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전거가 뜨고 있다. 삼천리자전거는 이 달 들어 주가가 두 배로 뛰었다.
김대홍
먹을거리 외에도 여러가지 속설을 동원한 불황의 지표는 많다. 특히 최근 코스닥 시장에서 자전거가 바람몰이를 하며 질주하고 있다. 삼천리자전거는 이달 들어 주가가 두 배로 뛰었다. 삼천리자전거는 외환위기 당시에도 470원대(1998년 12월)의 주가가 2000년 4월 4000원대까지 10배 가까이 치솟은 바 있다.
"불황엔 자전거가 더 잘 팔린다"는 속설이 만들어진 셈이다. 실제 삼천리자전거의 3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8% 늘었다. 경기 침체의 여파로 영업이익이 급감하는 다른 기업들과는 대조적이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콘돔 판매가 증가한다"는 속설이 실제 매출로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 17일 GS리테일에 따르면 전국 3300여개 'GS25' 매장에서 월별 콘돔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경기가 급속하게 냉각되기 시작한 8월부터 콘돔 판매량이 전년대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1월부터 7월까지 콘돔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5.2% 증가했지만 8월부터 판매가 급증, 11월까지 평균 16.7% 늘었다. 일각에서는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부부들이 출산계획을 늦춰 콘돔의 사용량이 증가한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속설 4] "속설에 관심이 고조되는 것 자체가 불황의 시작이다!"불황의 지표가 되는 속설은 '가벼워진 지갑과 불안한 심리 상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불황기에는 지금 돈이 없고, 또 앞으로 없어질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절약형 소비 행태가 보여질 수 밖에 없다"면서 "또 하나는 과거의 추억이나 스트레스 해소 등 마음의 위안을 찾기 위한 소비 행태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경기침체 속에 '1000원' 마케팅이 인기를 누리는 것이나, 새것처럼 수리해 주는 리폼(Reform),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 재생용품을 재충전하는 리필(Refill) 등 이른바 3R 산업에 사람이 몰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불황의 시름을 술로 달래려는 서민들이 늘어나면서 숙취해소제가 덩달아 인기를 얻기도 했다. 온라인쇼핑몰 원어데이가 9월 1일 선보인 숙취해소제는 하루 5600개가 팔렸고,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의 밤을 줄여주는 숙면도우미는 이달 12일 하루 동안 6200개가 팔렸다.
"불황이나 사회적 위기 때 맵고 자극적인 맛이 유행한다"는 속설도 유명하다. 실제 우울하거나 기운이 없을 때 섭취한 매운맛은 엔도르핀(진통효과를 내는 체내 물질)을 분비시켜 '즐거운 통증'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외환위기 때나 카드사태 때 매운맛 음식점이 유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불황으로 생긴 근심과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한 채 희망을 잃은 서민들이 '대박' 환상에 집착하면서 로또, 카지노, 경마 등 사행성 업체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불황에 도박이 흥한다"는 속설이 입증된 셈이다.
그러나 이동훈 연구원은 "불황기에 어떤 상품의 매출이 늘었다고 해서 반드시 불황에 강한 상품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며 "원자재가격이 상승해서 전체 매출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통계 착시 현상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속설은 시점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통계적인 착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불황에 카드 매출이 늘어난다"는 속설은 언뜻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지난 3/4분기 카드 매출량이 급격히 늘었다. 이유가 뭘까? 이동훈 연구원은 "사람들이 수중에 현금이 없으니까 작은 지출에도 카드를 쓰게 되는 것"이라며 "불황에 카드 매출이 늘었다는 말의 진의를 잘 파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자전거의 판매량이 급증한 것은 이번 불황과는 상관없이 건강이나 고유가 문제 때문"이라며 "지금부터 불황이라고 보면, 앞으로 추워질 것이기 때문에 자전거 판매량이 계속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콘돔 판매량이 늘어난 것에 대해서도 "저출산 문제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자녀 양육비에 대한 시스템 부족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일 뿐, 일시적인 불황과는 크게 상관없다"고 말했다.
'호황' 때는 속설이 없다. 불황 때는 '어떤 식으로 이 난국을 돌파 해볼까'하는 심리 때문에 사람들이 속설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인다. 속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고조되는, 그 자체가 이미 불황이 시작되고 있다는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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