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문근영 괴롭히는 야만, 용서하면 안돼"

[현장]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식 기자 간담회

등록 2008.11.22 14:49수정 2008.11.2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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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태백산맥 문학관 전경 분단이 아픔을 드러내기위해 김원 건축가는  산의 등줄기를 잘라내어 건물을 짓도록 설계해 작품의 주제를 살렸다.

태백산맥 문학관 전경 분단이 아픔을 드러내기위해 김원 건축가는 산의 등줄기를 잘라내어 건물을 짓도록 설계해 작품의 주제를 살렸다. ⓒ 이명옥


2008년 11월 21일 전남 보성군 벌교면 제석산 끝자락 소설 <태백산맥> 속 소화의 살림집이 시작되는 곳에 태백산맥문학관이 문을 열었다. 생존 작가로 조정래(65) 작가는 아리랑 문학관에 이어 두 번째 문학관을 갖게 됐다.

태백산맥 문학관은 건립 추진 15년 만에야  맺은 결실이다. 태백산맥 문학관 건립이 늦어진 것은 <태백산맥>이 1994년부터 4월부터 이적성 시비에 휘말려 2005년 5월 30일 무혐의 결정이 난 이후에야 건립이 적극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생명의 위협 앞에서 지난 18년 간 두 차례나 유서를 쓴 작가

a 박태준 포철 명예회장과 조정래 작가 기념식이 진행되는 내내 조정래 작가는 박태준 전 총리에 대한 예우가 깍듯했다.

박태준 포철 명예회장과 조정래 작가 기념식이 진행되는 내내 조정래 작가는 박태준 전 총리에 대한 예우가 깍듯했다. ⓒ 이명옥


a 박태준 전 총리, 조정래 작가 , 김원 건축가 조정래 작가가 전시물에 담긴 의미를 박태준 전 총리에게 설명하고 있다

박태준 전 총리, 조정래 작가 , 김원 건축가 조정래 작가가 전시물에 담긴 의미를 박태준 전 총리에게 설명하고 있다 ⓒ 이명옥


조정래 작가는 내외 귀빈을 비롯한 참석자 1천여 명 중 유독 박태준 전 총리를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다. 바람이 불어 날씨가 싸늘해지자 자신의 코트를 벗어 손수 입혀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곁에서 친절하게 상세한 설명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기자 간담회를 통해서야 비로소 왜 그렇게 박태준 전 총리에게 지극한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986년 분단문학의 획을 그은 그의 처녀작 <태백산맥>이 발간되자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수많은 독자들이 <태백산맥>을 통해 분단된 한반도의 역사와 전쟁의 비극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된 반면, 그에 못잖게 많은 안티 단체와 안티 독자들은 집요하게 그와 그 가족들을 위협했다. 그가 공식적으로 고발당한 세월에 비공식적 협박을 당한 세월까지 합친다면 그 기간이 무려 18년이다.

위협의 수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끔찍했다. '집을 폭파하겠다'는 협박 전화가 새벽 두세 시에 오는 것에서부터 "당신을 죽여 버리겠다" 심지어 "당신 아들이 어느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 알고 있다"며 끔찍한 위협마저 서슴치 않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두 번이나 유서를 쓰며 생을 마감하려 하기도 했다. 그 절체절명의 시기에 조 작가를 신뢰하며 신변을 지켜 준 사람이 박태준 전 총리였다.


그는 대한민국에 살아있는 사람 중 유일하게 '위인'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념이 있어 박태준 전 총리 위인전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조 작가를 '빨갱이'라며 법정에 고발한 사람들은 바로 박 전 총리의 후배들이었다.

당시 측근들이 "조정래씨가 회장님 곁에 없었다면 그는 이미 김일성에게 가 있을 사람"이라고 말하자, 박 전 총리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그게 말이라고 하느냐? 그는 누구보다도 투철한 민족주의자다"라고 했다고 한다. 자신을 믿고 신뢰해 신원 보증인이 돼 주고 노령의 나이에도 기꺼이 문학관을 찾아 축하해준 박 전총리에 대해 조 작가는 진심어린 감사를 표했다.


분단의 상처, 용서와 화해로 아물려야 할 때

a 벽화 개막식  벽화 개막식을 위해 밧줄을 힘껏 당기고 있다.

벽화 개막식 벽화 개막식을 위해 밧줄을 힘껏 당기고 있다. ⓒ 이명옥


조정래 작가는 문학관을 돌며 일일이 자상하게 설명한 뒤, 기자들과 한 시간 정도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서 작가는 나눠준 자료를 참고하라고 자신은 보충 설명만을 하겠다며 최대한 말을 아꼈다.

누군가 생존 작가로 두 번의 문학관 개관을 하게 된 소감을 묻자 '분에 넘치는 과분한 대접을 받은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평생 글을 쓴 작가로서 생의 보람을 느낀다'고 감회를 밝혔다.

한 기자가 색깔론 논쟁과 현재 남북관계에 대해 질문하자 작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우리는 지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이 배우기보다 옳게 알고 이를 실천할 때 비로소 지성이 된다. 80년대 수많은 사람들이 독재 타도를 위해 희생했고, 그래서 국민의 뜻에 따라 대통령을 뽑은 지 4번째가 된다. 많이 배우며 사는 우리는 더 나아져야 한다. 그것은 문화적으로 더 발전돼나가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 발전 속에는 남북 분단의 문제도 포함된다.

우리는 이미 중국과 수교했고 베트남과도 수교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증오해 마지않던 공산주의 정부 소련과도 수교를 했다. 그렇다면 5000년을 같이 나눈 동족은 어찌 해야겠는가? 6·25 전쟁은 미국과 소련이  우리를 점령함으로 시작된 원치 않던 전쟁이다. 그런데 그 증오를 그렇게 오래 가지고 있어야 하겠는가?"

조 작가는 "이제는 서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며 정권이 바뀌자 지난 십년 간 남북 관계를 무로 돌려버리려는 현실을 지적했다. "애써 이뤄놓은 좋은 결과마저 버리고 새로 시작해서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는 작가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그는 문근영씨 선행 논란에 대해 "지난 6년간 힘들여 번 돈으로  엄청난 기부금을 냈는데, 외할아버지가 빨치산 활동을 했다고 악플로 괴롭히는 이런 야만의 시대가 있느냐, 이것은 국민 철퇴의 이름으로 용서하면 안 된다, 기자 여러분들은 왜 그걸 그대로 보고 있나"라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비정규직·이주노동자... 젊은 작가들이 안 쓰면 나라도 쓰겠다"

a 기자 간담회 조정래 작가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기자 간담회 조정래 작가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명옥


그는 또 "이 슬픈 시대에 작가들은 정신차려야 한다, 80년대 독재 타도를 외치느라 편향된 작품 성향에 대한 반작용과 역사적 타협으로 1990년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왜소화·개인화되고 있다"며 "군부 독재가 타도되었다고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갈등이 모두 해결된 것이 아니다"라며 개인화 문제, 비정규직 문제, 다문화 가정과 이주 노동자 핍박 문제들을 예로 들었다.

그는 "베트남·필리핀 등에서 여성들을 데려와 결혼을 해 그들이 자식을 낳고 있다, 이미 다문화 인구가 100만 명이다, 그런데 그들을 핍박하는 것은 우리가 일제시대 당한 핍박보다 더 가혹한 짓이다, 젊은 작가들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일갈했다.

이어 "2만불 시대에 왜 이런 소설이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젊은 작가들이 안 쓰면 나라도 그런 문제들을 소설로 쓰겠다, 능력이 출중한 젊은 작가들이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써야할 것이 너무 많다"고 일침을 놓았다.

젊고 역량있는 후배 작가들이 지나치게 개인화·왜소화 된 것, 사회 현상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노 작가의 울분에는 오랜 세월 영욕의 세월을 견뎌 온작가의 아픔이 배어있었다.

덧붙이는 글 |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의 태백산맥이 시작되는 제석산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건축물은 건축가 김원씨가 분단의 아픔을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지하로 13미터를 파서 지상으로 한층만 보이도록 설계했다. 오른쪽 벽면에는 백두대간의 염원을 담은 길이 82미터 높이 8미터인 세계최대의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문학비는 2009년 4월쯤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덧붙이는 글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의 태백산맥이 시작되는 제석산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건축물은 건축가 김원씨가 분단의 아픔을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지하로 13미터를 파서 지상으로 한층만 보이도록 설계했다. 오른쪽 벽면에는 백두대간의 염원을 담은 길이 82미터 높이 8미터인 세계최대의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문학비는 2009년 4월쯤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태백산맥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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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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