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집이 남향집보다 훨씬 좋은 남미 대륙

[책으로 읽는 여행 34] 정준수의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는 법>

등록 2008.11.23 10:51수정 2008.11.2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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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는 법> ⓒ 플럼북스

"호주와 뉴질랜드도 남반구이고 남아프리카도 남반구이지만, 내 마음 속의 '진정한' 남반구는 오직 남미 대륙 뿐이다. 화장실의 물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내려가고, 해는 북쪽 하늘에 떠 있으므로 남향집은 자랑이 아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지구 반대편 남미 여행기인 이 책은 6개월 동안 남미를 여행하며 느낀 단상을 작가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 놓는 에세이집이다. 최근에는 남미 여행기가 많이 나와 있어 좀 식상할 만도 한데, 저자가 느낀 남미에 대한 생각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담겨 있어 독자의 시선을 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다른 흔한 여행기처럼 어디 어디를 다녀왔고, 어디에 가면 뭘 봤다는 식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진마저도 유명한 관광지만을 찍어 나열하기보다 저자의 색채를 담으려고 많이 노력해서 뻔한 느낌이 덜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이슬람 국가 여행의 장점을 '이스라엘 여행자가 없다, 범죄가 적고 안전하다', 단점을 '술을 구하기 어렵고 술값이 다른 물가에 비해서 비싸다, 거리에 여성이 많지 않고 주로 얼굴을 가린다' 라고 한 반면,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술이 물만큼 싸고 맛있다, 거리에 몸매를 드러낸 아주 예쁜 여자들이 매우 많다'라고 장점을 열거한다.

쿠바 행 비행기를 타면서 저자는 이런 말을 던진다.

"쿠바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전, 마지막으로 버거킹 햄버거를 먹으며 자본주의와 잠시 작별을 고하다."

이렇게 기대감을 갖고 떠난 쿠바는 너무 가난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너무 단순한 행복 속에 잠긴 나라 쿠바. 여행객들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공연을 보기 위해 쿠바를 찾지만, 정작 쿠바인은 이들이 누군지 잘 모른다. 이런 비싼 음악은 쿠바인들의 현실과 지극히 동떨어진 세계에 있는 것이다.


공공연히 위성 방송을 통해 미국문화를 접하는 쿠바인들은 공산주의에 매우 익숙하면서도 가난이 싫어 카스트로가 죽기를 바란다. 저자는 이런 쿠바인들을 보며 '코카콜라를 마셔 본 적이 없는 쿠바인들, 그들은 전 세계 사람들이 코카콜라를 시원하게 들이키는 광고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여행을 떠나면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잘 보이게 된다고 했던가. 여행길에서 만난 많은 여행객들은 우리나라가 그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작은 나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심지어는 중국의 한 변두리 지방 정도로 우리를 알고 있는 남미인들도 많다니….

라틴 계열의 멕시코 인들에게는 우리가 보기에 이해 안 가는 부분이 많다. 사람도 동물처럼 서로 간에 '개인 영역'이 존재하여 누군가 영역을 침범하면 불쾌감을 느끼곤 하는데, 라티노들의 '개인적 거리'는 무척 짧다.

비행기 승무원들은 처음 보는 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서로 숨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연인처럼 이야기한다. 이들에게 십년지기 친구는 물론이고, 처음 본 사이도 모두 아미고(Amigo, 친구)다. 덕분에 라티노들의 마음은 늘 열려 있어 라틴 아메리카 여행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

저자의 독특한 시선이 엿보이는 부분 중 하나는 페루 여행에서 국민 자동차 티코를 발견하고 기쁨에 휩싸이는  부분이다. 그 많던 티코는 어디로 간 것일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페루에 가서 그 답을 찾아라. 택시 팻말을 달고 있는 대부분의 택시는 모두 티코다.

"한때 '국민차'라 불리며 온 국민의 사랑을 받기도 했지만, 작은 덩치 때문에 온갖 조롱의 주인공으로 구박받다가 둥글둥글 귀엽게 생긴 마티즈의 등장 이후 완전히 버림 받은 티코. 정든 조국을 떠나 태평양 건너 지구 반대편에 있는 페루까지 팔려 와서 노란색으로 새 단장을 하고 택시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칠레는 최근 우리에게 와인으로 친숙해졌지만, 칠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뱀처럼 '긴 나라'라는 이미지다. 칠레를 여행하는 방법은 남북을 잇는 외길뿐인데, 남쪽으로 가든 북쪽으로 가든 야간버스를 타고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창밖으로 어젯밤과 완전히 달라진 풍경이 보인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인 듯하다.

서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부터 시작하여 만년설에 뒤덮인 뾰족한 바위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다에 떠다니는 얼음 덩어리와 귀여운 펭귄들까지. 이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그 각양각색의 아름다움을 모두 만끽할 수 있다. 저자는 칠레가 이 세상 모든 기후를 다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지리 과목에서 칠레의 기후 구분을 공부하며 꽤 고생하고 있을 칠레의 중고등학생들을 위해 작은 위로를 보낸다'고 말한다.

위트 있는 저자의 글 솜씨와 독특한 시각의 사진들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다. 평범한 남미 여행기 몇 권을 이미 읽은 독서 애호가라면 이런 독특한 시각의 서적도 매력 있을 것이다. 단, 남미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이 책을 접한다면 약간 뒤죽박죽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The Way -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는 법

정준수 지음,
플럼북스, 2008


#여행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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