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한파와 함께 찾아온 경제 위기가 서민을 겨냥하고 있다. 사진은 2005년 겨울 남대문시장 모습.
오마이뉴스 남소연
늦은 한파가 시작되었다. 계절만 겨울로 들어선 것이 아니다. 일하는 직장에서 실직의 한파가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시 구조조정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11년 전 환란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있다.
실물경제 '꽁꽁', 고용대란의 계절이 왔다
세계 실물경기 침체의 진원지인 미국에서는 이미 감원과 해고가 거세게 시작되었다. 공식 실업자가 1000만 명을 넘어섰고 매월 20만 명 이상의 고용감소가 진행되어서 올해에만 100만이 넘는 실업자가 새로 생겼다. 금융위기로 직장을 잃은 실직자가 10개월 동안 14만 8000명에 이르렀고, 제조업에서도 15만 명이 감원되었다. 미국 연방정부는 자칫 수백만 명의 실업자를 양산할 수도 있는 미국 자동차 업계의 회생에 아직까지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월가와 미국 제조업의 구조조정 한파는 거의 시차도 없이 국내로 직수입되고 있다. 시공능력 41위인 신성건설이 신청한 법정관리를 신호탄으로 건설업계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지고 있다.
저축은행을 필두로 금융업계의 감원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세계적인 내구재 소비 위축의 여파로 미국 본사가 생사기로에 처한 GM대우의 감산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잔업과 특근 축소에 이어 다음은 구조조정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자나 반도체 업체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는 최근까지 초호황을 누려왔던 조선업마저도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될 정도다.
'비정규직 기간 연장'이라는 안이한 발상이미 올해 초부터 임시직, 일용직 등 비정규직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추가 일자리 증가가 20만 명에서 15만 명으로, 다시 9만 명으로 줄어든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이다. 올 겨울을 분기점으로, 곧 정규직 일자리도 안전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고용대책이라고 해서 현행 2년의 비정규직 기간을 연장하자는 주장도 들린다. 어이없는 주장이다. 지금은 비정규직뿐 아니라 자영업, 청년, 정규직을 포함해 국민경제의 고용 틀 전부가 흔들리고 있는, 말하자면 고용대란 국면이다. 안이하게 비정규직의 고용 편리성을 조금 늘려서 해결될 시국이 아니다. 기업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외환위기 아니라면서 구조조정은 왜 꺼내나
'구조조정'은 업계에서만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정부 쪽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에 외환위기도, 금융위기도 없다고 여러 차례 확언을 해왔던 정부가 어째서 외환위기 정도가 와야만 있을 법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얘기하고 있는가. 사실 위기는 이미 외환과 금융시장에서, 수출시장에서, 내수시장에서, 그리고 고용시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위기의 심각성은 뚜렷한 해결의 돌파구가 없기 때문에 한두 해로 끝나지 않고 장기화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명박 정부 집권 내내 지속될 수도 있다. 사실, 외환위기 당시에는 한국과 아시아를 제외하고는 세계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미국도 신경제 활황의 정점을 향해가던 시기였다. 그래서 수출을 통해 한두 해만에 외형적으로나마 환란을 넘어서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과 유럽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 것은 물론, 연 10퍼센트를 넘는 고성장을 구가하던 중국까지도 성장 하락세가 점쳐지고 있다. 전 세계의 소비, 특히 우리가 주력 수출품으로 삼고 있는 자동차와 전자 같은 내구재 소비 축소가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도 2009년 수출증가율을 3퍼센트 내외로 보고 있다. 2000년 평균의 1/5도 되지 않는 극적인 추락이다.
유일한 돌파구였던 수출마저 봉쇄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지금, 결국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내수를 살리는 것 이외에 선택지가 없다. 토목 건설 같은 내수가 아니라 국민의 구매력을 높여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살아나 경기가 회복되는 길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고용이 있다. 고용이 늘어야 소득이 올라가고 구매력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구조조정된 상황, 뭘 얼마나 더 하려고하지만 고용은 이미 오래 전부터 부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3년 카드 대란 여파로 늘어나는 일할 사람(경제활동가능인구)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채, 고용은 낮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었다. 여기에 올해부터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한 취업자 수는 이미 내부적으로 소리 없는 인력 구조조정이 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전년대비 취업자 증가 수가 20만 명을 밑도는 상황으로 추락하고 있다. 늘어난 경제활동가능인구(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취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반대로 20만 명 이상으로 증가하던 시기는 2003년 카드 대란 시기와 지금 뿐이다. 그나마 카드대란 시기는 그 전해인 2002년 과잉 신용팽창으로 취업자 수가 급격히 늘어난 뒤의 반작용 측면도 있고, 바로 이듬해부터는 회복세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