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 어렵다, 우선 살아남자"
1조원짜리 공장엔 찬바람이 불었다

[위기의 제조업②-반도체] 하이닉스반도체 청주공장

등록 2008.11.20 10:35수정 2008.11.2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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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최근 경기침체와 반도체가격의 급락으로 국내와 미국 등의 반도체 공장 가동을 잇따라 중단한 하이닉스 반도체. 지난 8월 새롭게 가동에 들어간 청주 제3공장으로 직원들이 걸어가고 있다.

최근 경기침체와 반도체가격의 급락으로 국내와 미국 등의 반도체 공장 가동을 잇따라 중단한 하이닉스 반도체. 지난 8월 새롭게 가동에 들어간 청주 제3공장으로 직원들이 걸어가고 있다. ⓒ 김종철


"아니, (하이닉스 반도체는) 어떻게 되는 거유?"

50대로 보이는 택시운전 기사가 대뜸 물어왔다. "글쎄요"라고 기자가 말하자,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쏟아낸다. 그의 말을 잠시 옮겨본다.

"청주가 전국(지방도시)에서 택시가 제일 많아요. 왜냐하면 시 주변으로 공장은 많은데, 대중교통이 생각보다 발달이 덜 돼 있어. (고개를 흔들며) 경기가 조금 안 좋아도 (택시를) 좀 타는데, 요즘은 너무 안 돼. 또 하이닉스도 안 좋다고 하니까…."

지난 17일 오후 2시께 충북 청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이닉스반도체 공장으로 가는 중이었다. 반나절 내내 차를 몰았지만, 그의 손에 쥐어진 현금은 2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제3공장 정문 앞에 다다랐을 즈음에 그는 "하이닉스가 살아야 우리도 먹고 산다"며 거스름돈을 건넸다.

1조원짜리 최신 반도체 공장의 그늘

지난 8월에 새롭게 가동에 들어간 청주 제3공장. 땅만 10만8697㎡에 최신 설비를 갖춘 공장과 각종 부대시설까지 합하면 모두 30만㎡에 달한다. 이곳에 들어간 돈만 1조원에 가깝다. 일부에선 '하이닉스의 미래'라는 말까지 나돈다.

류복곤 청주업무팀 대리는 "이곳은 시설이나 생산 공정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9월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 M11라인에는 반도체 생산의 주원료가 되는 300㎜ 웨이퍼를 매달 4만장까지 만들 수 있다"고 소개했다.


김종갑 사장도 준공식에서 "청주 제3공장 준공을 기점으로 해서 청주사업장을 세계 낸드플래시 생산 1번지로 만들겠다"고 말할 정도로 이곳에 큰 애착을 보여왔다. 낸드플래시는 각종 모바일 기기 등에 들어가는 핵심 반도체 부품이다.

하지만 화려한 1조원짜리 최신 공장의 뒤편에는 '공장 폐쇄와 감산·구조조정'이라는 어두운 그늘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생산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공장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박현 과장은 "작년 하반기부터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 과잉 등으로 가격이 크게 하락하기 시작했다"면서 "올해 들어서도 반도체 불황이 계속됐고, 미국발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국내외 반도체 회사들의 수익이 크게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왜 여기까지 내려왔어요?"

a  하이닉스반도체 청주 제3공장 입구에 세워진 조형물. 반도체의 주원료가 되는 둥근 모양의 웨이퍼를 상징하는 모형과 '세계최고의 반도체전문회사 하이닉스'라고 씌여져 있다.

하이닉스반도체 청주 제3공장 입구에 세워진 조형물. 반도체의 주원료가 되는 둥근 모양의 웨이퍼를 상징하는 모형과 '세계최고의 반도체전문회사 하이닉스'라고 씌여져 있다. ⓒ 김종철

하이닉스는 결국 더 이상의 수익성 악화를 막기 위해 공장 매각(중국), 폐쇄(미국), 가동 중단 등을 선언했다. 주로 200㎜ 크기의 웨이퍼를 생산하는 공장들이다. 청주의 경우 제2공장(M9 라인)이 대상이었다.

김영삼 하이닉스 노동조합 홍보실장은 웃으면서 "뭐하러 여기까지 내려오셨나"라며 난감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김 실장은 "전 세계 전자기기와 반도체 업종이 심각한 위기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고,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면서 "요즘 회사부터 조합원에 이르기까지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3공장 주변에서 만난 하이닉스 직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옷깃을 한껏 세우고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일부 직원들은 회사 상황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를 꺼리거나 조심스러워 했다.

"입사 6년차"라는 정아무개(32)씨는 "(반도체)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금융위기까지 터지고, (가동이 중단된) 인력을 재배치하면서 좀 어수선한 분위기"라며 "전보다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옆에 있던 동료 김아무개(31)씨도 "전보다 힘들어진 것은 분명한데 우리만 힘든 것도 아니고…"라며 "주변에서 요즘은 회사든 사람이든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말하는 것 자체를 꺼렸지만 대체로 수긍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들은 대체로 "내년 하반기 이후부터 좋아진다고 하지 않느냐"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크게 기대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제2공장에서 일하던 700여 명은 어디로?

그렇다면 가동이 중단된 제2공장(M9라인)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곳에서 일하던 직원은 모두 700여명. 지난 9월 공장 가동 중단과 함께 이들 대부분은 기존 제1공장을 비롯해 3공장 등으로 재배치됐다.

류복곤 청주사업장 업무팀 대리는 "노조와 협의를 거쳐 가동이 중단된 직원은 모두 다른 공장에서 기존 업무를 대신하거나 새로운 일을 맡아 하고 있다"면서 "이는 이천 공장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공장 가동 중단에 따라 생기는 여유 인력에 대해선 구조조정보다는 새로운 라인에 재배치하는 등의 방식으로 고용을 보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강국모 하이닉스 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은 "최근 들어 회사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고 있고, 노조도 회사와 함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공장 가동 중단 등 불가피한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해고 등 인력 구조조정 부분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노조 방침"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회사로부터 고용을 보장받는 대신, 그동안 조합원 등에게 지급됐던 문화상품권(매월 1만원 상당)이나 가을 야유회비(1인당 5만원) 삭감 등 각종 복지 부문 축소로 고통을 분담하기로 했다.

김영삼 홍보실장도 "워낙 경기 여건이 좋지 않고 불투명하다 보니, 대부분 조합원들도 노조의 이러한 방침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면서 "M9라인 조합원들이 새로운 부서와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4주간에 걸친 직무 재교육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강 실장이 거들었다. 그는 "인력 재배치 이후 새로운 업무의 적응 여부 등을 노조 차원에서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면서 "현재까지 새 업무를 받은 직원이 회사를 그만둔 경우는 15건인데, 이는 업무조정과 상관없이 자연적 퇴사 인원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아직까지 큰 부작용은 없다는 것이다.

13년차 김 과장의 불투명한 미래와 하이닉스

a  하이닉스 13년차인 김아무개 과장의 명함 변천사.

하이닉스 13년차인 김아무개 과장의 명함 변천사. ⓒ 김종철

그럼에도 현장에서 일하는 하이닉스 직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미래를 불안해했다.

이날 저녁 7시께 만난 김아무개(38) 과장. 입사 13년차인 그의 첫 직장은 청주 공장의 전신 LG반도체였다. 이후 현대그룹이 빅딜하면서 'LG맨'에서 '현대맨'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그 후 소속은 다시 하이닉스로 바뀌었다. 그의 말이다.

"LG에서 현대로 넘어갈 때 거의 반강제적으로 우리사주를 샀다가 많은 직원들이 엄청난 빚을 졌죠. 이후 2001년부터 반도체 불황으로 무급 휴직과 구조조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정말 힘들게 일했어요."

김 과장은 "그렇게 3년 넘게 고생한 후, 이후 몇 년 동안 잠깐 반도체 경기가 호황을 누리면서 수백%의 성과급을 받기도 했다"면서 "빚을 청산하고 이제 좀 살 만하다 싶었지만, 그때까지였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일주일 넘게 휴가를 다녀왔다. 휴일도 없이 일만 하던 그에겐 꿀맛 같은 휴가일 수도 있지만,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회사 차원에서 비용을 축소하기 위해 연월차 휴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간외 수당과 휴일근무 수당 지급도 사실상 사라졌다. 매월 50만~60만원에 달하던 별도 소득이 없어진 것이다.

작년 말에 그는 그동안 꾸준히 모은 돈으로 회사 주변에 새로 짓는 아파트 분양을 받았다. 일단 계약금만 넣어둔 그는 최근 건설사 부도와 아파트값 하락 소식도 신경 쓰인다.

그는 "수입이 예전보다 크게 줄어서 그만큼 씀씀이도 줄어든 것 같다"면서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경우, 아파트 분양대금 납부나 교육비 등을 생각하면 막막해진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12년차 과장인 이아무개(37)씨는 "그래도  대기업체 직원들은 아직 나은 편이고, 중소 협력업체 직원들 사정은 훨씬 더 열악하다"고 덧붙였다. 이 과장은 "그렇지 않아도 요즘 은행에서 돈 빌리기도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경영 자체가 거의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과 나눈 대화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청주의 명동'으로 불리는 하복대동의 길거리 네온 사인은 전보다 일찍 꺼지고 있다고 한다. 김 과장은 "예전 같으면 이곳이 회식하는 하이닉스 사람들로 가득 찼었다"면서 "9월 이후로 회식이 사실상 없어졌고, 나도 오랜만에 이곳에 나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10년 넘게 이곳에서 음식점을 운영해온 김정현(51) 사장은 "테이블 20개 중에 오늘 5개 정도만 손님이 있었을 뿐"이라며 "내 평생 이런 불경기는 처음인데, 이렇게 몇 개월 계속 가다가는 장사를 접어야 할 판"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밤 11시 즈음, 매서운 바람과 함께 체감온도는 영하로 뚝 떨어진 가운데, 20대 초반의 여성 노동자들이 3교대 근무를 위해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하이닉스가 어떻게 최악의 경기침체와 불황의 터널을 헤쳐나갈지 관심거리다.

a  하이닉스반도체 청주 제3공장 입구. 1조원이 넘게 들어간 이곳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 청주 제3공장 입구. 1조원이 넘게 들어간 이곳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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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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