그렇게 날을 새우고 나니, 몸이 뻐근하다.
부산을 떠나 진해로 간다. 77번 국도 한쪽 끝은 부산이지만 부산에서 시작하는 국도 번호는 2번이다. 77번 국도는 때때로 다른 국도와 지방도를 빌어서 달린다. 새(乙)가 머무는 맑은(淑) 섬(島)이라고 해서 이름이 붙은 을숙도를 지난다. 1987년 낙동강 하구둑(길이 2400m)가 만들어지기 전까진 주민들이 살았다. 하구둑은 1981년 만들어진 영산강 하구둑이 처음이다.
하구둑이 만들어지기 전에 남해바다는 밀양시 삼랑진까지 40km 가까이 치고 올라갔다. 당시 삼랑진 바로 아래에는 취수장이 있었고 그 물을 부산사람들이 마셨다. 부산 사람들은 "물이 짜다"고 불평했다. 설마 국 끓일 때 소금 안넣어도 된다고 좋아하진 않았겠지. 소금기 섞인 물은 인근 김해평야 농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바닷물 먹은 벼라. 짠밥을 먹는다 생각하니,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구둑이 만들어진 이유다. 사람들은 혜택을 받았지만 생태계는 타격을 받았다. <낙동강 하구 가이드북>(녹색도시부산21추진협의회 간)에 따르면 하구둑 건설 후 어류 갑각류 연체동물 수서곤충은 각각 93종->63종, 96종->50종, 42종->27종, 42종->33종으로 줄어들었다.
철새 또한 수금류는 22종에서 16종으로 섭금류(涉禽類)는 35종에서 9종, 갈매기류는 6종에서 3종으로 줄었다. 철새도래는 대략 10분의1 정도가 됐다. 생태계는 꾸준히 자기 자리를 내주며 사람을 먹여 살린다. 이 땅 사람들, 응당 자리를 뺏긴 새들에게 감사할 일이다.
"고맙다. 고맙다" 중얼거리며 진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낙동강을 낀 길은 좋았으나 이내 2번 도로를 타고 자동차와 함께 달리게 됐다.
조선시대 조선소 흔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